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고모가 시애틀에 오면 꼭 'The Crab Pot'에서 크랩팟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다른 식당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크랩팟은 바닷가에 있는 시애틀 대관람차 바로 옆에 있어 찾기가 쉬웠다. 식당 안은 약간 오래되어 보이는 인테리어로 붉은 톤의 나무들과 빨간 체크무늬 식탁보로 꾸며져 있었고, 안내받은 테이블에는 하얀 종이가 깔려 있었다.
크랩팟은 이름 그대로 찐 해산물을 솥째로 가져다주면 망치로 두드려 먹는 방식이다. 주문 후 바로 서버가 식전 빵과 도구 세트를 가져다주었다. 망치, 포크, 개인 도마, 그리고 앞치마가 포함되어 있었다.
식사가 나오면 서버가 와서 큰 솥을 그대로 와르르 테이블에 쏟아낸다. 방금 막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던저니스 게, 스노우 게, 새우, 조개, 홍합, 소시지, 콘, 붉은 감자들이 테이블 위에 한 가득이다. 우리 식구들은 처음 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망치로 살살 게를 두드려서 살을 빼먹는 재미에 모두 빠져들었다. 특히 아이들은 식당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불만이 가득했는데 음식을 받자마자 확 밝아지면서 시애틀은 너무 재미있는 곳이라고까지 말했다. 나는 캐나다 오기 전에 알 수 없는 음식 알레르기로 고생을 했어서 게나 새우 같은 해산물 섭취는 특히 조심하고 있어서 그냥 치킨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다. 이 맛있는 것을 두고 못 먹다니 나만 두드릴 것이 없어서 심심할 뿐이었다.
식사 후에는 식당 건물 바로 뒤에 있는 '시애틀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 나는 솔직히 처음에는 타고 싶지 않았지만 네모남자가 꼬드겨서 안 무서울 줄 알고 내 표도 호기롭게 끊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관람차 안에 탑승하면서 얼마나 걸리는지 체크도 하고 탔으나 관람차가 돌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후회를 했다. 나는 관람차가 그냥 크게 도는 줄 알았는데 앞뒤로 휘청거리면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에는 허공에서 흔들리는 관람차를 느끼며 얼굴은 사색으로 변해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가 보인다고 구경하라고 내 팔을 흔드는 네모남자 덕분에 더 진동이 느껴졌다. 타기 전에 관람차는 두 바퀴 돈다고 해서 나는 한 바퀴만 더 참으면 되겠지라며 마음을 다 잡았지만 대관람차는 세 바퀴나 돌고야 말았다.
그 후, 시애틀에서도 아쿠아리움을 가보고 싶다는 2호와 나는 둘이서 "시애틀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시애틀 아쿠아리움은 밴쿠버 아쿠아리움 보다 작은 규모여서 그런지 인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패널이 많았다. 2호는 해달인형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계속 같이 찍었고 진짜 해달과 인형 해달이는 상봉도 했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역시나 기프트 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2호는 고심 끝에 자기 것과 사촌 동생 선물을 골랐다.
아쿠아리움 관람 후 다른 식구들과 Pier 62에서 다시 만났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앉아 쉬는 동안 미니 축구장에서 축구를 즐기며 시애틀의 아이스크림도 맛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스스로 주문하는 모습도 보여주며, 아이스크림은 이제 주문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돈은 내가 내는데 결제가 주문의 대미 아니니? 얘들아??
짧은 휴식 후, 시애틀의 마지막 명소인 'Space Needle'로 갔다. 함께 올라가자고 하는 가족들의 얘기에도 이번에는 단호하게 나를 뺀 식구들의 티켓을 구매했다. 시애틀 대관람차로 인해 나는 더 이상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회전하면서 시애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식구들이 유리 바닥에 누워서 각종 인증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역시나 기프트샵에 있었다.
예쁜 소품들이 많아 한참을 고민한 끝에 모자를 골랐고, 전망대를 다 보고 내려온 아이들도 내 모자를 보더니 선물 사달라고 졸라서 배지를 구입했다.
짧고 간단한 시애틀 당일치기 여행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밴쿠버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에서 오는 길에 저녁으로 웬디스에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그곳에서 미친놈을 만났다.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어서 식구들에게 빨리 일어나자고 하니 배가 고파서 밥 먹고 가자고 강력히 주장했던 아버지가 왜 벌써 가야 하냐고 짜증을 내셨다. 나는 노숙자가 좋지 못한 말을 우리에게 계속하니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차에 타서도 맛없는 버거를 나 때문에 편히 먹지도 못했다는 아버지의 불만이 계속되니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역시 부모님 모시고 하는 여행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