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내 3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자
목차
(1) 메모하라고 준 화이트보드가 재난(?)의 시작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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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이트보드에, 느닷없이 만평을 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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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명박, 내 3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자 <<< 현재 글
https://brunch.co.kr/@seochanhwe/76
(4) 너무나 당연히, 아는 것과 그리는 건 전혀 달랐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8
(5) 그의 낯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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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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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00회 채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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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명박이라는 인물을 정말 ‘위로 올라가선 안 될 자’라고 느낀 건 이 사람이 대통령 때가 아닌 서울시장을 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나는 여러 이유로 본가를 뛰쳐나와 서울 홍대 근처의 작은 고시원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첫 독립 생활을 서울에서 하기로 한 까닭이야 만화 쪽 일을 좀 더 원활하게 하겠다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기만 서울서 났을 뿐 사실 충청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입장에서 서울에 사는 이들이 인식선에 서울 바깥을 전혀 두지 않는다는 점에 자주 분통을 터트려 오던 터였다.
1990년대에 동호회를 운영하던 시기부터도 그랬는데, 이후 만화 쪽 일을 하면서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2002년 한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하겠다면서 내게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던 경험은 꽤 오래도록 원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 때 “내가 어디에 있든 필요하면 찾아 올 정도인 사람이 되자”라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요즘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사는 곳 쪽으로 찾아와 줘서 목표에 조금은 가까워지고 있지 않나 생각하곤 한다.
각설하고, 내가 고시원에 살고 있던 당시 우리나라를 뒤흔들던 화두는 바로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행정수도 이전은 말 그대로 모든 게 서울에 집중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당시의 서울시장이 바로 이명박이었다. 원래 노무현 정부가 세운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관습헌법’이라는 어쭙잖은 말까지 동원하며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폐기되었는데,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당) 세력을 비롯해 서울시를 쥐고 있던 이명박은 그야말로 반대 여론을 만드는 데에 온 힘을 다 했다.
이 때 서울 시내에는 스피커를 주렁주렁 달아놓은 트럭들이 돌아다니며 흑색선전을 쏟아내고 있었다. 고시원방에서 그 방송을 들은 나는 그야말로 막창 끝부터 꾸물텅 밀려 올라올 듯한 구역질을 느꼈다. 이런 차량을 동원하는 게 합법도 아니었을 테지만, 더 큰 문제는 내용이었다. 백 번 양보해 찬반은 있을 수 있는데, 반대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게 고작 ‘서울시민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권리와 이익을 빼앗아서 다른 쪽에 주려 한다’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종편을 넘어 극우 인사들의 유튜브 채널에서나 나올 듯한 이야기들을 그 때엔 스피커 단 방송 트럭에서 해댔고, 이렇게 모인 천만 서울 시민의 분노와 증오는 극우 인사들을 위한 좋은 양식이 되었다.
서울로 일하러 오긴 하였으나 나는 지역민이다. 그 입장에서 서울시민을 향해 이런 흑색선전과 차별의식을 획책하는 인사에게 더 큰 권력을 쥐어주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명박은, 이후 등장한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계열의 여러 인사들과는 달리 자기가 무얼 왜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인물이었다. 자기에게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면 어떤 수단도 동원할 수 있는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인물이다. 이명박의 모든 선택과 발언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나왔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굉장히 선명하고 영민한 인물이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조차 그게 이득이니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남의 밑바닥에 깔린 욕망을 자극하는 언어를 골라 쓸 줄 안다는 점이었다. 서울시민들을 선동하던 솜씨가 어디서 온 게 아니다. 대선 캠페인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이명박은 노무현 시대로 채우지 못했던 욕망의 빈자리를 정확히 공략했고, 정동영을 위시해 노무현의 방향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들 따위가 그 반동을 견뎌낼 실력은 못 됐다. 알면서도 정동영에게 표를 줘야 했던 나 같은 사람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민주공화란 시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서 나온 권력으로 함께 화목하고자 하는 철학을 담은 표현이다. 함께 화목하려면 개인의 욕망보다는 함께 하기 위한 양보와 일말의 인내에 모두가 익숙해야 한다. 독재자의 딸이자 독재 체제의 상징물 그 자체였던 박근혜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명박 같은 인물 또한 민주공화제 체제에서는 절대 위로 올라가면 안 됐다.
이 나라의 비극은 이런 자가 결국 대통령까지 됐다는 점이고, 권력을 쥐어준 결과 나라의 기둥 뿌리를 자기 이득을 위해 뽑아 먹었다는 데에 있다. 이는 사람들이 나라 꼴이 어떻든 나 잘 먹고 살 수 있게 되면 그만이라는 양가적 욕망에 충실한 결과였고, 심지어 한 번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박근혜에게까지 권력을 연결시켜줬다. 그리고 둘 다 감옥에 들어간 지금 이 시점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스피커 트럭 때와 똑같은 수준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고 소비하며 태극기를 더럽히고 있다.
이 해묵은 욕망으로 지난 9년이 사라졌다. 박근혜는 이 욕망조차 활용하지 못하고 휘둘렸지만, 출발점인 이명박은 이를 너무나 영민하게 활용했다. 그리고 기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자는 기필코 모든 걸 활용해 자기 욕심을 채울 것임을. 또한 사방 천지가 동의를 했다. 그래도 좋으니 내 배를 불려달라! 노무현을 누가 죽였는가? 결국 모두의 욕망이 평균점을 이룬 그 지점이 노무현을 부정한 결과물이다. 누구네들 말마따나 그 시점의 대한민국은 나를 포함해 “우리가 이명박이다”라 외친 셈이다. 지난 9년의 대한민국은 이명박을 시대정신으로 삼아 왔다. 박근혜도 그 연장선상에 불과했고, 결국 자기 무능이 자기를 가두고 말았다. 저 이명박도 여기까진 계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일 줄이야!
공과를 논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욕망 덩어리, 순수한 돈 귀신 그 자체가 바로 이명박이다. 이 자로 상징되는 9년 동안 대한민국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다며 서로가 서로를 진창으로 끌어내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내 30대를 통째로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바쳐야 했다. 백판만평은 온 나라에 걸쳐 하루하루 뚝뚝 묻어나오던 천박함의 구린내를 견디지 못한 내 한 시기의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이명박 개인을 욕하고 미워하면 끝날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이명박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정말 뭐라도 적지 않으면 돌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