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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Aug 25. 2020

내 인생 첫 번째 도둑질

친구의 열쇠고리와 내 꿈을 훔친 날.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개학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어느 날이었다. 며칠간 내린 눈으로 학교 운동장은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들려오는 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내 신경을 어지간히 자극했다. 친구들은 밤새 쌓인 눈밭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겠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 텅 빈 공원이나 운동장을 찾아가곤 했는데, 나로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몸에 털이 삐쭉 서는 그 소름 끼치는 소리를 어떻게 견뎌내는지도 잘 모르겠고, 왜 불필요하게 흔적을 남겨야만 하는지 그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편한 소리와 불편한 감각을 피하려 잠시 쓸모없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학교 정문에서는 민수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가족여행을 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돌아온 모양이다. 방학만 되면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아마 혼자만의 시간 속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민수는 와 어느 정도 가까워진 순간부터 지난 여행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다녀왔는데 그렇게 많은 오토바이는 태어나서 본 적이 없다느니, 호수 근처에서 하는 공연을 봤는데 그게 그렇게 근사했다느니 하는 유치한 자랑들이 그의 동그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기를 읽을 때의 설렘이라기보다는 왜인지 샘이 나서 자꾸만 차오르는 질투심 같은 것들이 내 안을 조금씩 채웠다. 게다가,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나의 속 좁은 질투심 사이에는 짜증이 가득 들어찼다.


가볍게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민수의 이야기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는 나도 저번에 베트남에 다녀와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 근처 몇 군데를 가족여행으로 다녀오긴 했으나 베트남에 가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의 들뜬 기분을 짓누르고 싶다. 민수가 하노이를 다녀왔대서 나는 호찌민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하노이의 오토바이 숫자 정도는 많은 것도 아니라고, 호찌민에는 더 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펼쳐진다고, 당장 인구수만 봐도 그렇지 않겠냐고. 또, 호찌민이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 호찌민을 보지 않았다면 베트남을 다녀오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떨었다. 내가 계속해서 몰아붙이자 민수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행복했던 민수의 첫 해외여행의 추억과 자부심, 심지어는 그의 귀여운 허풍까지 모두 짓밟은 것이다.


마지막에는 민수가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았고, 그 후에는 조금씩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에게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은 오롯이 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추하고 졸렬한 데다가 비겁하기까지 했다. 몸속 깊은 곳 어딘가가 단단히 뒤틀린 채로 세상을 살았고 그러면서 느낀 불편함을 모두 민수에게 쏟아냈다. 그런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또 나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던 민수에게 그래서는 안 됐는데 그렇게 하고 말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가 잘못한 기억은 다른 기억들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여느 날과는 다르게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누웠는데 형 누나들이 보이지 않았다. 뒤통수가 싸해지면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달력 앞으로 달려가 천천히 날짜를 셌다. 달력의 중간쯤에는 '개학'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근처에 와서는 민수와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항상 그렇듯 따분한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도 항상 그렇듯 속도를 조금씩 늦추면서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무리 한가운데 껴서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느니, 차라리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속 편하다.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땅으로 내리깔았다. 그러는 중에 우연히 민수 가방을 바라봤다. 다 낡아서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가방의 지퍼에는 못 보던 열쇠고리가 달려있었다.


그것은 아오자이를 입은 집게손가락만 한 인형이었다. 베트남에서 사 온 기념품인 모양이다. 잊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아까보다 발걸음이 몇 배는 더 무거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열쇠고리는 민수가 정말 베트남에 다녀왔다는 증표이자, 모르는 척 내보이는 자랑과도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 분 안 거짓말을 쏟아내어 민수에게 상처를 줬던 나에게는 그 열쇠고리가 없었다. 죄책감과 패배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걸음은 조금 더 무거워져서 매 걸음 허벅지가 뻐근하게 저려왔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수업도 듣지 않고 그 열쇠고리만을 쳐다봤다.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고개가 자꾸만 그곳으로 돌려졌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는 사이, 천장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와 동시에 친구들은 모두 신나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시간표를 살피니 3교시는 체육 시간이다. 나는 체육 수업이 싫었다. 땀이 나게 뛰어다니는 것도 싫었고, 누구를 이기기 위해 애쓰는 것은 더 싫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 또 한 번 종소리가 울렸다. 체육관에 가는 대신 교실 한 귀퉁이에 숨었다. 걸리지 않기를 바랐고, 만약 걸린다면 머리가 아프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살짝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었다.


졸음이 조금씩 밀려올 때쯤, 내 시선은 다시 한 번 민수의 열쇠고리로 고정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얄미웠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는 그것이 가지고 싶었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뭐에 홀린 듯 가방으로 다가가서 열쇠고리를 빼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열쇠고리를 주머니에 넣고서는 곧장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심장이 쿵쿵 울렸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의 소음이 모두 멎은 듯했다. 조용히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서 친구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행히 왜 늦었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좀처럼 떨림을 멈추지 않았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상태여서 몇 번이나 배구공에 얼굴을 맞았다.


영혼이 빠져있는 사이, 시간은 날개를 단 듯 날아갔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더는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몸에 힘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늘어진 몸과 달리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입에는 쓴맛이 남았다. 긴장의 끝에는 감이나 성취감이 숨어있을 줄 알았지만, 그 뒤에는 끝없는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기억이 교차하여 지났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지막 종소리가 울린 이후였다. 친구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가서는 엄마한테 아프다고 말하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차라리 잠이 오길 바랐건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또렷했다. 또 한 번 생각이 스쳐 지났고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전날 있었던 일이 온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태연하게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학교를 향해 걸었다. 학교에 가는 동안에는 민수가 열쇠고리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으면 어떡하나 몇 번 걱정했지만,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억지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해서 민수의 표정을 살폈다. 눈치채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마지막 결정만이 남았다. 열쇠고리를 다시 돌려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가질 것인가. 지 않고 고민하며 다리를 떠는 사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맨 마지막 줄에 서서 꼴찌로 밥을 먹었지만, 그날 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튀어나가 복도를 달렸다. 급식소 안에 들어가서도 가장 빨리 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다.


누군가 교실로 들어오기 전에 결정해야 다. 다시 돌려놓자니 미련이 발목을 잡았고, 평생 간직하고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다. 복도에서 신발 소리가 들렸다. 처음 그것을 훔칠 때 그랬던 것처럼, 뭐에 이끌린 듯 가방 앞으로 다가가서 그 아래에 열쇠고리를 내려놓았다. 모든 긴장이 풀어지면서 다리에 힘도 같이 풀렸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또다시 자리에 앉아 민수의 열쇠고리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혹시 다른 친구들이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아무도 열쇠고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5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다. 나는 자연스레 걸어가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열쇠고리 네 거 니야? 떨어진 것 같은데." 민수는 그제야 그것을 확인하고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에게 선물 주는 것을 까먹었다며 가방을 뒤적였다. 가방에서 나온 민수의 손에는 내가 훔친 것과 똑같은 열쇠고리 서너 개가 들려져 있었다. 민수는 친한 친구들한테만 주는 것이라며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친구에게 열쇠고리를 건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며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는 아직도 설명할 수 없다. 그때가 처음이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 그을 또 한 번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긴장감은 해소되었지만, 내가 민수에게 못되게 굴었고 또 민수의 열쇠고리를 훔쳤다는 사실은 곧 나를 갉아먹는 좀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고, 민수뿐만 아니라 여행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여행은 경쟁의 수단이나 자랑거리가 돼서는 안 됐다.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이었고, 항상 차갑던 나를 그나마 미지근하게 만들어줬던 유일한 것이었다. 그때 내가 훔친 것은 자그마한 친구의 열쇠고리 따위가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했 여행을 스스로 훔쳐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내 꿈을 훔쳤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평생 여행며 살기를 원하니까 말이다.


선생님께 아프다고 말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눈물 흐른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사람은 없었다. 텅 빈 집에 불을 켜고 들어가서 조용히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불안했던 그 이틀간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기장에 적어 넣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일기를 적었다. 그리고 그 일기가 끝을 보일 때쯤, 엄마와 작은 누나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처음으로 그 일기장을 펴본 것은 재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일기장을 모아둔 서랍을 열었고, 또 우연히 그 맨 끝으로 손을 넣어 아무 노트나 한 권을 뽑아들었는데 거기에는 오늘 적은 글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것을 읽는 순간 힘겨웠고 또 벅찼던 그 날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냥 지나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버거웠던 기억에서 완전히 무뎌지지 못다. 곧장 일기장을 덮고 입안 잔뜩 머금은 쓴맛을 삼켰다.


2019년을 살아가는 지금도 나는 그날 있었던 일들이 버겁다. 단순히 도둑질한 일 때문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그 후로 나는 내 기억으로 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것을 훔쳤다. 월례 행사로 엄마 지갑에 손을 댔던 시절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와 슈퍼에서 담배를 훔치다가 사장님에게 잡혔던 적도 있었다. 다만, 그 날 있었던 일. 그러니까 10년 전쯤 어느 날, 나를 좋아했던 친구에게서 열쇠고리를 훔치고, 내 모든 것이었던 여행을 나 자신으로부터 훔쳐간 그 기억은 다른 일들과 견주어 보아도 너무나 버겁고 무겁게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나는 미련이 많은 편이지만, 후회를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벌어진 일을 책임을 지는 편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데 왜 그 이틀간 벌어진 일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한숨에 무게가 실리는지 정말 버겁고 후회되기만 한다.


어느 순간 인연이 다해버린 민수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린 시절 나 자신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어떠한 결말도 내지 않은 이 글을 마친다.


2019년 7월 12일, 하노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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