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멋대로 만평 100회 (5)

그의 낯짝

by 서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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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메모하라고 준 화이트보드가 재난(?)의 시작이 되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3

(2) 화이트보드에, 느닷없이 만평을 그리고 말았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5

(3) 이명박, 내 3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자

https://brunch.co.kr/@seochanhwe/76

(4) 너무나 당연히, 아는 것과 그리는 건 전혀 달랐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8

(5) 그의 낯짝 <<< 현재 글

https://brunch.co.kr/@seochanhwe/84

(6)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

https://brunch.co.kr/@seochanhwe/85

(7) 100회 채워 볼까?

https://brunch.co.kr/@seochanhwe/86




어느 얼굴이 안 그럴까만, 이명박은 그림 초보 입장에서는 그리기가 꽤 까다로운 얼굴이다. 어떻게 봐도 호남형이라 할 수 없는 얼굴이기에 실존인물을 묘사하는 데에 따른 부담은 적은 편이기는 하다. 하나 반면에 그 표정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감정의 층위를 고작 내 수준에서 다 묘사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누군가들은 그냥 ‘쥐 상’ ‘야비한 얼굴’이라고만 이야기하지만, 이 사람의 얼굴은 깊디 깊은 욕망과 얕디 얕은 인간미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어 굉장히 다층적이다. 저건 그야말로 거짓은 더 큰 거짓으로 덮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그대로 실천해 온 끝에 인간으로서는 채 감당할 수 없을 만한 거짓의 크기를 신의 힘까지 빌려 기꺼이 감당해 온 자의 얼굴 아닌가. 아내는 이쯤되면 팬심 아니냐며 웃기도 하지만 이런 얼굴은 정말 흔치 않다. 그리고 나는 백판만평을 그려내던 시기 그 다층성을 그야말로 1할은 커녕 1푼도 반영하지 못한 채로 ‘이게 이명박’이라고 알 수 있을 무언가를 곁가지로 붙이는 데 급급했다.


사실 이 때엔 이명박 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얼굴을 따라 그렸다고 할 수 없는 시기였다. 피사체로서 특징을 잡아내는 일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표정을 얼마나 이해했는가도 의문이다. 이 시기 내 만평에서 가장 많이 다룬 이명박으로만 좁혀서 놓고 본다 해도 이 얼굴들을 이명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만평가들이 어떻게 그리느냐를 보고도 왜 저리 그렸는가 잘 이해를 못했던 부분들인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단 내처 그리고 그렸을 뿐이었으니 5개월이라는 기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기대하기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5개월 내내 뜨겁게 이명박을 묘사하다 보니 백판만평이 끝날 즈음엔 이명박의 얼굴을 사진조차 안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지경이 되긴 했다. 그 이후로 7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이명박은 내가 정치인 얼굴을 그릴 때 거의 주인공 격으로 등장하는 피사체였고 지금은 백판만평 때보다는 그래도 이명박에 조금은 가까운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적어도 그 때보단 말이다. 다음 그림은 백판만평을 그리던 5개월 동안 이명박이 주로 등장했던 회차들의 얼굴들을 따라서 그려본 것이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가 종료 6개월만에 그린 것, 마지막이 가장 최근에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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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고 잘 하는 건 아니지만 2011년 당시 그림에선 보다시피 ’이게 이명박이다’를 내 그림 실력만으로는 보여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명박은 저렇게 눈이 크지 않고 나는 눈을 그리지 않고서 감정을 전달하기가 어려웠다. 그 시점에서 이미 이명박답지는 않은 얼굴이 됐다. 이를 극복하는 방식은 꽤 게으른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이를테면 쥐 같은 낯짝이라는 평가 그대로 쥐 같은 귀를 붙여주었다는 점.


여기서 눈까지 쥐 눈깔로 묘사를 하는 건 지나쳤기에 거기까지는 안 가려고 가급적 노력했다. 왜 많은 만평가들의 이명박 묘사헤서 눈이 아예 눈썹 아래에서 아예 묻혀서 안 보이는 식으로 묘사돼 있는지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는 기분이지만, 그때에는 왜인가를 알 수 없어서 저 수준이 고작이었다. 이명박치고는 딴엔 꽤 건실한 악당 같은 표정이 될 때가 많아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 가카는 저런 분이 아니시지 않은가.


여기에 1월 16일자 정도부터 간간히 등장하다 어느 순간엔가 내 이명박 그림에서 아예 고정으로 붙은 장치가 역십자가다. 나는 이명박이 물욕의 화신이자 물신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승환 씨가 <돈의 신>이란 노래를 발표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물신이고 돈의 신이고 그 스스로가 거의 신의 영역에 이른 욕망덩이인데, 정체를 숨기고 교회 장로 노릇을 하며 개신교의 첨병 노릇을 하지 않았던가.


이승환, <돈의 신> (2017)


크리스트교는 중동산 유일신교로 하늘 아래 두 신은 없음을 강조하는 종교고, 스스로 재림 예수이자 메시아임을 주장하는 이들을 경계한다. 신의 유일함에 대항하며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리는 자는 이른바 적그리스도이며 그 상징은 십자가를 뒤집은 역십자가다. 역십자가를 채용하면서 내 이명박 그림은 얼굴이 점점 더 길죽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아내는 너무 길지 않느냐고 하긴 하는데, 이명박 얼굴은 놀랍게도 옆으로 조금만 퍼져도 그 특유의 얄팍함이 사라진다.


나는 이명박이 스스로 물신의 영역에 서서 믿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아 기꺼이 십자가를 뒤집어 붙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묘사 부분에서 5개월 내내 통일성을 보여주지 못한 게 내 이명박 그림이지만, 이마에 그은 역십자가만큼은 게으르나마 내 이명박 그림이 유일하게 채용한 소품으로 나름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물론, 이걸 붙인다고 이명박 얼굴다워지는 건 아니지만, 저 사람의 지향점(?)이 한 눈에 보이는 효과만은 분명해졌다.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다.


여담이지만 이명박 다음으로 대통령자리에 오른 박근혜의 경우, 표정의 층위 자체가 그다지 보이지 않아서 다른 의미로 정말 신기하고 신묘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이명박과는 정반대인 느낌이었는데, 그 이유를 임기 말 드러난 사단들에서 엿보면서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대체 저 흐리멍텅함은 무엇인가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않은가. 역시 현실은 그 어떤 픽션보다도 훨씬 극적이고, 거짓덩이들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악당짓의 수준으로나 얼굴을 그리는 재미로나 확실히 이명박이 한 수 위다.



(계속)


제목_없는_아트워크_51.png 이제는 그 멍청한 표정의 이유를 안다. 놀랍고도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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