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위한 마음 준비 6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지?
불뚝불뚝 화가 나고. 누가 선한 뜻으로 행한 일을 나쁘게 해석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왜 자꾸만 속이 좁아지는지.
매일 회개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 나는 어쩌면 좋아."
추석 명절에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하소연하였다. 명절 며칠 전부터 괜스레 심술이 난다. 꼭 명절이 되어야만 찾아오는 자녀들이 때로 원망스럽다. 온종일 찾아오는 이도 없는 빈집을 지키는 어머니는 너무나 외롭다 바로 옆 아파트에 친구가 있지만, 관절염에 잘 걷지도 못하는 친구를 찾아가야만 겨우 적적함을 해소할 수 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성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도 생각처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아 괴롭기만 하시다.
노년의 삶은 볕 좋은 테라스 흔들의자에 앉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 모습을 나는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구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 나이 60이 되지 않았지만, 점점 기력이 쇠하여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의 노년을 떠올린다. 속 좁은 노인네가 아니라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끔 찾아오는 이에게 미소를 선물하는 노인이 되고 싶어 노년의 삶을 생각해본다.
마음의 평정(ataraxia)은 기원전 3-4세기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말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흔히 에피쿠로스 하면 쾌락과 술, 음식과 여자를 추구하며 무분별한 삶을 산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에피쿠로스의 삶은 정반대였다. 에피쿠로스는 자기가 태어난 사모스 섬의 몰락과 혼란을 경험하면서 도시 국가가 내세웠던 정의, 도덕과 같은 명분을 믿지 않았다. 그는 실제 살아가는 삶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더 집중하였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필수적 욕망,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 공허한 욕망으로 나누었다. 필수적 욕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음식, 의복, 집 등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말한다.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은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쾌적한 집 등에 대한 욕망이다. 마지막으로 공허한 욕망은 명성이나 인기 같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다.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과 공허한 욕망은 우리에게 참된 만족(쾌락)을 주지 못한다. 에피쿠로스는 필수적인 욕망만 채워진다면 조용히 은둔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철학과 태도는 도시국가 시민으로서 성실하게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편안 하고자 은둔 자중한다 하여 쾌락주의라 불렀다.
실제로 그는 타의 모범이 될 만큼 절도있는 삶을 살았으며 말년에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스토아적인 절제심을 보이며 자신이 늘 주장하던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였다. 남들의 험담과 오해에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애썼던 에피쿠로스는 어쩌면 노년의 삶에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노년에 맞게 생활 습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마음속의 모든 욕망을 조용히 누르면서 삶의 반경도 줄일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행동은 조금 더 느려지고, 살아온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며 용서할 자를 용서하고 품어줄 자를 품어주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머지않았음을 자각하고 조금씩 정리하여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있으며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외면하고 준비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016년 2월 국회에서 ‘웰다잉 법’이 통과되어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웰다잉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 치료를 받지 않는 법이다. 나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위한 웰다잉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죽음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준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세대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삶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없다. 노년의 삶은 더욱 중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홀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시기다. 더군다나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육신의 온갖 질병이 있으므로 자칫 마음이 무너지기 쉬운 시기다. 노년에 대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뒷방 노인네, 불평하는 옹고집 노인네, 과거를 한탄하며 하소연하는 노인네, 아무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절대 고독의 노인네로 전락하기 쉽다.
노년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정심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훈련을 쌓는 것은 필요하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4)
주(註)
*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안광복 저, 웅진씽크빅, 2014년, 75쪽
** 세계철학사 상권, H.J.슈퇴릭히 저, 임석진 옮김, 분도출판사, 1981년, 259쪽
5. 노래하는 백조
4. 흐름에 몸을 맡기고
1. 노년을 위한 마음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