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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7. 2015

다산 정약용의 아픈 고백

인생은 결국 혼자다.

정조의 특별한 사랑과 신임을 받던 정약용은 그를 음해하고 모략하던 세력들의 농간에 지쳐 39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난다. 공교롭게도 그가 물러난지 불과 며칠이 못되어 정조는 갑자기 사망한다. 그때부터 정약용의 집안에 검은 먹구름이 밀어닥쳐오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남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영의정 채제공도 한 해 전에 죽었고, 이제 정조마저 죽으니 기댈 곳이 전혀 없어졌다. 더욱이 가톨릭을 믿는다는 죄명을 받고 사상범으로 체포되고 나니 친구들마저도 다 그를 외면하였다. 다산이 장기에 유배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내게서 등을 돌린 그들을 탓하겠는가?

속도 없이 그들에게 내 마음을 다 내준 나의 잘못이 더 크다.

예전 궁궐에서 국화 시절에 시회가 열리고, 단풍나무 아래에서 연회가 베풀어졌을 때 나는 참 의기양양했었다.

천하가 내 손 안에 든 것만 같았다.

득의의 그 시절엔 그들도 다 내 편이었다.

간담도 서로 나눌 듯 허물이 없었다.

이제 내가 고꾸라지니, 한꺼번에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멀뚱멀뚱 두 눈을 뜨고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밖에, 그래 다 뜯어 먹어라.

내 다 내어주마.

서울 쪽을 돌아다보니 먼지만 자옥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밤중에 잠 깨어, 정약용 짓고 정민 풀어 읽음, 문학동네, 19쪽)


친한 친구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으니 본디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정약용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두 인물이 있는데 하나는 프락치 역할을 했던 조화진이란 자고, 다른 하나는 신유년 당시 우의정을 지낸 서용보란 자다. 이 둘은 본의 아니게 정약용과 악연으로 맺은 사람들이다. 조화진은 전에 한영익의 누이에게 구혼하였으나, 한영익은 그를 거절하고 오히려 정약용의 이복 남동생인 정약황에게 시집을 보내었다. 이런 일 때문에 조화진은 함께 천주교 안에서 신앙 생활하던 한영익을 죽일 나쁜 마음을 먹고 음해하기 시작하였다. 조화진은 프락치로서 가톨릭 분쇄하는 일에 심혈과 정성을 기울이며 온갖 음해와 무고를 일삼았다.


서용보는 전에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경기도 일대를 순회할 때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자다. 그는 임금의 화성 행차를 핑계 삼아서 금천의 도로를 보수할 비용이라 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었다. 사실 금천은 임금의 화성 행차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지역이었다. 이 사실을 안 암행어사 정약용은 임금에게 고하여 금천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이 일로 서용보는 정약용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정조가 죽고 바로 신유박해가 시작되는데 정약용 역시 체포되어 국문을 받았다. 그러나 정약용은 무죄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모든 대신이 정약용을 풀어주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당시 재판장인 이병모는 정약용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앞으로 무죄로 풀려날 걸세. 음식을 많이 먹어 몸을 아끼시게”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영의정이었던 심환지를 비롯하여 승지 김관주, 이서구를 비롯하여 모든 대신이 무죄 석방을 주장하였지만, 유독 서용보만이 고집을 부리며 유배를 보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결국, 작은 원한에 사로잡혀 있던 소인배 두 사람에 의하여 정약용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 가서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과 권세의 무상함을 토로한다. 잘 나갈 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친구들도 많았다. 그는 사실 서용보나 조화진에 대한 미움보다 오히려 자신의 간이라도 나눌듯한 진실한 친구로 생각했던 그들이 등을 돌리는 것을 보면서 삶의 회의를 깊이 느꼈다.


인생무상! 다산은 인생의 허망함을 절절히 느끼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시를 쓰고 있다.

내 나이가 올해로 불혹이다.

볼혹인데도 여기저기 미혹되어 쫒겨나 귀양 왔다.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고 나서 지난 삶을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고맙다.

‘거백옥(춘추시대 대부)’ 나이 50에 깨달은 것을 나는 10년이나 앞당겨 알게 되었으니,

그는 50에 지나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새 삶을 시작했지만, 나는 40에 시작한다.

잘못을 알았으니 되풀이하지 않겠다.

허물을 벗고 더욱 건실해지리라.” (한밤중에 잠 깨어, 정약용 짓고 정민 풀어 읽음, 문학동네, 33쪽)


다산 정약용에 대한 글들 

박학다식한 다산 정약용

다산의 독서법

다산 정약용의 아픈 고백

다산의 훈계 - 놀고 먹지 마라

다산이 자식에게 주는 책 읽기 교훈 - 왜 책을 읽어야 하나?

국화에 심취한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 

공부의 비결 - 삼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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