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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Sep 21. 2023

사농공상,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까?

유교와 직업

영화 '극한직업'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우리는 그렇게 가르치기에 이렇게 배웠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던 봉건제 계급 사회가 무너짐에 따라 우리에게는 무수한 직업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전근대의 귀천론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字 職業)’은 선망의 대상이자 귀한 직업이며 *3D 업종은 기피의 대상이자 천한 직업으로 여겨집니다. 교과서적인 문장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구르는 일반 서민들의 경험은 크나큰 괴리감을 낳습니다. “학교에서는 분명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직업마다 종사자가 가지는 사회적 위세는 하늘과 땅차이이니 말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높은 것에 유교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육의 목적이 학생의 인성함양이나 사회적 가치의 구현보다도 입시, 취업, 경제적 성공, 사회적 지위에 치중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검사, 변호사, 판사, 의사 등 앞서 말한 사자 직업은 하나같이 높은 성적과 지적 수준을 요구합니다. 높은 연봉을 받고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누립니다.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처럼 말입니다. 선비(士)라고 하면 흔히 갓을 쓰고 뒷짐을 지며 유유자적하게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양반을 떠올리게 됩니다. 현대판 선비인 사자 직업은 양반처럼 부유하고, 정승처럼 고귀하며, 유학자처럼 박식합니다. 이러한 귀천의식은 곧 다른 직업에 대한 배척과 멸시로 이어집니다. 이른바 가난하고, 저급하며, 못 배운 ‘상것’을 천대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평등사회에 껍데기에 맞게 유학자들은 마땅히 새로운 예를 말하고 뭇사람의 인식과 공론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계급사회입니다.


 유교는 자칫하면 오직 '선비 계급'을 위한 가르침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유교가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도덕적 가르침, 보편윤리로서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교가 정의하는 계급, 직분, 직업으로서의 선비에 대해 먼저 알아봅니다. 또 고전적인 직업분류법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분과 인식에 대한 시대적 맥락을 읽어보고 유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으로서 현대적으로 해석해 봅니다. 어찌 되었던 먹고살기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봅니다. 이 글은 유림에 대한 변호이자, 때늦은 변명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근현대사 속에서 불의에 항거하느라, 먹고살기 급급해서, 지키기에도 벅찼던 유교가 다시 한번 떨쳐 일어나길 바라며 이어 적습니다.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환경을 가진 직업



영화 '데이브'

과거와 현재의 사농공상, 그리고 선비라는 존재


 선비는 원래 유교를 배우는 학자라는 의미 이전에, 고대 중국 정부의 하급 관리·귀족·장교를 의미했습니다. 직업보다는 지위나 계급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천자(天子), 천자에게 봉토를 받은 경대부(卿大夫), 그 아래등급인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를 말한 것이 바로 선비입니다. 공자가 가르침을 편 춘추시대에 접어들면서 계급으로서의 선비가 아닌 직분으로서의 선비가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지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선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공자는 지배층만 향유하던 예법 등의 지식을 민간에 유통시켰으며 유력 가문의 피를 잇지 않고, 아버지가 붙여준 가정교사가 없더라도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선비답기에 선비’의 정체성이 생겨났습니다. 선비는 맹자가 있던 전국시대에 이르러서 군주와 더불어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국가를 경영하는 직업의 성질을 띄우게 됩니다. 농업, 공업,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정당한 보수를 받듯이, 선비는 벼슬을 함으로써 밥을 빌어먹는 전문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에서 말하는 선비는 계급, 직업으로서의 선비보다는 군자라는 인격적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한 직분입니다. 공자는 선비의 본뜻과 마찬가지인 계급으로서의 군자가 아니라 직분으로서의 군자를 말했으며, 군자는 밥을 빌어먹기 위함이 아니라 의롭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글의 제목으로 돌아와 봅니다. 사농공상, 직업의 귀천은 있을까요? 얼핏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유학자로서요. 단, 직업의 귀천은 연봉의 높고 낮음이나 노동의 무겁고 가벼움에 달려있지 않고 세상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따라야 합니다. 사농공상에서 가장 귀한 직업이 선비이며, 가장 천한 것은 상인인 이유부터 따져봅시다. 사농공상은 조선시대가 되어서야 확립된 말입니다. 영국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의 산업 분류법과 현대 직무 분류를 뜻하는 칼라(collar)로 사농공상을 이해해 본다면 농은 블루칼라로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생산직입니다. 공은 그레이칼라로 2차 산업에 종사하는 가공업 생산관리직, 상은 핑크칼라로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서비스직이겠지요. 그렇다면 사는 사무직에 해당하는 화이트 칼라일까요? 저공무원을 뜻하는 레드칼라에 더욱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사를 현대의 잣대로 완벽하게 재단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사(士) : 레드칼라(Red Collar), 공무원. 사무직뿐만이 아니라 전쟁 시 군인의 역할도 겸하였다.

농(農) : 블루칼라(Blue Collar), 1차 산업 생산직. 축산업까지 포함한다.

공(工) : 그레이칼라(Gray Collar), 가공업 및 생산관리직 2차 산업.

상(商) : 핑크칼라(Pink Collar), 3차 산업 서비스직. 어업의 경우에 때때로 상업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당대 조선 사대부들이 실제 현실에서 어떠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농공상의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명분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선비의 다음인 농민은 세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생산합니다. 농민 다음인 공인은 세상 사람이 입는 옷, 사는 집과 건설재, 쓰는 도구를 생산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의식주와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농민과 공인 있고, 그들의 복지를 개선하고 생활 수준을 향상하는 역할을 맡은 선비이기에 귀했던 것이지요. 전근대적인 시각에서 상인은 개개인의 이익만 불리기만 하기 때문에 가장 천하다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교의 원류인 선진시대의 선비, 정확히는 공자와 그 제자들은 선비를 제외한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영화 '케니'

공자와 제자들이 말하는 직업, 사농공상


『논어』 자로4

樊遲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請學為圃. 曰 吾不如老圃。樊遲出. 子曰 小人哉!樊須也. 上好禮,則民莫敢不敬. 上好義,則民莫敢不服. 上好信,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焉用稼?

 번지가 곡식농사짓는 법을 청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 다시 채소농사짓는 법을 청하자, 말씀하셨다. “나는 채소 짓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이로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공경스러워지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저절로 따르고, 윗사람이 미덥기를 좋아하면 백성은 저절로 진심으로 부응한다. 이렇게 되면, 사방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식을 포대기에 싸 업고 올 것이다. 어찌 농사를 쓰겠느냐?”

논어 미자7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처져 막대기로 삼태기를 매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어르신, 선생님을 보셨습니까?”라고 물으니, 노인은 “손발을 부지런히 부리질 않고 오곡도 분별하지 못하는데, 뭔 놈의 선생님이오?”라고 말하고선, 막대기를 꽂고 김을 맸다.


 공자는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번지의 질문을 에둘러 피합니다. 그리고 번지가 나가자 그에 대해 소인이라고 비판하며 선비의 직분을 다해야 하며, 어찌 농사를 쓰겠느냐는 타박의 말을 합니다. 이것은 농업이라는 직종에 대한 비난이라기 보기에는 애매합니다. 자신이 전수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직분을 배우는 데에 몰두하지 않고 다른 길로 새려는 제자에 대한, 다소 투박한 격려의 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신이 늙은 농부보다도 못하다는 말은 "더 해줄 말이 없다."라는 저의와 함께 농업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을 낮춘 것입니다. 반어법일 수도 있지만 공자의 제자 자로가 홀로 뒤처져 어느 노인을 만나 신세를 지는 일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입니다. 공자에 대해 "곡식 종류도 구분 못하는 화이트 칼라"라는 듯 비판하는 노인입니다. 젊은 시절 가난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던 공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공자는 "은자로구나(隱者也)"라고 말합니다. 은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은 지식인이지요. 심지어 자로에게 다시 찾아뵈어보라고까지 합니다. 공자의 다른 직종에 대한 존중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논어 자장7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자하가 말했다. “모든 공인이 작업장에서 있으면서 그 일을 성취하듯, 군자는 배움의 장에서 그 도를 완성한다.”


 공자의 또 다른 제자 자하는 아예 공인의 일과 군자의 도에 의미심장한 등식을 취해버립니다. 비유적인 표현일지라도, 공인인 명장이 물건을 만드는 것과 선비인 군자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예법을 배우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특정 용도가 있는 물건과도 같이 정치 또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쓸모가 있다는 말이지요. 자하보다 후대 유학자인 맹자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다(士之仕也, 猶農夫之耕也)" 분명 유학자들은 자신이 주업으로 여기는 선비를 가장 귀하다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연상되는 사농공상의 철저한 신분주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지요.


『사기』「중니제자열전」자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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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은 사고팔기를 잘하여 시세의 변동에 따라 물건을 회전시켰다. 남의 좋은 점을 칭찬하길 좋아했지만 남의 잘못을 감출 줄도 몰랐다. 일찍 노와 위에서 재상을 지냈고, 가산이 천금에 이르렀다. 제에서 일생을 마쳤다.  


 농업, 공업은 '세상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지'라는 관점에서 유교에게 인정받을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업은 앞서 말했듯 후대의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논리에 의해 천하다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상업은 유교 세계관 속에 함께 녹아들 수 없는 직업일까요? 아닙니다. 공자의 제자 중 두각을 드러냈던 자공은 원래 직업이 상인이었습니다. 상인은 원래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인데, 주나라 이전에 기득권을 가졌던 상나라 사람들이 몰락한 후 이 직업에 많이 종사했습니다. 자공이 태어난 위나라 역시 옛 상나라 사람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자공은 공자의 인정을 받은 제자이자 뛰어난 선비였습니다. 돈을 버는 재능이 있었지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사업의 기초적인 원리를 깊게 체득한 전형적인 장사꾼이자 수많은 재산을 쌓은 자수성가형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공은 자신의 돈을 개인을 위해 독점하지 않습니다. 공자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자본을 투입해 스승을 지원했습니다. 스승과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 안정과 도덕적 회복에 투신했으며, 이건 뭇 선비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상업이 그토록 천하다면 공자의 제자 중 가장 훌륭한 인물이라 칭송받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인 자공의 업적과 숭고한 뜻마저 멸시당해야 할까요? 공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상업을 천하다고 말할까요?



영화 '분노의 역류'

직업에 귀천은 있지만, 사농공상은 평등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직업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지요. 직업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입니다. 돈은 땅 파면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품을 팔아야 합니다. 재능이든 기술이든 시간이든 간에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상호협의 아래에서 직업은 형성됩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법이며, 수요가 있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그 직업이 "세상이 원하는 상품"이라는 뜻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사농공상은 귀천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직업이 귀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했던 것에 번복이 아니지요. 존재 자체가 도덕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말입니다.


 먹고살자고 아무 일이나 하면 되나요? 아니지요. 이 시대의 사농공상인 공무원, 농업인, 기술자, 사업가라는 직업의 속성은 귀하고 천할 게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귀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이 어떤 인격을 갖추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공무원의 사회적 신분이 높다고 해도 비리를 저지르고 뇌물을 받아먹는 짓이 용서될 리가 없습니다. 농업인이 농약을 뿌려 지은 농사물을 유기농이라고 속일 수도 있고, 기술자가 질 나쁜 재료로 물건을 만들 수도 있고, 사업가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탈세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한편 인신매매업자, 조직폭력배, 아동 포르노 판매자, 불법 사채업자는 직업의 속성 자체가 천합니다. 번 돈으로 자선사업을 벌이던 사회기부를 하던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인신매매는 인을 없애는 일이며, 조직폭력은 덕을 없애는 일이며, 아동 포르노 판매는 예를 없애는 일이며, 불법 사채업은 의를 없애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고로, 무슨 직업을 갖느냐도 중요하고, 직업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갖느냐도 중요합니다.




 계급과 신분으로서의 선비, 직분과 정체성으로서의 선비, 직업으로서의 선비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계급과 신분으로서의 선비는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왕이자 천자인 시대입니다. 제1조 제2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15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집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건 인정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제32조 제2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집니다. 우리는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직업적인 선비와 가장 가까운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지만,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선비가 될 수 있습니다. 공자시대로부터 선비에게 중요한 것은 계급, 직업이 아니라 직분이었습니다.


 신분, 직업과는 별개로 우리는 선비의 직분을 가져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헌법 전문에 명시된 바,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해야 하는 우리는 이제 교육을 받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선비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계급과 직업의 선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보편윤리로서 유교를 받아들이고 직분으로서의 선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근간이 되는 규범이자 정신인 헌법은 유교와 결이 같습니다. 유교가 현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방향성을 언제나 열려있으며 그 길은 전 국민의 선비화라고 말씀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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