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태기 극복기
달리기 훈련을 위해 아침 출근 전 공터로 나갔다. 오늘의 미션은 400m 전력주 12세트. 400m를 전속력으로 달린 후 400m 한 바퀴를 걷고, 다시 400m 전력질주를 반복하는 훈련이다. 이전에 내가 기록했던 400m 달리기 기록을 체크했고, 그 시간보다 무조건 빨리 달리자 생각하고 두 팔과 두 발을 부지런히 굴렀다. 기록을 1~2초 앞당겼고, 아침부터 신나게 강둑 옆 공터를 내달리는 사람을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내 자신을 믿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과신은 금물이다. 체력이 조금 올라왔다고 자신했던 게 탈이었다. 아침 출근시간을 쪼개 달린 터라 간단히 몸을 풀고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력질주를 하고 나면 몸에 무리를 줄이기 위해 스트레칭도 더 심혈을 기울여해야 하지만, 스트레칭은 늘 바쁘다 힘들다는 핑계로 대충 해오던 터였다. 왼쪽 다리와 무릎이 아파오고, 뒤로 잘 굽혀지지 않았다. 당장의 몸 걱정보다 운동에 꽂혀 있던 나는 내일의 달리기, 주말의 단체 달리기가 더 걱정됐다.
달리기보다 달리는 걸 지켜보는 시간이 점차 늘었다. 무릎 주위의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를 여러 군데 찾아다녔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원인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휴식이 최선이라고 했다. 아직 실력을 한창 올려야 할 시기인데, 마음은 조급했다.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 조금씩 천천히 뛰어보았지만, 자칫 무리했다가 부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마저도 쉬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달리는 사진들을 보거나 날씨가 맑고 미세먼지도 없는 날엔 당장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뛰러 나가고 싶었다.
쉬는 날이 몇 주 이상 되자 권태기가 찾아왔다. 달리기를 못하니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한 마음들이 달리기를 조금씩 시들하게 만들고. 목표로 했던 풀 마라톤 대회가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뒤처지는 것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남들이 런태기라 말하는 것이 이제 찾아왔구나 생각했다. 한창 목표로 한 기록을 위해 의욕에 앞서 달리다가 부상을 입고, 달리기를 오래 쉬면서 런태기를 맞는 것.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맞이하는 과정이었다.
몸과 마음은 끈끈히 연결돼 있는 것이어서, 몸이 다치면 마음이 무너지곤 한다. 반대로 마음이 무너진다면, 몸으로 일어서야 한다. 한두 달이 지나고 다시 조금씩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몸의 소리에 자주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앞 뒤 준비운동과 마무리 과정을 대충 한 채 달리는 것 자체에만 신경을 쓴다면, 결국 다시 그 부작용은 달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알기에 운동 전후로 스트레칭도 꼼꼼히 해주었다.
풀 마라톤을 여러 차례 뛰었지만 부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동료 러너의 말을 들었다. 좋은 기록을 목표로 하는 것도 더 중요하지만 부상 없이 오래 즐겁게 달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라고. 아직까지 즐겁게 달릴 수 있는 건강한 무릎과 발목에 감사하면서 뛰게 된다고 말이다.
의욕이 넘치면 때론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그동안 넘치는 의욕 때문에, 목표로 한 풀 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얻기 위해 달리다 보니, 기록이 조금이라도 잘 안 나오는 날엔 쉽게 다운되고, 다른 사람들의 좋은 기록과 나를 쉽게 비교하게 되고, 부상도 비껴가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풀 마라톤 대회가 달리기를 시작한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었다. 풀 마라톤 대회는 달리기를 즐겁게 하다 보니, 새로 생긴 목표였고, 나는 달리는 그 자체를 즐거이 했던 사람이었다. ‘왜 달리나?’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니, 풀 마라톤 대회로 좁혀 있던 시야가 조금은 트이는 기분이었다.
인생에서 권태기가 달릴 때만 오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가 무력감에 빠지게 될 수도, 익숙한 관계에 지쳐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날만 있다는 게 아닌 걸 몸으로, 마음으로 알고 이 시기를 잘 건너간 기억으로 또 다른 권태기의 날들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을 때가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 과정을 자연스레 여기며, 조금씩 다시 페이스를 찾아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권태기가 찾아오려 하면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를 자주 떠올린다. 아마 그도 그림을 그리다 권태기에 빠졌을 것이고,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동생에게 편지 형식으로 남겼을 것이다. 늘 잘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나도 달리기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달여야겠다. 다시 런태기가 찾아올지라도.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