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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Mar 19. 2021

심연에 빠져 허공을 보다

빛이 없으면 모든 어둠은 허공이, 모든 허공은 어둠이 된다.

고작 30분,

10년이 훌쩍 넘는 결혼 생활을 완전히 끝마치는 데에는 고작 30분이 걸렸다. 지긋지긋한 그 사람을 지나쳐 법원 주차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천근 같은 몸뚱이가 '쿵, 쿵'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슴께가 조금씩 저릿했다. 누군가 내 가슴을 열고 탱자나무 가시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심장에 난 작은 구멍으로 부르고뉴 산 와인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어두운 감정의 첨단은 무엇일까. 허무함일까, 아니면 아쉬움일까. 차라리 후련함이라면 좀 좋으련만, 여간해선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보면 그럴 리가 없다.


이제 막 시동을 걸고 법원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젯밤에 혜린이가 또 쓰러져서 병원에 왔단다. '병원'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오백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어떻게 그냥 죽게 내버려 두냐고, 힘든 건 알겠는데 사람이 살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 볼멘소리가 입안까지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전화를 종일 붙들고 짜증을 내어봐야 해결되는 일은 없다.


통장 잔고는 참담했다. 253만 7천 원.

이제 곧 사십 줄에 접어드는 직장인인데, 나도 참 어지간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럴싸한 집 한 채를 인생의 목표로 두고 아등바등 살았는데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한때는 우리 집이었던 내 집을 합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그 여편네와 내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들놈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졌다. 나는 당연히 불법 점거라고, 언제든 쫓아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변호사는 오히려 양육비는 주지 않아도 되니 그 정도면 싸게 막은 거라고 했다. 이제는 새 마음으로 새 삶을 살아보라며 이죽거리던 변호사 놈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2개를 뽑자면, 첫째는 그 여편네와 결혼한 것이고 둘째는 그 싸구려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다.


신용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백만 원밖에 안 되는 고시원 보증금을 뺄 수도 없고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차 안은 금세 한숨과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이렇게 된 이상 기대볼 곳은 경택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빌려준 돈을 다시 받아내는 것뿐이지만, 아쉬운 쪽은 항상 빌려준 사람이다.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경택의 가게가 보였다. TV 출연의 여파인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가게 안에는 손님이 꽤 들어차 있었다. 연매출 20억의 비결이 라면수프와 싸구려 다시다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수십 년을 봐도 적응 안 되는 그 자식의 뚱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하지만 이젠 정말 방법이 없다.


다짜고짜 주방으로 들어가서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경택은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한숨을 쉬며 나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요즘 장사가 잘 안돼서, 임대료니 뭐니 나갈 게 많아서 당분간은 조금 어렵겠다고 말했다. 주방에서 밖으로 연결된 문 사이로 경택의 벤츠가 보였다. 벤츠를 보고 나니 녀석이 작년에 매입한 성수동 아파트가 떠올랐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장사가 잘 안돼서 돈이 없단다. 매일 저녁 최신형 독일 세단을 타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도 돈이 없단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오늘 이혼을 했고, 10년이 넘은 아반떼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나고, 곧 젊음을 갈아 넣어 산 아파트를 뺏길 것이고, 지금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거기다가 앞으로는 혜린이 병원비까지 내야 해서 다음 달쯤 되면 멀쩡한 밥 한 끼 먹을 돈도 없을 것이라고. 동정을 구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자존심을 잃어버린 것은 아득히 먼 옛날이라, 수치심도 들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동생을 살려야 했고, 굶지 않아야 했다. 경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녀석의 얼굴을 봤는데 역시나였다. 지나치게 불쾌한 그 표정이 그의 얼굴에 완연했다.


경택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는 다짜고짜 내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철없이 왜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고. 내가 어른답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야기를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듣자니 기가 찼다. 근데 또 생각해보니, 만약 부도덕함이 어른다움의 기준이라면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 거지 같은 말이 사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자존심은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지나온 내 인생이 통째로 부정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까는 괜찮던 속이 조금씩 쓰리기 시작했다.


적을 깨고, 이번에는 그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나도 요즘 힘들어 죽겠다고, 매장 상황이 어쩌고저쩌고. 귓가를 스쳐 지나는 그의 말은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공감할 수도 없었다. 한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속이 쓰리다 못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경택의 얼굴 때문이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미는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불쾌함을 꾹 참고 불만 가득 찬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하릴없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그래서 갚을 거야, 안 갚을 거야?"라고 담담히 물었다. 그는 미간을 한껏 찡그리더니 안 갚는 게 아니고 못 갚는 거라고 말했다.


가게를 나와 다시 차로 향하는데, 뒤편에서 경택의 혼잣말이 들렸다.

아니, 내가 듣고야 말았으니 더는 혼잣말도, 다른 무엇도 아니게 된 그 말소리가.


"아, 거지새끼 그깟 푼돈 500 가지고 더럽게 지랄하네."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편의'를 위해 다녀온 것은 아니었고, '생존'때문이었다. 내 손에는 편의점 로고가 크게 박힌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봉투 속에서는 빅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육개장 사발면이 연신 걸쩍지근한 생명의 숨결을 뱉어댔다. 그것들은 단순히 음식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나는 소우주가 내뿜는 뜨거운 숨결을 간접적으로 마시며 머리를 굴렸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 게.

'라면을 먼저 먹어야 할까, 삼각김밥을 먼저 먹어야 할까, 아니면 삼각김밥을 국물에 적셔 먹는 건 어떨까?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맛있을 텐데.'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기쁨이 혀끝에서 출발해 사지 퍼져나갔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짜릿한 간지러움이 목덜미까지 차올라서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서둘러 신발끈을 고쳐 매고 냅다 거리를 달렸다. 정말 신이 나서,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진실로 아름다운 몸짓이 아닌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움은 짧은 생명력을 가졌다. 그 설레는 뜀박질은 애초에 교양의 종말, 인간 존엄의 소멸을 의미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인간 삶의 메커니즘은 아주 간단하다. 돈을 버는 일(대부분 고통의 연속)과 쓰는 일(대부분 사치)의 무한한 반복. 그런 의미에서 잘 사는 방법은 제한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잘 쓰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해답은 바로 '교양'이다.


가령 우리가 백만 원짜리 나파밸리 와인을 사서 마신다고 해보자. 와인의 품종, 떼루아 등을 잘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효용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잘 알고 마시는 것이 효용이 더 클 것이다. 다른 사치품, 그러니까 거의 모든 소비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폭넓은 지식과 품위가 소비의 질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당연히 예외가 있다. 바로 소비가 생존과 직접 연결된 경우다. 생존을 위한 소비의 효용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며칠째 밥을 굶은 커피 애호가에게 천 원짜리 빵과 최고급 파나마 게이샤 커피 중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그는 무엇을 고를까?

 

교양은 소비의 효용을 극대화시키고, 생존을 위한 갈망은 교양을 무력화시킨다.




'쿵'


무슨 소리냐고? 무단횡단을 하는 누군가가 차에 부딪혀, 도로에 쓰러질 때 났던 소리다.

사방으로 검붉은 핏물이 튀었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인간이 교양을 잃었기 때문에, 심연의 끝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지 살 수 있어서 신이 났고, 신이 나서 달렸을 뿐인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찢어질 듯 아파서 고개를 숙여보니,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그 터무니없는 고통이 절단 환자들이 흔히 겪는 환지통이라고 했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중환자실에는 창문이 없는데도 바람 소리가 침대맡까지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거센 바람에도 흐릿한 기억은 훨훨 날아가 꿈이 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순간, 통장 잔고가 떠올랐다.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가 나면, 보험료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급한 수술을 마치고 서둘러 고시원으로 향했다. 생존을 위해 입원한 것이었지만,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모험을 선택한 것이었다. 택시가 고시원 앞에서 멈춰 섰고, 기사 아저씨가 손을 내미는 순간 내 전 재산은 백삼만 팔천칠백 원이 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요금 할인은 택시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충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고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새로 생기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목발을 짚고 계단을 넘었다. 몇 번이나 넘어졌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시곗바늘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고시원에서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물지 않은 봉합부에서 피고름이 터져 나왔다. 붉은 눈물방울이 고시원 계단과 복도를 촉촉이 적셨다.


어찌어찌 가방에서 키를 꺼내 방문 손잡이에 꽂아 넣었다. 문고리를 잡아당겨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누군가 복도 끝에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신데,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가시는 거죠?" 나는 피로에 찌든 20대 청년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병원에 있는 넉 달 동안 월세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넉 달이면 이미 보증금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총무 방을 찾아갔다. 총무 방은 1층이라 다시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다시 몇 번을 넘어졌고, 비명을 질렀다. 핏물은 어느새 한쪽 다리를 타고 내려가 신발까지 축축이 적셨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총무는, 인기척을 느끼고 좁은 창문을 열어젖혔다. 말이 아닌 내 꼴을, 아니 검붉은 피로 물든 복도를 마주한 그는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나를 쏘아봤다. 나는 그에게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된 좁은 방과 묘연해진 내 짐들의 행방을 캐물었다. 그는 내가 보증금이 다 까이도록 고시원에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기에 죽은 줄 알고 방을 뺐다고 했다. 종종 있는 일이라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라고, 짐은 창고에 넣어놨으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핏물이 굳어 끈적해진 목발을 짚고 창고에 들어갔다. 창고 한 귀퉁이에 301호라고 적힌 작은 봉투가 보였다. 한 다리로 서서 멀쩡히 봉투를 풀 재간이 없어서 대충 목발로 봉투를 찢었다. 이혼 재판을 위해 준비했던 서류와 그동안 밀렸던 공과금 지로가 맨 위에 있었다. 이제는 맞지도 않은 옷가지와 꼴도 보기 싫은 사진 쪼가리도 얼핏 보였다. 초라한 짐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쓰라렸다. 하지만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무용해진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님과 동시에 나의 전부이기도 했으므로 어떻게든 봉투를 챙겨야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혜린이 전화를 받았다. 내일 엄마랑 음식을 싸들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요즘 엄마가 너무 힘이 없어서 가지 못 할 것 같단다. 혜린은 잘 쉬고 다음 주에 병원에서 보자고 말했다. 나는 하릴없이 퇴원한 사실을 숨긴 채, 다음 주에 보자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와 혜린에게 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날마다 깊어지는 그들의 한숨과 주름살을 나는 더 볼 자신이 없다. 말이 아닐 집안 꼴을, 전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자 위산이 턱끝까지 역류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우물쭈물하다가, 하는 수 없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연락처를 뒤적거려 봐도 정말 방법이 없었다. 신호음이 다섯 번쯤 울렸을 때,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서류상으로 한 군데 묶여 있지도 않으니, 아들은 아니다. 그냥 한동안 같이 지내서 낯익은 꼬마애가 전화를 받았다고 하는 게 옳겠다.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리쳤다. "엄마, 아빠한테 전화 왔어." 그 사람은 화들짝 놀라서 "아빠는 누가 아빠야"라고 외치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주저앉아 고민하다가, 그냥 짐을 창고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잘려나간 다리보다 목발을 끼워 넣은 겨드랑이가 더 아프고 쓰렸다. 이제 주머니에는 달랑 삼만 팔천칠백 원이 남았다. 지도를 켜고 어디 가야 할까, 골몰히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한강 양옆으로 길게 펼쳐진 고급 아파트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택의 집이 떠올랐다. 머리가 번뜩였다. 엄마 집은 너무 멀고, 내 집에 가봐야 그 사람은 문을 열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때마침 모범택시가 고시원 앞을 지나기에 서둘러 팔을 흔들었다. 마지막 사치로 모범 택시비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다.


택시에 오르자 심장박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왜냐고? 그건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창문을 열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경택의 집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라운지와 연결된 인터폰을 통해 짜증이 잔뜩 섞인 경택의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경택은 표정에서 불쾌함이 풍긴다면, 제수씨는 목소리에서부터 불쾌함과 역겨움이 동시에 치민다) 그녀는 집에 경택이 없다고, 연락도 없이 찾아오면 어떡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조금 빨리 왔다고 무작정 우겼다.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수초가 흐른 뒤, "그냥 들여보내 주세요"라고 직원에게 넌지시 말했다.


친절한 경비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집 안까지 들어갔다. 경택의 아내는 내 모습을, 더 정확하게는 내 다리가 사라진 것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그녀는 나를 이리저리 훑으며 눈을 둘 곳을 찾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커피를 내어준다며 자리를 비웠다. 널찍한 벽면에 우두커니 서 있는 포칼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세상 교양 없는 사람들 집에서 울려 퍼지는 교향곡이라니, 조금은 생뚱맞은 조합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다방에 라마르조꼬 머신이, 초등학교 사진 방과 후 수업에 핫셀블라드가 있는 느낌이랄까.


은은한 소나타가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 사방으로 튀어대는 공기를 차분히 가라앉혔고, 널뛰는 내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는 내 머릿속까지 파고들어 별 의미 없는 생각을 자아냈다. 아 참,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소나타는 기악곡이나 그 형식은 아니었다. 내가 떠올린 소나타는 국산 중형 세단이었고, 그 생각이 뻗어 나가 뿌리를 내린 곳은 소나타보다 약간 작은 내 구형 아반떼였다.

'아직 병원 주차장에 있다면 주차비가 제법 나올 텐데. 근데 다리 한쪽이 없어도 멀쩡히 운전할 수 있을까?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면 가능할지도….'

나는 황급히 양손으로 뺨을 때리며 잡념을 깨부쉈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운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무의미하고 동시에 무용한 환몽일 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곡이 끝나고,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1악장이 울려 퍼졌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마지막 평온을 만끽했다.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아무리 어둡고 컴컴한 상황에서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팔자 좋게 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운명은 쉬지 않고 끝을 향해 달렸다. 잔잔하고 빠르게.




나는 곡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발코니로 향했다. 고층 아파트라 그런지 창문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사력을 다해 난간을 기어올랐다. 좁은 창문 틈새로 상쾌한 바람이 몰아쳤다. 풍경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미련의 남기지 않기에는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지나치게 아름답거나, 삭막하다면 서러운 마음만 들 테니.


노랫소리가 조금씩 희미해지며 중력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되어, 고래가 되어 하늘과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쳤다. 억은 아득히 먼 곳까지 훨훨 날았다. 37층에서의 자유낙하는 생각보다 길었다.


택시비를 내고 남은 내 전 재산, 만 오천 원이 공중에서 나부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꺼먼 아스팔트에 부딪히기 직전에는 깔깔대고 웃었던 것 같다. 아무렴 어떤가, 끝이 이렇게 즐거우면 어쨌거나  된 게 아닌가.


'쿵'

일순간 어둠이었다.

마침내 끝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지긋지긋한 이 삶보다 더 암울한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도 슬프지 않았다.

다만, 음과 동시에 터져 나온 눈물이 멈추지 않을 뿐이었다.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바람 소리가 느껴진다. 돌고 돌아 어둠이다. 유일하게 불이 꺼진 방문을 기어이 열어젖힌 것이다. 눈앞이 새하얗다. 빨리 명순응이 끝나도록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하지만 밝은 조명 때문에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도 편안히 눈을 뜰 수 없다니.  얄팍한 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


눈물이 흐른다. 팔을 뻗어 눈물을 닦으려 하는데, 아프기만 하고 움직이질 않는다. 고개를 틀어 저릿한 오른팔을 바라본다. 담요가 꽤 두꺼워서 팔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기억은 꿈이 되지 못했다. 훨훨 날아 제자리로, 겨울에서 겨울로 밤에서 밤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아지만, 눈에 힘을 풀면 다시 떠지기를 반복한다.


몸을 죄여 오는 담요가 답답해서 발길질을 해댄다. 담요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하나 남은 다리를 바라본다.


아니, 허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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