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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Dec 25. 2017

"소피아엔 "볼 게" 없다!"

소피아의 가까운 과거: 20세기적 건축과 기념비들

지난 5월 우연히 만난 지인이

곧 유럽여행 갈건데,

불가리아 소피아도 들를거라 했을 때,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소피아는 볼 게 없는데!"


였다.


그리고 곧이어


"벨리코 터르노보라고

불가리아 북부 도시가 있는데 거기 좋아.

내가 일찍 알았으면 말해줬을텐데."


라고

굉장히 중요한 비밀을 누설하듯이,

고수의 비법을 전수하듯이,

서둘러

하지만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들이

근사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닐 때,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지만,

상대방한테는 그게 가장 중요할 수 있으니,

원한다면

외모가 멋진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며

대안을 제시하는

뭐 그런 마음이었다.


난 물론 소피아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좋아하는 감정이

그것의 시각적 매력에 기반한 건 아니다.


내가 그 도시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솔직히 소피아엔 볼 건 별로 없다.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졌을지도 모르겠지만,

1-2월에 소피아에 머물렀던

나는

그나마 자연의 아름다움도 누리지 못했다.


주로 "보는" 것에

그리고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방점이 찍히는,


주관적인 느낌이나 새로운 배움보다는

주로 관광(sightseeing)으로

둘러"보는"

한국인의 여행지로

소피아가 최상의 장소가 아님을 알기에,


누군가가

처음의 나처럼

그 멀리까지 가서 실망할까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피아가

불가리아라는 나라가

혹시나 나쁜 평판을 얻게 될까봐,


누군가가 불가리아에 가는데


소피아만 간다면,


그리고 1-2일 짧게 머물거라면,


난 차라리 말리고 싶다.


불가리아엔

"벨리코 터르노보"나

"플로브디프",

"바르나" 같은

좀 더 "볼 거 많은" 도시들도 있다.


그런데 수도 소피아는

"볼거리가 많거나"

"찍을 거리가 많은"

예쁜 도시는 아니다.


난 2014년 1월 소피아 가기전,

큰맘 먹고 미러리스 카메라를 샀었다.


그냥 일반 디지털 카메라를 쓰던

나는

조금 더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단 생각을

오랫동안 하다가

DSLR과 미러리스 카메라를

여러모로 저울질하며 비교하고,

결국 성능이 더 좋은 DSLR는

또 나중에 사기로 나름 혼자 타협을 하고

휴대하기 좀 더 좋은 미러리스를 산 것이다.


그래서 그 신삥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겨서

소피아 도착한 날

이국적인 건물들을 피사체로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각오로

신나게 시내로 나갔는데,


이런!


찍을 게 없다!




소피아는 꽤 오래된 도시지만,

그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다양하게 남아 있진 않다.


우선 소피아 자체가

로마제국 시대 

울피아 세르디카 때까지 발전을 거듭하다

그 담부터는 크게 번성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냥 보통의 도시다

19세기 중반 불가리아의 수도가 되어서,

한 나라의 수도가 흔히 받는

"집중 개발"의 수혜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다가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불가리아는

500년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당연히 그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고, 고전주의 등등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유럽식 건축이 세워지지 않았고,


오스만제국의 지배가 끝났을 때

이슬람사원을 다 없앴다고 하더니,


그 때 터키식 건물도 다 없앴는지,


아니면

특별한 터키식 건축양식이랄 게 없는지

(인터넷에서 터키전통양식을 검색해봤는데,

특별한 걸 사실 잘 모르겠다)


5세기 동안 지배를 받았는데도

그나마

터키식 건축의 흔적마저도 별로 남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1,2차 세계대전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불가리아는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당했고,


수도 소피아도

폭격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전후 파괴된 소피아를 재건할 때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고,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다른 많은 유로 공산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학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독재적인 정권의 강압성 만큼이나

거대한 크기로

사람들을 압도했던,

소련발

사회주의적 고전주의적 거대 건축들이

소피아 중심부를 채웠다.


그나마 사회주의적 고전주의 건축들은

나름대로의 "양식"이 있는데,


보통의 소피아의 건물들은

그런 양식이랄 것도 없이

그냥 한국의, 서울의 낡은 아파트 같이 생겼다.


비행기를 10시간 정도 타고

머나먼 유럽 대륙까지와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하지만

별로 반갑지 않은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는거다.


그런데

그것에 익숙해지니,

뭔가 누구나 한 눈에 보고 감탄하게 되는

그런 화려한 아름다움 말고,

소소한 아름다움에 더 집중하게 된다.


분명히 한국에서도,

서울에서도 여러번 마주했을텐데,

그냥 아무 감흥 없이 지나쳤던

그런 

아름다움인지 몰랐던

흔한 아름다움,


빛의 많고 적음,

태양의 위치,

바람의 강약,

오늘의 날씨,

오늘의 운세,

그리고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아무것도 아니게도,

그리고

괜시리 특별하게도 보이는

그런

그야말로 주관적인 아름다움 말이다.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거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거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흔한 주택가, Sofia, Bulgaria)


그리고 처음엔

그냥 보기 싫다고만 느꼈던,

소비에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차갑고 텁텁하고 밋밋하고 거대한

20세기의 기념비들과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산체제이전의

역시나 딱딱하고 별로 아름답지 않은 기념비들도


그것도 소피아가 가진 다른 얼굴이라고,

특별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나중엔

또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그 소피아의 한 얼굴,

가장 가까운 과거의 얼굴

이 포스트에서 좀 둘러볼까 한다.




1. 독수리 다리(Орлов Мост, Eagle Bridge)


난 소피아 동쪽에 머물렀는데,

그 근처에 유독

20세기 공산주의 시대에 세워진 듯한

기념비가 많이 있다.


독수리 다리(Орлов Мост, Eagle Bridge)

난 처음 그런 건줄 알았다.


(출처: 구글지도, 지도 위 "독수리다리"의 링크를 클릭하면 지도로 연결)


(2014년 1-2월, 독수리 다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독수리 다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독수리 다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독수리 다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독수리 다리,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독수리 다리, Sofia, Bulgaria)


그런데 알고보니 "독수리 다리"는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지기 전

1891년에 체코 건축가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 체코 건축가는 소피아 북쪽

"사자 다리(Лъвов мост, Lions' Bridge)"를

만든 2년 후에

이 "독수리 다리"까지 건설했다.


(소피아의 사자 다리 이야기는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한 바 있다.)


독수리 다리"자유"를 상징하는데,

19세기 오스만의 지배에 저항했던

디아베키르(Диарбекир)의 수감자들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기도 하단다.


독수리 다리엔 양쪽으로 두 마리씩

네 마리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데,


이제 그 날개 밑을 지나면

굵직굵직한

20세기 언저리의 기념비들이 등장하는,

소피아 시내의 중요한 관문이다.




2. 소련군 기념비(Паметник на Съветската армия, Monument to the Soviet Army)


소련군 기념비(Паметник на Съветската армия,

Monument to the Soviet Army)는

"독수리 다리" 바로 옆에,

위 지도에서 독수리다리 서쪽에

초록색으로 표시된 그 공원에 자리잡고 있다.


1954년 "소련군에 의한 해방"

10주년을 기념하며 처음 세워졌고,

역시나 그래서

뭔가 공산시대 기념비 느낌이 많이 난다.


한국은 공산체제를 겪지 않았어도,

과거 독재정권에서

그리고 현재에도

이런 구체적 형상의 실제 인물 동상이나

역동적인 무명인들의 조각을 많이 만드는 편이니,

한국인에게는

그냥 좀 평범한

혹은 옛스러운 동상일 수 있겠으나,


유럽에서는

공산체제를 겪지 않은 나라에서

20세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식의 기념비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변에 큰 건물이 없는

넓은 공원 한 가운데

높은 기념비가 우뚝 서 있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적인

조각이

높다란 기념비 아래와 옆에는 부조의 형태로,

그 기념비 꼭대기와

그 곁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독립된 입체적 조각의 형태로 서 있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 기념비의

뒷 모습은 이렇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앞모습은 이렇다.


높다란 기념비 꼭대기엔

총을 든 소련군과

아이를 안은 불가리아 여자와

불가리아 남자가

양쪽에 서 있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그 거대한 기념비 아래쪽엔

불가리아어로

해방자 소련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불가리아 민중이

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금빛으로 새겨져 있다.


뭔가 시대착오적인 글귀지만,

아마도 이걸 만들 땐

정말 감사했을 것 같기도 하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그리고 그 기념비가 바라보고 있는

광장 앞 쪽에는

소련군과 불가리아 사람들이 섞여서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으로 표현한 동상이 서 있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이 기념비 근처는 항상

10대, 20대 초반 젊은이들,

특히 그 또래의 남자들로 북적인다.


보드도 타고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며

그렇게 그 주변에 몰려 있다.


대체로 위험한 느낌은 아니고,

그냥 놀러나온 보통 애들 같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그렇게 그냥 탈정치적인

소년과 청년의 놀이터처럼 보이는 그 공간이

가까이 가서 보니,

매우 정치적이다.


기념비 한쪽에

러시아와 불가리아의 깃발이 서 있었는데

그건

뭐 기념비 자체가

"소련군 기념비"

그런가보다 했는데,


2014년 2월엔

동상 아래

우크라이나어로


Слава Україні(우크라이나에 영광을)
Капутин[카푸틴]


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위의 것은

Heil Hitler!(히틀러에게 영광을)를 변형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구호이고,


아랫 것은  

독일어 Kaputt(부서진, 고장난, 지친)

Putin을 합친 신조어란다.


내가 우연히 지나가던

2014년 2월의 어느날엔

기념비 아래

"해방자 소련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불가리아 민중이"라는

글씨 부분을

우크라이나 국기색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칠하고 있고,

옆에 경찰 3명이 서 있기도 했다.


그때 난 그냥 다른 때와 다르다는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나름 특별한 사건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던 거였다.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소련군 기념비, Sofia, Bulgaria)


이 "소련군 기념비"가

강한 친소련, 친러적인 상징성을 띠다 보니,

최근 몇년 이 곳은

주로 예술적 방법으로

"반러" 선언을 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단다.


그 시작은

2011년 6월 익명의 예술가들이

미국적인 이미지를 덧입히고,

그 밑에 불가리아어로

В крак с времето(시대에 발맞춰)

라는 글씨를 쓴 팝아트였다.


이건 3일후에 지워졌지만,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후

이곳의 바로 이 부조는

"반러 선언" 혹은 "탈러 선언"의

상징적 장소가 되어 버렸다.


출처: http://blog-360.net/reportaj/pametnikat-na-savetskata-armia-izrisuvan/


이후 2013년 8월에는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45주년을 맞아

누군가가 기념비 아래쪽 부조를

핑크색으로 칠하고

그 밑에 체코어로

Bulharsko se omlouvá.(불가리아는 사과한다)

라고 써 놓았다.


출처: https://www.vesti.bg/bulgaria/obshtestvo/s-rozovo-bylgariia-se-izviniava-5991950


그리고 2014년 2월

내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목격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2014년 2월 23일에

이 부조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이 칠해진다.


키예프의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물러난

바로 다음날이다.


출처: http://teenews.eu/?p=17065


그 이후 이 "소련군 기념비" 정면의 부조와

관련된 비슷한 뉴스가 없는 걸 보면,

그냥

아직 다음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거나,

혹은

추후 이런 퍼포먼스를 막기 위해

뭔가 공적 조치가 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쩜 이 기념비는 더이상

2014년 1-2월의 분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특별한 사건들 때문에

이 딱딱하고 정형화된

흔한 지난 세기적인 조형물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곳이 되었다.




3. 국회 광장 (Пл. народно събрание, National Assembly Square)


"소련군 기념비"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국회 광장 (Пл. народно събрание,

 National Assembly Square)이 나온다.


출처: 구글 지도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국회 광장"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광장 한 편에는

"국회"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Народно Събрание)" 건물은

5세기간 오스만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1884년에 처음 세워졌고,


이제 이슬람 터키를 벗어나

그리스도교에 기반한 "유럽"이 되고 싶어

"유럽식 의회"를 만들었을 불가리아는

의회 건물도

신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했다.


만약 그 이후 불가리아가 공산화되지 않았고,

유럽문화권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면,

소피아 시내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전면에는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 (통합이 권력을 만든다).

라고 쓰여 있다.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불가리아는 대통령제 국가로

의회는 한국처럼 단원제로 되어 있는데,

뭔가 군소정당이 많고,

그 때 그 때의 이슈에 따라

선거때마다 이합집산을 하나보다.


무슨 주제도 잘 설명을 해주시던,

연세 지긋한 베테랑 불가리아어 남선생님

토모프 선생님도

정치 얘기를 할 때는

말하기 싫으신 듯 한숨을 내쉬었는데,

제도가 매우 복잡하고,

뭔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요구와 관계 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2014년 1-2월에 갔을 땐

국회 앞에 "천막 당사(?)"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의 정확한 정체가 뭔지,

그들의 요구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천막 사진 속 정치인이

말풍선 속에 하는 말은

Имайте срам(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이고,


소박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쓰여 있는 글씨는

Нова година(새로운 한 해)
Нов морал в политиката(정치엔 새로운 윤리)

라는 의미다.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국회" 건물 길 건너편엔

해방자 황제 기념비(Паметникът на Царя-освободител, Monument to the Tsar Liberator)

가 서 있다.


흔히 러시아 황제에 대한 호칭으로 알려진

차르(Цар)라는 표현은

불가리아에서 먼저 사용했지만,

오스만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14세기 후반 이후엔

불가리아에 차르가 없었기 때문에,

현대식 옷차림을 봤을 때

불가리아 차르는 아닌 것 같다 했더니,


역시나

기념비 속의 차르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불가리아를 그들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다.


공산주의 시대에 "제국주의"의 수장인

황제를 기리는 동상을 건설할 것 같지도 않고,

그 조각도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달리,

노동자처럼 보이는 인물이 없다 했더니,


공산정권 훨씬 전

1901-1903년에

이탈리아 조각가가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동상들과 달리,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말들은

좀 더 늘씬하고,

승리의 여신이

가장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상징적인 요소가 덧붙여 있다.


동상 앞쪽에는

Царю Освободителю(해방자 차르에게)
Признателна България(감사의 마음으로 불가리아가)

라고 쓰여 있는데,


격을 모두 상실한 현대 불가리아어와 달리

여격 어미가 표시되어 있는 게

언어학 전공자인 나에겐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회 광장, Sofia, Bulgaria)




4. 크리스탈 공원 (Градина "Кристал", Crystal Park)


"국회 광장"에서 서쪽으로 몇분 더 걸어가면

같은 블록 안에

크리스탈 공원(Градина "Кристал", Crystal Park)이 나온다.


(출처: 구글 지도)


이 공원에 붙은

"크리스탈(Кристал)"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옛날 레스토랑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다른 유로 공산국가와 비슷하게

불가리아는

1990년에 공산정권이 무너졌는데,

1989년 처음 반공산정권 시위를 시작한 곳

바로 여기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이나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은 곳이라,

아마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반체제 시위에 참여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무언가를 무너뜨린

중요한 사건의 시작점이다.


이 곳은 그냥 앉아 있거나

조금 걸어다니기도 좋은 아담한 공원인데,

불가리아 사람들에겐

중요한 문화행사들이 열리는 공간이란다.


공원 한 구석엔

스탐볼로프 기념비(паметник на Стефан Стамболов)가 서 있는데,


그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19세기 말 수상을 역임하였고,


엄격한 독재 정치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근대 불가리아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뤄,

"불가리아의 비스마르크"로 불린다고 한다.


1895년 스탐볼로프는 집에 가던 도중

이 곳에서

페르디난드 왕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는데,

그가 방탄복을 입고 있는 걸 안 암살범들이

그의 머리에 칼을 꽂아 살해했다고 한다.


그 얘기가 불가리아인들에겐 워낙 유명해서인지

동상의 머리도 윗부분이 잘려 있다.


(2014년 1-2월, 크리스털 정원, Sofia, Bulgaria)


이 동상은 1995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비록 좀 괴이하긴 하지만,

다른 소피아 시대의 동상들에 비해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모습니다.


아마도 이 동상을 여기 세운 건

 "불가리아의 유럽화"를 위해 애쓴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함인 것 같다.


또한 그는 러시아제국이

당시 불가리아를 속국으로 만들려한다고 생각하고

러시아와 거리를 두었다고 하는데,


그런 그의 외교적 성향은

약 1세기 후

이 공원에서 일어난 1989-1990년 반공산시위와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동상이

"러시아 성당"을 등지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5.쉽카 기념비 (Паметник шипка, Shipka Monument)


"크리스탈 공원"에서 북쪽으로 길을 건너

몇 분 걸어가면

쉽카 기념비 (Паметник шипка, Shipka Monument)가 나타난다.


쉽카(Шипка, Shipka)

발칸산맥의 한 봉우리로,

1877-1878년

러터전쟁 때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며,

이 동상은

그 때 전투를 벌인 불가리아 자원병을 기리기 위해

2008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불가리아 자원병(Българският опълченец) 기념비라 불리기도 하는 이 동상은

체코 화가 Veshin의

The Samara Flag이라는

1911년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 출처: https://colnect.com/en/pocket_calendars/pocket_calendar/7521-The_Samara_Flag_-_1911_-_Jaroslav_Veshin-Bulgaria



(2014년 1-2월, 십카 기념비, Sofia, Bulgaria)


그 기념비 남쪽의 인도에는

수공예품과 그림을 파는

가판대가 10개 남짓 세워져 있고,


그 기념비 북쪽으로는

아무런 설명도 안 써 있는,

하지만 매우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역동적 동상이 서 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이게 무슨 동상인지는 알 수 없다.


(2014년 1-2월, 십카 기념비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십카 기념비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십카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십카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십카 기념비, Sofia, Bulgaria)




6. 바실 레프스키 기념비 (Vassil Levski Monument, Паметник Васил Левски)


이제 "쉽카 기념비"에서 동쪽으로

소피아 성당과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사거리 한 가운데 서 있는

바실 렙스키 기념비 (Vassil Levski Monument, Паметник Васил Левски)

를 마주하게 된다.



"바실 레프스키 기념비"

불가리아가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한 후

가장 처음 세운 기념비 중 하나로,

바실 레프스키가 교수형 당한 바로 그 자리에

1895년 세워졌다.


체코 조각가의 작품이다.


"바실 레프스키"는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불가리아 민족영웅이다.


원래 성은 레프스키가 아닌데,

사자(лев:레프, 현대불가리아어에선 лъв(러프))

처럼 용맹하다고 해서

"레프스키"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단지 불가리아 독립뿐 아니라

민족과 종교를 초월한 인류의 평등에

대한 신념을 가진 혁명가로,

불가리아뿐 아니라

옆나라 세르비아에서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불가리아 독립 5년전인

1873년 35살의 나이로

지금 그의 기념비가 세워진 곳에서

참수당했는데,

그 후

그의 시신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포스트에 쓴 것처럼,

소피아의 "성 페트카 성당"에

그의 시신이 묻혔다고

많은 불가리아 사람들이 믿고 있다.


(2014년 1-2월, 바실 렙스키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바실 렙스키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바실 렙스키 기념비,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바실 렙스키 기념비, Sofia, Bulgaria)




7. 국립 문화 궁전 (НДК, National Palace of Culture)


국립문화궁전(НДК, National Palace of Culture)

남동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문화시설이다.


소피아 중심가의 남단에

비토샤 거리(Улица Витоша)남쪽에서

길을 건너면 공원이 나타나고,


그 공원 끝에

"엔.데.카"로 불리는

거대한 "국립문화궁전"이 보인다.


"국립문화궁전"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

바로 옆에

НДК라는 이름의 지하철역도 있다.


출처: 구글 지도


"국립문화궁전"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을 기념하여

1981년에 건설된,

누가봐도 공산주의 시대의 산물처럼 보이는,

미학적인 고려가 별로 없이

규모에 집중한 그런 건축이다.


공산정권이 붕괴된 후

1990년대에는 많은 부분이 민영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국가 소유의 건물이며,


소피아 국제 영화제(Sofia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을 비롯하여,


많은 국제 행사, 정치, 경제 회의,

콘서트, 공연, 전시회 등을 유치하는

중요한 문화 공간이다.


나도 여기 간 김에

연극을 하나 볼까 했다가,

마땅히 볼 게 없어서 그만뒀지만,

뭔가 행사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NDK 홈페이지)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이곳의 공연과 전시가 어떤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건물과

주변 조형물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분수인 듯 보이는

NDK앞 거대공간의 장치도

겨울이라 작동하지 않고

나무도 앙상해서

내게 이곳은 그냥 삭막 그 자체였다.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2014년 1-2월, 국립문화궁전 공원, Sofia, Bulgaria)




8. 러시아 기념비 (Руски паметник, Russian Monument)


NDK에서 서쪽으로

30분 내외로 걸으면

러시아 기념비 (Руски паметник, Russian Monument)가 나온다.


출처: 구글 지도


"러시아 기념비"는

1877년 러시아군에 패한

오스만 터키군들이 소피아시를 빠져나가던

그 길목에

1882년 세웠다.


"바실 레프스키" 기념비 또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세우자는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상의 문제로

1895년에야 세워졌는데,


그래도 "러시아 기념비"는

그보다 이른

1882년에 세울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당시 불가리아보다는

좀 더 경제적 형편이 좋았을

러시아인들이 모은 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세워져서 그런지

"바실 레프스키 기념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기념비"도 오벨리스크 모양이다.


정면에는

러시아어로

전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지배 하
그의 의지와 사랑으로
불가리아가 해방되었다.
1878년 2월 19일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2014년 1-2월, 러시아 기념비, Sofia,Bulgaria)
(2014년 1-2월, 러시아 기념비, Sofia,Bulgaria)

뒤에는

우리가, 우리가 아닌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1877-1878

라고 쓰여있다.


(2014년 1-2월, 러시아 기념비, Sofia,Bulgaria)


언어학 전공자로서 신기한 것은

현대 러시아어와는 사뭇 다른,

1918년 정자법 개혁 이전의

러시아어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처음 소피아에 갔을 땐

새로 장만한 카메라로 특별하게

"찍을 거리"가 없어서

좀 실망했지만,


나중엔


특별히

"찍을 거리"가 없어도 좋았고,


그 다음엔


평소에 잘 안 찍던 평범한 것들이

의미 있는 "찍을 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너무 자주 보이는

"러시아" 관련 조형물과 건축이,

오래 지속된

불가리아의

친 소련적, 친 러시아적 행보의

건축적 반영인 것 같아,

별로 달갑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다른 종교, 다른 언어, 다른 문화의 침입자의

500년간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그리고 그걸 표현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건, 도시건,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사람이건, 도시건, 나라건

사연을 알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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