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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지만, 사랑했던 그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20년동안 잘 살아왔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by 이혼해도 안 죽어요 Mar 16. 2025

지금도 생각나는 겨울 장면 하나는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그 먼 언덕길을 내려 가던 뒷모습이다. 그해 첫눈이 아주 많이 내렸었다. 


나는 참 이기적이게도 늘 남자친구가 집 까지 바래주고 가기를 바랬다. 

만일 그걸 한번이라도 귀찮아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결혼까지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실험이기도 하고 그런 사소한 것조차 귀찮 아 하는 사람이랑은 무슨 결혼까지 꿈꾸느냐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남편은 북쪽으로 나는 남쪽으로 택시비만 한달에 30만원을 찍던 27살 시절. 

밤새도록 왔다 갔다 하던 시절도 있었다. 

남편의 집 근처에서 놀다가 남편은 들어가면 되는데, 꼭 지하철을 타던 택시를 타던 바래다주었고, 집까지 오면 또 같이 택시를 타고 그의 집으로 바래다주는. 

택시를 타고 왔다갔다하는 그런 일들을 반복했다.


헤어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시댁은 조그마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그 옆에는 항상 아름드리 미루나무 한 그루 가 서 있었고, 작지만 소박한 집들과 거리들이 좋았다.


남편과 헤어지고 집에 와서 누우면 항상 그 나무가 생각났다. 남편이 초등학교시절일 때나 중, 고등학교 시절,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갈때까지도 그 나무는 항상 걱정스럽게 혹은 너그럽게, 작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보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에게 날 심어 놓고 싶었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의 가슴 속에 날 심어 놓고 싶었다.


그러면서 작고 소박하게 그를 위해 반찬을 만들고, 찌개도 끓이면서 맛 있는 걸 해 먹이고 싶은 마음과 둘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시를 읽어주는 그런 삶을 꿈 꾸었다.


남편은 고분고분한 남자였다. 또 항상 내 말을 다 들어주었고, 정말 착해서 결혼을 했다. 

남편을 천사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남편은 밤새도록 나를 안고 잤다. 사람이 잠들면 오히려 불편해서 돌아 눕는데, 남편은 그렇 게 하지 않았고, 중간에 무슨 일로 깨워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정말 이 사람을 날 사랑하는 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사람. 어떤 드라마에서 ‘애기야 가자’ 그래서 심쿵했다지만, 사실 그 드라마가 나오기도 전에 나를 ‘애기’라고 부른 사람은 남편이 처음이었다.


난 그의 눈을 좋아했다. 남자치고 크고 짙은 쌍거풀이 있는 눈매였고, 쌍거풀이 없는 나는 늘 그의 눈이 부러웠다. 또한 잇몸이 다 드러나도록 밝게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 한마디로 사람이 선했다. 


처음 마주하는 사람은 눈도 잘 못 맞추고, 그땐 술도 잘 못 먹고, 중간에 졸기가 일수인 사람이었다. 

부장님이 주는 술을 마시다가 저녁 8시에 조는 남자.

남편은 내가 다니던 회사 부서의 같은 동료였다.


회사에서도 같은 부서라서 얼굴을 맨날 보는데도, 퇴근하고 나서도 맨날 붙어 있었던 것 같 다. 그랬기에 사귄지 1년만에 결혼을 했을 태지만.


행복했다.


많은 세월이 흘러도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희미하게 웃음이 난다.

그때의 순수한 날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다고 해서 과정 모두가 거짓 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그 모든 노력과 과정까지도 거짓말이나 진실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니까. 다만, 우린 마지막 관문 몇 개를 같이 못 건넜을 뿐이고, 처음에 타인이었듯이 다시 타인의 자리로 돌아간 것 뿐이다.


이런 나의 사고방식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알고 있다. 어떤 이는 그런다 아직도 이혼 한 남편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아이의 생부로써 잘 살 아가길 바랄 뿐이지, 애정이 남아 있다 거나 다시 합친다는 생각은 없다. 


20년을 같이 살았 다는 것은 충분히 후회하지 않을 만큼 생각했고, 검증이 되었고, 미련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합친다는 것은 그도 원하지 않겠지만, 과거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바 람직하지 않은 퇴보일 뿐. 서로에게 미래가 없는 삶을 그리지는 않는다. 


팔다리가 잘려 기능을 상실했는데, 이어 붙인다고 그것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의리로 산다는 말도 일종의 사랑과 미련이 있다는 말이지, 그것 또한 사라지고 아무것 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딱 거기 까지가 끝인 거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없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큼 사랑했고, 예쁜 가정을 꾸몄고, 서로 존중했으며, 잘 살아왔다. 20년 동안 잘 살아왔으면 결혼은 정말 충분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제는 한번 뿐인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고, 이젠 제대로 나의 삶을 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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