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보드에, 느닷없이 만평을 그리고 말았다
목차
(1) 메모하라고 준 화이트보드가 재난(?)의 시작이 되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3
(2) 화이트보드에, 느닷없이 만평을 그리고 말았다 <<<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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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명박, 내 3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자
https://brunch.co.kr/@seochanhwe/76
(4) 너무나 당연히, 아는 것과 그리는 건 전혀 달랐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8
(5) 그의 낯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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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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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00회 채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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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로잉 아티스트로 각광 받는 김정기 작가나 아예 폐교 칠판에다 <슬램덩크> 후일담을 그려서 사진찍어 팔았던 이노우에 타케히코 작가 정도쯤 되면 화이트보드에 마카로 그리라고 해도 정말 끝내주는 게 나올 거다. 아니 사실 저 두 작가가 아니라도 웬만큼 필력 있는 만화가라면 낙서조차 말 그대로 예술로 할 터다.
하지만 많은 경우 화이트보드와 마카는 강의나 회의 때엔 유용해도 그림용으로는 그리 적합한 도구라 하기는 어렵다. 나 같이 그림의 기초가 없다면 더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내 앞에 놓인 3천 원짜리 A4 크기 화이트보드는 어째선지 너무나 매력적인 도구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쓰고 지우기가 너무나 간편한 나머지 괜히 마음가짐을 바르게 먹지 않아도 맘 갈 때 한 번 끄적일 수 있었다.
지구력 말고는 어떠한 재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선을 재며 산다. 계속할 수 있는 걸 찾지 않고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화이트보드 정도 진입 장벽이면 나 정도 수준이라도 계속할 수 있다. 이건 ‘그냥’ ‘계속’ ‘할 수 있겠다’. 물론 화이트보드는 아내가 메모하라고 준 물건이다. 그래도 그림을 그려 보면 재밌을 것 같았고, 그걸 계속해 볼 만하다 생각했다. 어차피 이건 낙서다. 재밌으면 그만이다. 근데 기왕이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내 손에서 나가고 있는 그림은 마침 2010년 연말 내 심사를 뒤틀리게 만든 어떤 소식에 관한 것이었다. 2010년 12월 29일 어느 ‘시민 A’라는 사람이 천정배 씨를 국가내란죄로 고발했다. 그 사흘 전 천정배 씨가 수원역 앞에서 열렸던 이명박 독재 심판 결의대회란 행사에서 “친 서민이라면서 서민예산 다 죽이는 이명박 정권,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는 이유다. 쓸데없이 공격 받을 게 뻔한 종류의 발언이어서 차마 잘했다고는 할 수 없을 말이지만, 곧바로 며칠만에 ‘시민 A’라는 사람이 등장해 내란죄를 묻겠다고 설치는 꼴을 보며 그 뻔하고도 얕은 수에 아연실색했다.
아닌 척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겠다는 발상이 아니고서야 이런 신속함과 과감함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 비판의 대상이 명확하게 권력의 정점을 향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너무 짜증이 나서 이명박에게 팬티 하나와 두건 하나만 씌운 꼬락서니로 그렸다. 제목은<어둠의 처형자 ‘시민 A’>. 대사는“내게 대들면 무조건 ‘내란’이다”. 지금 보면 이명박과 닮았다고 하기도 좀 어렵고 빈말로라도 잘 그렸다고 할 수 없는 조잡한 낙서지만, 이게 ‘화이트보드 낙서로 만평 그리기’라는 컨셉으로 그린 첫 그림이었다.
첫 그림은 2010년 12월 31일. 그리고 이후 이듬해인 2011년 5월 14일까지, 번호를 붙인 100편과 딴에는 미진하다 생각해 올리지 않은 10편을 합쳐 도합 110편을 그렸다.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그린 만평이라는 컨셉에 따라 제목도 <백판만평>이라 붙이기 시작했고, 당시까지 내 블로그가 있던 이글루스와 트위터에 올렸다.
5개월여라는 기간과 횟수를 보면 알겠지만 ‘매일’ 그린 건 아니었다. 이슈가 있을 때 하고픈 말이 있으면 그렸다. 지금은 귀찮아서라도 시사 이슈에 관해 생각을 길게 적거나 하진 않는데, 당시엔 아직 그런 짓을 한창 하던 때다. 30대의 시작을 이명박 당선으로 장식한 내가 하루하루 쌓여가는 우스운 꼴에 분노하지 않기가 더 어려웠다.
필연적으로 그 당시 급속 양산되던 반 민주주의자들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때의 나는 뭐라도 토해놓지 않으면 머리가 돌 것 같은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백판만평은 어쭙잖은 솜씨로나마 뭔가 토해놓고 싶어하던 마음에 엉겁결에 추가한 표현 수단이었다. 이 웃기지도 않은 수준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능력이었단 게 몹시 웃기지만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