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지금까지 지어 온 것은 성이긴 성인데 모래성이다.
바닷물에 절여진 모래를 단단히 쌓아,
나름대로 멋진 모래성을 만들었다.
성이 멋있게 쌓일수록,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파도가 내 모래성을 무너뜨리면 어떡하지?
내가 만든 거라고는 이 모래성뿐인데.
모래성이 무너지면 나는 가진 게 없는데.
단단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연약한 나의 모래성을 바라보며
결국 거대한 파도가 모래성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이 곧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대한 파도가 집어삼키는 것은 단순히 모래성 그 자체가 아닌,
넓은 개념으로서는 나 자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모래성을 쌓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모래성을 지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고,
이렇게 지켜온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모래성이 무너지는 건 결국 내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모래성이 무너진 뒤, 내가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난 왜 이렇게 약한 모래성을 만든 걸까.
내가 만든 것은 왜 이렇게 보잘것없는 모래성일까.
나는 왜 이것밖에 못 만드는 사람이고, 이것마저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일까?
내 눈앞에 놓인 성은 거대한 파도에 휩싸여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모래성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서워진다.
모래성이 소중할수록,
실은 당연하게도 모래성이 '나'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잊게 된다.
모래성이 무너지더라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파도에 굴하지 않고 모래성을 만든 사람이고,
모래성이 무너지더라도 생각보다 파도가 더 강하여 무너진 것일 뿐이다.
나는 온전히 이 바닷가에 서 있고,
파도에 쓸려버린 모래를 모을 수 있고,
다시 내가 원하는 모래성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지켜왔던 모래성이 무너지더라도
슬프지만 나는 또 모래성을 만들 수 있다.
왜냐면 모래성은 파도에 무너질 수 있지만,
나는 아무리 거센 파도가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으니까.
그게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