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히, 아는 것과 그리는 건 전혀 달랐다
목차
(1) 메모하라고 준 화이트보드가 재난(?)의 시작이 되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3
(2) 화이트보드에, 느닷없이 만평을 그리고 말았다
https://brunch.co.kr/@seochanhwe/75
(3) 이명박, 내 3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자
https://brunch.co.kr/@seochanhwe/76
(4) 너무나 당연히, 아는 것과 그리는 건 전혀 달랐다 <<< 현재 글
https://brunch.co.kr/@seochanhwe/78
(5) 그의 낯짝
https://brunch.co.kr/@seochanhwe/84
(6)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
https://brunch.co.kr/@seochanhwe/85
(7) 100회 채워 볼까?
https://brunch.co.kr/@seochanhwe/86
딴에는 꽤 오랜 시간 만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수많은 만화 작품들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해 왔다. 소개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사위원 같은 일을 받아 평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직접 그리는 일은- 당연하지만 또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림 솜씨란 게 없는데 낙서라도 어쨌든 만화의 형식을 빌리려다 보니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다. 한 장 안에서 하고픈 이야기는 많고 표현력은 없는데 이를 담아낼 연출력 또한 그다지 없었다. 그러니 이걸 만화처럼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부터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떨어졌다.
낙서인데 뭐-라고 생각하고 그리면 그만인데 문제는 내 직업이 만화 칼럼니스트라는 데에 있었다. 그러니까, 직접 할 능력은 없는 주제에 그동안 봐 온 건 꽤나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걸로 만화가 데뷔하겠어요! 같은 생각은 언강생심 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막상 그리기 시작하니 만화 꼴을 내지 않고서는 안 됐고, 그러려면 필요한 게 뭔지는 알겠는데 손끝에서 나가질 못하는 상황에 곧바로 내던져졌다. 당장 두 번째로 그렸던 2010년 12월 31일의 <조중동매연 종편 발표, 세밑 대국민 테러> 편만 해도 종편 출범을 두고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림 표현만으로 납득할 수 있게 그리기보다 이러쿵 저러쿵 설명이 많다.
만평의 백미는 압축과 은유라 할 수 있으련만, 머리로는 알아도 정작 나온 그림은 머릿속 기준에는 한참을 못 미쳤다. 이 과제는 백판만평을 그리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비루한 표현과 연출은 그림을 ‘만화’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구구절절 텍스트를 늘어놓는 형태나 사진의 모사에 머물게 했다. 지금 다시 보면 민망해 미칠 듯한 회차들이 많다. 그림 솜씨는 둘째 치고, 그저 그림과 텍스트를 늘어놓을 뿐인 건 애초에 만화라 할 수 없다.
어떨 땐 이 모든 지점을 알면서도, 어떨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에 빠져 허우적댔다. 다만 그러면서도 세 가지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하나는 내가 칼럼니스트가 아닌 입장에서는 프로가 아니라 생각을 만화로 표현하고 싶어할 뿐인 일반인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만화가 만화인 이유를 계속해서 탐색해 나가려는 자세를 지니는 것. 마지막 하나는 현재의 비루함을 한탄하기보다 일단 지금 시점에 할 수 있는 만큼으로 한 편을 끝내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것.
화이트보드 낙서에 지나지 않는 것에 뭐 이리 진지하게 구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어쨌든 뭔가를 시작하면 시작한 이상 진지하다. 속 터지는 심정을 그냥 욕설로 퍼붓고 한탄하기 보다 뭔가 적고 그려서 내 안에 남기고 싶어서 시작한 이상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조금씩은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림을, 나아가 만화를 좀 더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좀 더 여러가지가 있다. 데셍력을 높인다거나, 크로키를 한다거나, 작법책이라도 놓고 익히거나. 그렇지만 화이트보드 낙서라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한 까닭은 A4 한 장 짜리 화이트보드의 프레임이 독특하단 이유도 있었지만 생각날 때 남기고 쉬 지울 수 있단 이유가 더 컸다.. 한 때 만화 원고지에 잉크 찍은 펜으로 만화 그리는 연습을 해 보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20대 초반부터 프로로서 시작한 일들과 학업 등에 치여 수련에 매진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핑계가 있기도 해서 나는 글쓰기 정도 이외에 뭔가를 하고자 하면 일단 부담 없이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편이다. 이는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재능이 거의 없이 지구력만 있는 편이기 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다.
‘제대로 하자’에 매몰되기 보다는 ‘꾸준히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으로 끝내서 넘기고 다음 회차를 고민하자’. 이는 일전에 <미생> <이끼> <야후>의 윤태호 작가님을 인터뷰할 때 들었던 수련법과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연습할 분야를 정해놓고 일정한 분량씩 계속 그려내 등 뒤에 쌓는다. 그리하여 벽 한 면이 사과상자로 다 채워질 정도로.
윤태호 작가님은 데뷔 전 그렇게 수련을 했다고 했다. 화이트보드 낙서 따위에 비하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방식이지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단 꾸준히 가 보자. 한계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쨌든 일단은 나은 것 아니겠는가-라고 위안하면서. 그렇게 일단, 그렸다. 그리다 보면 뭐가 또 보이는 게 있겠지, 그런 심정으로. 분명한 건 백판만평 이후 7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 뭔가를 그렸고, 그 결과 최소한 저 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져 있단 사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