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아버지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
사실 이번 여행에서 미국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래는 밴쿠버와 캘거리만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여행 전에 아버지께서 디스크 수술을 받으시는 바람에 캘거리 방문을 취소했다. 그래서 캐나다를 벗어날 계획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밥을 먹다가 고모가 갑자기 미국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고모는 기왕 오빠가 왔으니 여기저기 더 많이 구경시켜 주고 싶어 했다. 언제나 한다면 하는 고모의 미국 서부 일정 제안에, 나는 결국 시애틀로 미국 방문을 '한정'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미국은 뭘 가냐며 거절하는 척하던 아버지는 말끝을 'ESTA를 얼른 내라'로 마무리하셨다. 결국 나와 네모남자는 어쩔 수 없이 5명의 ESTA를 밤늦게까지 버벅거리며 신청했다. 밴쿠버를 떠나기 전까지 승인이 안 나길 내심 바랐지만, 눈치도 없이 단숨에 승인된 ESTA…
이렇게 나는 시애틀행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시애틀로 가는 길, 국경에서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서 심사를 받았다. 그동안 밖에서는 차 안을 수색했다. 심사받는 동안 나는 긴장해서 습관처럼 농담을 던졌고, 네모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나는 농담을 섞어서 말하는데 그는 내 농담으로 대화가 길어지고 심사를 늘어지게 한다고 싫어한다. 심사를 받아서 나오면 이제 바로 미국이다.
시애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유명한 '퍼블릭 마켓'으로 갔다. 퍼블릭 마켓 앞에 바로 그 유명한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데 이미 가게 앞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릴 엄두는 나지 않아 가게 앞 로고를 배경으로 사진 중독자 아버지의 사진을 남겨드리고 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좀 더 지역 수산물과 농산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보니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선물용 상품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흥미로운 것이 없어서 1층의 가게들을 대충 둘러본 뒤,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보통 사람들이 퍼블릭 마켓을 여행의 한 코스로 스쳐 지나가다 보니 다들 지하에 매장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지하에는 매직샵, 골든 에이지 영화와 코믹 북, 핸드메이드 인형 가게 등 특이한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퍼블릭 마켓을 구경한 후, 시애틀 아트뮤지엄에 가려 했으나 리모델링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대신 'Hammering Man' 앞에서 아쉬운 인증 사진을 남겼다. 이번 시애틀 여행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스타벅스만큼 매장이 많았던 시애틀 카페 브랜드 'Tully's'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뮤지엄 가는 길에 있던 Tully's 매장이 비어 있어서 이 지점만 없어진 줄 알았는데, 다른 매장도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툴리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코로나 때 망한 것인가? 큰 변화가 없을 줄 알았던 시애틀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