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을 잊을 수가 없다.
변방의 자그마한 우리나라가 축구로서 세계 4강이 되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그 기적의 주인공은 감독 히딩크와 그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랐던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소위 지옥 훈련 프로그램을 통과한 선수들이었다.
대표 선수로 차출되기까지 수없는 훈련을 거쳐왔지만, 히딩크의 훈련방식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 훈련 프로그램에 들어가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았다.
훈련 프로그램을 통과했다고 해서 반드시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1명의 선수 이외에는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다.
물론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도 나중에는 국가가 제공한 연금과 포상금을 똑같이 받았다.
어찌 생각하면 편안하게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가 훨씬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축구 선수라고 하면, 당연히 운동장에서 뛰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이 불러만 준다면, 그들은 언제든 달려나가 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운동장에서 뛰다가 부상당하는 일이 있었다.
황선홍 선수, 김태영 선수는 머리가 깨어져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끝까지 뛰었다.
운동장에서 뛰다가 패스를 잘못하거나 결정적 실수를 하면, 온 국민에게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자리였다.
그런데도 그들 중 어느 하나 뒤로 빼는 선수가 없었다.
뛰고 싶어 했다.
그러한 자세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성숙하게 하였다.
서유기에 보면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데리고 불전을 구하러 인도로 간다.
손오공은 돌에서 태어났으며 천체의 궁전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말썽꾸러기다.
저팔계는 여자와 먹는 것밖에 밝히는 것이 없는 단순 무식한 친구다.
사오정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비관적인 생각만 하는 요괴다.
이런 인간도 아닌 괴물들, 문제 많은 괴물들을 데리고 불법(佛法)을 구하러 떠나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수준 미달의 괴물들이 끝까지 여행을 마친다는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저들이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저들이 한 단계 성숙했음을 뜻한다.
다산이 가장 아끼던 제자가 황상(1788~1863)이다.
귀양 온 다산에게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황상이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한다.
“선생님! 제게 세 가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다산이 황상에게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하지.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삶을 바꾼 만남 /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37쪽)
다산은 문리를 틔우는 비결로 삼근계(三勤戒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를 가르쳐주었다.
황상은 둔하고 답답한 사람답게 평생 스승의 가르침대로 끝까지 공부에 전력을 기울였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도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기에 노년에 당대 최고의 문사인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인정받는 시인으로 등단한다.
강한 자가 승리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은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을 익히라는 말이 아니라 다산의 삼근계를 끝까지 실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록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있지만, 끝까지 성실하게 공부하는 자가 바로 성숙한 승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