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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22. 2015

아버지가 그립다.

북한 공산 정권의 핍박은 말할 수 없이 강렬하였다. 공산 정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데, 다음 이야기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문상 온 박창환 목사에게 들은 것이다. 


박 목사님은 나에게 영적 아비와 같은 분이다. 아버지 밑에서 처음 전도사로 부임하였을 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와 나는 한방을 쓰며 형제같이 지냈다.


아버지는 설교가 끝나면 20살이나 어린 박 전도사에게 묻곤 하였다.“오늘 내 설교 어땠어? 혹시 고칠 데는 없었나?" 신학 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못한 아버지는 늘 자신의 설교에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점검받기를 원하셨다.


“목사님! 오늘 설교 좋았습니다.” 하면 아버지는 무척 좋아하셨다.  그러나 “목사님! 오늘 설교는 교리적으로 이러저러한 부분에 좀 문제가 있는듯합니다.” 하면 아버지는 침울해 하시면서 그 부분의 설명을 듣고 고치려고 노력하셨다.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신 아버지는 늘 책을 가까이하셨다.  맞춤법도 틀리게 쓰기 일쑤여서 옆에서 내가 교정도 봐주었다. 


박 전도사는 그런 아버님을 은근 깔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신학적으로 깊이가 없는 목사님의 설교에 들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와 대화하는 중에 한가지 깊은 감명을 받고 그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아버지는 40대부터 틀니를 하고 있었다. “목사님! 왜 틀니를 하셨어요?" “응! 내가 이북에서 예수를 믿었잖아. 공산당 놈들이 주일날 집에 있는 소를 빌려달라고 하잖아. 그런데 신명기 5장 17절에 안식일에는 네 집의 소나 나귀나 모든 가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잖아.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했지. 그러자 공산당 놈들이 나를 잡아다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그때 이빨이 다 빠졌어. 그래도 난 저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지." 아버지의 이 말에 박 전도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신학적으로는 부족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신앙은 자신이 결코 흉내 낼 수도 없고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며, 설교에도 은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눈물이 맺혔다. 나는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 이야기 

8. 너만은 살아다오. 그리고 우리를 기억해다오

7. 기적이 일어나다. 

6. 아버지가 그립다

5. 자립하고 싶어요.

4. 발로 뛰는 목회

3.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2.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1. 하나님만은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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