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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22. 2018

주변인으로 살지 말자

신명기 3

신명기는 역사적 정황을 소개하는 서문과 모세의 죽음을 회고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모세의 설교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40년 동안 그들을 이끌었던 모세가 죽음을 앞에 두고 고별사와 같은 설교를 하였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스라엘 민족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 설교를 하는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리고 모세의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신명기를 읽을 때 이 마음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율법은 누가 죄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심판 도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율법은 은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정한 법일까? 사실 이 세상에 율법을 온전히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율법 앞에서 죄인이다. 만일 율법을 심판 도구로만 해석한다면, 그보다 더 엄격하고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둔 모세가 무시무시한 칼날 같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켜라! 안 지키면 죽음이다’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의 마음을 담아 설교하지 않았을까? 신명기에는 모세의 마음만 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곧 사랑과 자비와 은혜와 긍휼이 담겨있다. 신명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심판 도구로만 읽어낸다면, 그것은 잘못 읽은 것이다. 모세는 마음을 다 담아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다. 상상하건대 모세는 이 율법 설교를 하면서 몇 번이고 울컥 눈물을 지었을 것이다.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만들라고 권면하고 격려하는 설교가 신명기 설교다. 


신명기 1장 1절과 5절에서 모세는 요단 저편에서 이 설교를 하였다고 소개한다. 요단 저편은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요단강을 기준으로 요단 동편 모압 땅을 요단 저편이라고 한다. 신명기 저자가 ‘요단 저편에서 모세가 설교하였다’고 한다면 글쓴이는 요단 이편 곧 가나안 땅에 있다는 이야기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모세가 기록하였다고 하여 모세오경이라 부른다. 그런데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다. 그렇다면, 신명기 저자가 ‘요단 저편이라’ 말하였다면 그는 모세가 아님이 분명하다.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의문을 제기한다. 모세가 아니라면, 신명기를 누가 썼고 언제 썼을까? 학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온갖 추측을 하지만 아직 학계에서 확실하게 누가 언제 썼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혼자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나는 혼자 사시는 어머니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에 모든 전화번호가 있기 때문에 굳이 외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검색 가능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보니 쓸데없는 것들을 기억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의 기억 능력은 매우 약하다. 지난주 설교 내용은 고사하고 설교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조선 시대 선비들은 사서삼경을 다 외웠다. 사서삼경만 외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한 학자들의 책까지 다 외웠다. 송대의 유학자 주희가 논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율곡 이이의 해석과 퇴계 이황의 해석은 어떠한지까지도 모두 외웠다. 현대인이 볼 때 그들의 암기력은 가히 신기에 가깝다. 


3천 년 전 모세가 신명기를 설교할 때 그들에게 필기도구는 있었을까? 만일 있었다면 어디에 어떻게 기록하였을까? 출애굽기에 보면 십계명을 돌판에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만일 돌판에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면, 그 양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였고,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집트의 파피루스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피루스에 모세 오경을 써서 가지고 다녔을 것 같지도 않다. 필기도구가 변변치 않던 그 시절에는 짐작건대 모든 것을 암기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구약의 랍비들은 구약 성경 전체를 외운다고 한다. 히브리어는 우리나라 판소리와 같이 운율과 라임(rhyme)이 있어 외우기가 쉽다. 모세 오경은 기록보다는 구전으로 전수되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모세의 설교를 구전으로 전수하다가 누가 썼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세의 설교인가 아니면 쓴 사람의 설교인가? 당연히 모세의 설교다. 어떤 사람은 후대 모세의 설교를 기록하는 사람이 모세라는 이름만 빌려서 쓴 것이고 실제 모세가 설교한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논쟁할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추측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신명기가 모세의 설교라고 믿는다.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신명기1:5)

율법에 ‘이’라는 지시 대명사는 그들이 이미 율법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 시점이 신명기를 기록할 때인지 아니면 모세가 설교할 때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미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수하였기 때문에 모세가 설교할 때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신명기 1장 2~3절에 신명기 저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문장을 썼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여정을 소개하는 말이다. 2절은 처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국경 도시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던 이야기고, 3절은 다시 38년이 지나 요단강 저쪽 편까지 온 이야기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2년여 동안 시내산에서 머물다 출발해서 40년째 해에 요단 저편에 도착하였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보낸 기간은 38년이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최남단에 위치한 국경 도시다. 가데스 바네아를 통과하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38년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들어가기를 포기하였다. 그들은 38년 동안 가나안 변두리를 빙빙 돌며 세월을 허송했다. 38년동안 그들은 어디에 끼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주변인처럼 살았다.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후에 모세가 신명기 설교를 하였다. 모세는 신명기 설교를 통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강력한 도전을 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나라를 멋지게 만들어 보라고 도전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전략이나 무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 죽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실한 승리를 보여주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가나안 땅에 아무리 강대한 족속이 있다 할지라도 문제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수도 없이 경험하면서도 이스라엘은 주변부에서 목적과 방향을 잃은 채 경계선 위에서 살았다. 한 발만 내디디면 가나안 땅인데 그걸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스라엘 전 역사가 바로 경계인으로 살아갔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언적 설교를 하였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주변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믿을 거면 확실히 믿으라고 요구하였다. 이스라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과 이방신, 곧 바알과 아세라를 두고 결정을 못 내리다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도 버릴 수 없고, 바알신이 주겠다는 물질적 풍요도 버리지 못하겠다는 그들의 태도는 오늘 우리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 


요즘 웰빙(well-being)이라는 개념이 유행한다. 말이 좋아서 웰빙이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삶의 방식이다. 타인을 생각하거나 영적이거나 정신적인 면을 생각하는 모습은 매우 약하다. 한 마디로 바알적 사고방식이다. 오늘 우리도 바알적 사고방식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주변인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모세는 유언적으로 외친다. 더는 주변인으로 살지 말고 경계를 넘어서 네가 서야 할 곳이 어딘지 분명히 하라.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라! 이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가자!!! 모세의 외침에 모세의 마음이 보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신명기 이야기 

1. 구약의 헌법 - 신명기 서론 

2. 신명기의 중심주제 - 신명기 서론

3. 하나님이 주신 숙제 - 신4:6-8

4. 잊지마라 - 신명기 8장 

5. 내 땅이다. - 신명기 11:12

6.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 - 신명기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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