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공부를 핑계로 온 식구를 배곯이며 저 혼자 고고한 체하는 학문을 가장 혐오했다.
"들으니 네가 국화를 심었다더구나.
국화 한 두둑을 심으면 가난한 선비의 몇 달 양식을 지탱하기에 충분하다.
꽃을 보는 것뿐만이 아닌 것이다.
약초인 생지황, 반하, 도라지, 천궁 등과, 염료인 쪽 풀이나 꼭두서니 따위도 모두 유념할 만하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정민 지음 / 김영사 / 536쪽)
귀양 가서 집안 살림을 살펴볼 수 없게 된 다산은 아들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한다.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된 폐족 가문이라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사일은 결코 천한 일이 아니라 선비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한다.
그는 아들에게 양계도 하고 과수나 채소도 길러 식구를 먹이고, 남는 것은 시장에 내다 팔도록 권한다.
다산 자신도 귀양지에서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채소밭을 가꾸었다.
선비라고 책만 읽고 공부만 하는 것은 참다운 선비의 자세가 아니다.
학문하면서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인 바탕을 갖추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 아버지가 서울대를 나오셨는데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자신의 학벌만 자랑하셨다.
친구 어머니는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자그마한 식당에서 죽을 힘을 다해 일하는데도 아버지는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소위 하릴없는 한량이셨다.
다산의 스승이었던 성호 이익 역시도 선비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농사할 때 조선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경제적인 활동, 노동 활동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바로 이점을 깨닫고 직업도 소명임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