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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Oct 26. 2018

갈대를 줍지 말았어야 해

저보다 훨씬 작은 벌레를 무척이나 무서워합니다

얼마 전 집 앞 산책을 나갔다가 무성한 갈대밭을 만났다. 무심하게 늘어져있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가을이 되었다는 신호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맘때가 되면 꽃 시장에도 어김없이 여러 갈대 소재들이 보인다. 그중에서 겨울에 특히 인기가 많은 팜파스는 크기가 커서, 매장 인테리어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포르투갈에서 차를 타고 지나면 보이는 키가 큰 팜파스들.

포르투갈 여행을 갔을 때, 차를 타고 다니면 흔히 볼 수 있었던 이 팜파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육 조건이 잘 맞지 않아 재배가 어렵다고 한다. 팜파스는 집에 두면 먼지가 쉽게 앉고 붙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소담한 갈대가 좋다.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맞은편에서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집 안에 네다섯 대 꽂아 두면 참 예쁘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장 시장에 가서 갈대를 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벤치 옆에 정신없이 흩어져있는 갈대를 보았고 귀신에 홀린 듯 탈탈 털며 주워버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누군가가 갈대를 꺾어 놓고 두고 갔던지, 아니면 잡초를 제거해 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공공재는 훼손시키면 안 되기에 바라만 봤던 갈대가, 어느새 내 손에 들려 있게 되었다. 갈대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며, 누가 혹시 식물을 뽑았다고 신고하지 않을까 무서워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도둑질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괜히 찔려서 눈치를 보며 돌아왔다)

문제의 그 갈대!

유리 화병에 꽂아두니 더 이상 훌륭한 가을 인테리어 소품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다. 아직 터지지 않은 몽우리의 갈대들은 물에 꽂아두며 내일이 오길 기다렸다.

몽우리가 터지기 전 갈대(몽우리가 터지면 맨 왼쪽처럼 변해간다)

아침이 밝아 거실에 나와보니 역시나 조금씩 몽우리가 터지며 빳빳했던 갈대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원했던 그림이 나와 뿌듯한 찰나, 하얀 테이블 위에 깨보다 1/10 정도로 작은 주황빛 가루? 들이 무성하게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 작은 것들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꽃을 정리하며 가끔씩 나오는 커다란 애벌레들은 차라리 덜 징그러운 편이었다. 누구라도 함께 있으면 호들갑이라도 떨었을 텐데, 호들갑을 떨 시간 조차 없었다. 옆에 있는 다른 소품들에게 들어갔을까 하고 숱하게 물건들을 흔들며, 마음속으로 수 백 번 경악을 했다.


너무나 예쁜 주황색 가루였기에 벌레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자세히 보니 꿈틀거렸던 그 모습이 생각나 글을 쓰는 지금도 괜스레 몸이 가렵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언제나 눈독을 들였을 갈대. 벌레 퇴치를 위해 한 시간이나 쏟았던 시간이 아깝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가을맞이 대청소를 했다고 생각해야겠다.


핑크뮬리로 수놓아진 들판 - google

가을이 되면 핑크 뮬리 축제, 억새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많이 개최되는데 그 예쁜 모습들은 눈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사진첩에만 담아오자. 혹시라도 몰래 꺾어 힘들게 집에 가져간 꽃과 소재에서 어떤 벌레가 나와 집을 배회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크나큰 교훈을 얻었던 갈대 줍기 사건.
 아쉬운 대로 가을을 담은 소재로 리스를 엮어 가을 인테리어를 해야겠다. 그리고 이제 야생 갈대는 만지지도 않고 눈으로만 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Selene Florist. hy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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