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여행을 준비하면서 각자 꼭 가고 싶은 곳을 정했는데, 2호는 아쿠아리움을 1호는 어이없게도 레고 스토어를 골랐다. 딥코브에서 하이킹을 하고 오후 시간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장소로 가기로 했다. 먼저 스탠리 파크 안에 있는 밴쿠버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결제하면 손등에 돌고래 도장을 찍어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다소 사악한 표정의 해달이 우리를 반겨준다. 신나서 카필라노 현수교에서 사 온 해달 인형과 함께 힘찬 포즈를 취하는 2호를 보니, 아쿠아리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쿠아리움은 여러 종류의 수족관이 주제별로 나뉘어 있으며, 큰 수족관과 작은 수족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물속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실내는 다소 어두운 편이라, 관람하다 보면 아이들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항상 같이 다녀야 한다.
밴쿠버 아쿠아리움은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돔 속에 머리를 넣고 바라보면 물고기가 바로 눈앞을 지나가며 마치 내가 물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말미잘 같은 해양 생물을 직접 만질 수 있는 체험형 수조도 있다. 말미잘에 손을 대면 물컹한 질감에 내가 놀라지만, 말미잘도 촉수를 움츠리며 깜짝 놀라는 듯하다. 이 체험을 하고 나면 전시장 한쪽 코너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내부 수족관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아이들은 네모남자와 함께 3D 영상을 보러 가고, 나는 야외로 나왔다. 야외에서는 해달과 바다사자 같은 동물들이 실내보다 넓은 개별 수족관에서 유유자적 수영하거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곳, 'B.C.'s Wild Coast'는 부상이 심한 동물이나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홀로 살아남기 어려운 동물들을 구조해 보호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서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여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바다사자가 수영하며 물을 뿜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야외 벤치에 앉아 나도 함께 일광욕을 즐겼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가득하다.
해양 생물들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는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프트샵이 있다. 각종 해양 생물들 인형을 보고 아이들은 맑은 눈의 광인이 되었고 나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그 어미에 그 자식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하나만 고르라'는 나의 협박에 간신히 키링 하나씩을 골랐고, 나는 결국 양말 두 켤레를 골랐다. '그 어미에 그 자식'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자식보다 더한 어미였던 것이다.
저녁 식사
저녁은 애석하게도 한국식 중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우리 식구 다섯 명과 고모, 고모부까지 함께 움직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익숙한 한식당을 자주 찾게 된다. 주문하기도 편하고 메뉴에 대한 불만도 거의 없으니 장점이 많다. 물론 여기가 한국인지 캐나다인지 구분이 안 가고 여행 가서 현지 음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혹시나 해서 뽑아둔 레스토랑 리스트를 언급하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방문했던 중국집은 정말 별로였는데, 이제는 캐나다의 한국식 중식당과 한국에서의 중국집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고, 양도 역시 푸짐하다.
저녁 식사 후, 드디어 1호가 기다리던 리치먼드의 레고 스토어에 갔다.
노란 앞치마를 입은 점원들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어떤 레고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새로 나온 시리즈나 인기 있는 제품들을 추천해 주었다. 약간 과장된 설명을 덧붙여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뭘 고를지 망설이던 2호는 '역시 캐나다인은 수다쟁이'라는 설을 다시 실감했다. 반면 1호는 너무나도 갖고 싶은 레고가 명확해서, 금액대만 정해주면 바로 선택할 수 있었기에 점원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캐나다 방문 기념으로 고모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상한선 250불 내에서 레고를 선물해 주겠다고 하자, 1호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모델 중 하나를 바로 골랐다. 2호는 딱 맞는 금액의 레고가 없다며 두 가지를 고심 끝에 선택했다. 며칠 동안 봐왔던 캐나다는 별로였는지, 지금이 가장 캐나다에 와서 즐거운 순간이라고 하니, 나는 정말 어이가 없을 뿐이다."
리치먼드 몰에는 레고 스토어 말고도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팀 홀튼이 만든 캐나다 국민 카페 'Tim Hortons'가 있다. 사실 팀 홀튼은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커피부터 도넛, 머핀, 쿠키, 페이스트리, 샌드위치, 랩, 베이글, 수프까지 없는 게 없는 캐나다 국민 카페다. 여기서 더위사냥 맛이 나는 슬러시 '아이스 캡'과 도넛을 샀다. 아이들은 입맛이 변했는지 그렇게 극찬하던 49th parallel 도넛보다 팀 홀튼의 도넛이 더 맛있다고 했다. 오늘 하루 2번의 도넛을 먹은 나는 더 이상 도넛은 먹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