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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30일 완성 글쓰기 재활' 프로젝트. 한 글자라도 좋으니 매일 꾸준히 글을 발행하는 것이 목표였는데요. 오늘로 무사히 마지막 날을 맞이했습니다:) '할 말이 없다'라는 말만큼은 절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위기는 몇 번 있었습니다. 샘플 번역과 역자 교정이 들어오고, 미리 예매해 둔 만담 공연 날짜가 다가오고, 포항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중간중간 한두 문장만 덜렁 올라온 글을 보면 '아하, 이 날이었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린 글을 쭉 읽어 보니 자주 나오는 소재가 여럿 있었습니다. 요즘 제 관심사가 반영된 결과겠지요.
초단편소설
ASMR
노래
범성애
프랑스 자수
초단편소설은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처음 써 봤는데요. 노션에 몇 달째 쌓아 둔 아이디어 중 초단편소설이라는 포맷과 잘 맞는 것이 제법 있어서 일주일에 한 편씩 초단편소설을 써서 올리는 브런치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색깔 있는 ASMR 영상을 소개하는 연재 글도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면서 미뤘는데 'ASMR 취향 빙고'도 만들었겠다 좀 더 자신감 있게 밀어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나긴 역사를 걷는 동안 머릿속을 채우던 노래는 '블랙아웃'에서 '마루노우치 새디스틱(丸の内サディスティック)'으로 바뀌었다. 이음매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매시업된 노래처럼.
덕질을 시작하는 나는 머릿속에 흔들리지 않는 상을 구축해 놓고 그것이 맞아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독특한 음색?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가사? 성별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토크? 이 모든 것이 남의 손에 들린 확성기에 대고 외치고 싶은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일 년. 내 덕질이 일 년을 넘기기 힘든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단편소설을 읽다 보면 '원고지 20장을 넘기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편소설의 '80장'이라는 기준이 필요조건이라면 초단편소설의 '20장'은 제한조건인 셈이다. 반전의 설득력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독자가 이야기 속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게 만들 수만 있다면 굳이 20장까지 쓸 것 없이 1장만으로도 성립하는 것이 초단편소설의 매력이다.
모든 수예는 어딘가에서 조금씩 연결되어 있다.
유체 이탈이니 수호령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망막이 없는 영적 존재가 보는 이미지는 어디에 맺힐까 고민한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을 때 만큼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아버지의 영혼이 나를 굽어살펴 줬으면 좋겠다. 내 몸을 빌려 운전대를 대신 잡아 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