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멋대로 만평 100회 (1)

메모하라고 준 화이트보드가 재난(?)의 시작이 되다

by 서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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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메모하라고 준 화이트보드가 재난(?)의 시작이 되다 <<< 현재 글

https://brunch.co.kr/@seochanhwe/73

(2) 화이트보드에, 느닷없이 만평을 그리고 말았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5

(3) 이명박, 내 3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자

https://brunch.co.kr/@seochanhwe/76

(4) 너무나 당연히, 아는 것과 그리는 건 전혀 달랐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8

(5) 그의 낯짝

https://brunch.co.kr/@seochanhwe/84

(6)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

https://brunch.co.kr/@seochanhwe/85

(7) 100회 채워 볼까?

https://brunch.co.kr/@seochanhwe/86




때는 2010년 성탄절을 앞둔 시점이었다. 우리 부부는 서울 마포구의 합정동의 방 두 칸짜리 빌라 꼭대기 집에 미리 신혼방을 마련했다. 지금은 그 가격에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을 위치기는 했는데, 아직은 ‘홍대 앞’의 정취를 떠나고 싶지 않던 나의 바람이 묻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 신혼방에 세간살이가 이것저것 들어오던 시기, 당시 아직 식을 올린 사이는 아니었던 아내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용도로 쓰라면서 내 방에 다○소에서 A4 한 장 정도 크기의 화이트보드를 놓아 주었다.


너무나 당연히도 내 원고 마감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도였으리라. 그런데 나는 어째선지 여기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을 정말 너무나 못 그려서 아마추어 만화인으로 동인지도 내고 만화가 어시스턴트도 했었던 아내를 부러워만 하던 입장이었다. 하지만 뭐 혼자 끼적거리고 노는 수준이면 뭐 어떠랴 싶어서 이것저것 그리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24일, 내 방에 놓인 A4 한 장 크기 화이트보드.


2010년이면 만화로 칼럼을 비롯해 이런저런 글을 쓴 게 12년째 되던 해다. 매번 듣는 질문마따나 “만화를 못 그려서 칼럼을 쓴다”는 건 단연코 아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글이든 그림으로든 뭔가 창작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는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워낙 심하기도 했다. 그런 내게 눈 앞의 화이트보드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마음대로 부담없이 낙서를 남길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처음엔 달마도를 패러디한 예수도를 성탄절 전날에 그렸다가, 마감하라고 윽박지르는 표정도 그렸다가, 점점 어느 사이엔가 그림 일기 형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재미 삼아서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아이유도 그려보고 근하신년 인사도 그려보았다. 그렇게 그리는 족족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다가 페이스북 등에 올려도 보았다. 찾아보니 그 때 내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작은 화이트보드가 앞에 있으니 인스턴트로 쓰고 지우고가 너무 자유로워서 좋더군요. 게다가 그 때 그 때 그린 걸 사진으로 남기고 지우면서 느끼는 기분도 꽤 신묘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부담 없이 쓰고 흔적도 없이 지워 없앤다'는 감각이었다. 사진으로 찍어두기야 하지만, 어차피 하찮은 실력으로 하찮은 도구를 써서 그린 하찮은 그림이었다. 그게 너무 즐거웠다. 남 앞에 내밀 수준은 못 되어도 계속 뭔가를 그려본다는 기분을 익히는 데에는 충분했다. 시간이 날 때면 그리고, 찍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쳤어야만 했다는 점이다. 계속 그리다 보니 슬그머니 그리고 자연스레 평소 늘 생각하던 주제가 그림 안에 담겼다. 그 주제란 다름아닌 정치 시사.


2010과 2011년이 어느 때냐면, 이명박 임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 시기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사이좋게 716과 503이라는 별칭을 얻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낄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어찌 저런 인간이!"란 심정에 민망하고 쪽팔려서 어쩔 줄 모를 것만 같던 시기다. 게다가 내가 주로 활동하던 블로그는 지금에 이르러 이름만 들어도 다들 탄식을 자아낼 바로 그 이름, 이글루스다. 2003년 첫 등장한 이래 많은 이들이 서로 덕질의 즐거움을 나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철저하게 파시스트들의 전초기지로 전락한 바로 그 곳! 일간베스트(일베)가 등장하기 전 그 프로토타입들이 구렁이떼마냥 도사리고 있던 바로 그곳에 내 온라인 터전이 있었다.


이런 데에다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그림을 만평 마냥 그려서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메모용이었던 화이트보드가 졸지에 재난(?)의 시작이 됐다.



(계속)



달마도 아니고 예수도. 이 모든 여정은 이 낙서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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