칠순 아버지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
오늘 여행의 기획자는 바로 '네모남자'였다. 그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은 휘슬러의 블랙콤과 휘슬러 봉우리를 이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곤돌라, ‘픽투픽(Peak 2 Peak)’이다. 이 곤돌라는 무려 4.4km를 중간 지지대 없이 10분 동안 이동한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끝내준다며 타고 싶어 할 이 곤돌라는 나에게 그야말로 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1: 휘슬러 정상에 올라간 뒤, 2: 블랙콤 봉우리 정상까지 정상 대 정상으로 이동하고, 3: 다시 내려오는 총 세 번의 루트를 지나야 한다.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라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정말 끔찍한 계획이었다. 어떻게든 타고 싶지 않았지만, 분리불안이 있는 네모남자는 꼭 같이 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큰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휘슬러에 도착하면 슬쩍 빠져볼 생각이었다.
작은 개울을 지나며 “여기에 폭포가 있다고?” “얼마나 큰 폭포가 있겠어?”라며 의심하던 가족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폭포에 한 번에 압도되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물소리에 모두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폭포를 본 후 나오는 길에 작은 이정표를 발견하고, ‘스윔 호수(Swim Lake)’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길은 돌이 널려 있어 아예 길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가족들은 호수를 보러 가면서도 “여기에 호수가 있을까?”라며 의심을 폭포 때처럼 하기 시작했고, 나도 스윔 호수는 처음인 데다가 주변에 가는 사람도 없어서 사실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돌을 넘고 들어가자 어렴풋이 길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곳도 한국의 등산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호수가 나타났다. 캐나다는 대자연의 나라인 만큼, 트레일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호수나 폭포를 알리는 이정표를 쉽게 볼 수 있다. 호기심에 그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길 같지 않은 길이 이어져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이정표가 가리키던 호수나 폭포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 있는 거야?”라고 불평하다가 마주하는 자연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이 호수의 이름은 스윔 레이크(Swim Lake)인데, 고요하게 둘러싼 나무들 덕분에 수영하러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 캐나다의 대자연 속 폭포와 호수를 만끽했으니, 인간의 기술이 만든 픽투픽 곤돌라를 보러 갈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곤돌라를 타지 않고, 근처 카페에 앉아 가족들을 기다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휘슬러에 도착하니 휘슬러는 전과 달리 어수선하고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네모남자는 내가 곤돌라를 타지 않겠다고 하면 분명 짜증을 낼 텐데, 나는 정말 타고 싶지 않아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티켓 사무소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곤돌라는 공사 중이라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다른 가족들에게 "곤돌라 공사 중이래!!!"라고 외치며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나의 이런 반응에 네모남자는 곤돌라를 못 타게 된 것도 억울한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더 짜증 난다고 투덜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그러니까 미리 스케줄 좀 확인하지 그랬니?'라며 속삭였다. 속상해하는 네모남자는 뒤로 하고 곤돌라는 못 타게 되었으니 이왕 여기 온 김에 점심이나 하고 가자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