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우리도 헷갈려요
올해 가장 화재가 되었던 유행어 중 하나는 아마 영어와 한글을 섞어 쓰는 전청조의 "I am 신뢰에요" 일 것이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가서 지내며 영어회화를 잘할 수 있게 된 나는,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익숙하게 말을 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의미로는 (농담으로는) 0.5개 국어를 한다고도 한다. 어떤 말은 영어단어 (혹은 표현)가 먼저 생각나고, 어떤 말은 한국어가 먼저 생각나 점점 나오는 말이 두 개의 언어가 섞인 애매한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청조가 무엇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영어와 한국어를 하는 나는, 결혼을 하면서 우리 집에는 또 하나의 언어가 추가되었다.
국제부부의 또 다른 궁금증, 과연 언어가 다른데 부부로서 해야 하는 진지하고 깊은 대화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동안 해당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
내 아내는 러시아 사람이지만 어려서부터 국제무역 관련 공부를 하며 영어를 꾸준히 공부했고,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도 있어서 영어를 곧잘 하는 편이다. 나 역시 오랜 기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영어로 하는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편이어서 우리는 집에서 95% 이상 대부분 영어로 대화한다. 물론 사소한 말다툼이 있거나 가끔 언쟁이 높아질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다 보니 사실 아내는 우리가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내 아내는 사실 한국어 실력이 늘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에서 살면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을 나의 도움 없이 홀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첫 번째로 한국말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그 나라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텐데 이는 정말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커플이 대화가 가능한 제3의 언어가 존재한다면 이 말은 틀렸다.
하지만 집에서 영어로만 대화하다 보니, 아내는 본인의 한국말이 도통 늘지를 않는다며 항상 '우리 이제 한국말로만 대화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에는 나도 '진짜 이제 한국말만 하는 거야!' 라며 다짐한다. 그리고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내가 너무 아내와 영어로 대화하는 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볼 때에는 뇌에서 언어의 스위치가 영어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언어의 스위치를 바꾸려니 생각보다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내 아내에게 말하고 있는데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인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아내도 '왜 당신 가족들이랑 말할 때랑 달라'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이렇듯 나는 아내의 한국어 실력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아내는 직접 한국어 시험공부를 하고 한국어능력시험 (TOPIK)을 몇 차례 보기도 했다. 시험공부를 하던 도중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데, 웃긴 건 나도 정답에 대한 확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지내며 얻은 영어 회화 실력이지만, 정작 한국어에 대한 지식은 점점 잃어간 것이다. 심지어 몇 번은 내가 틀리고 아내가 맞추기도 했어서 아내는 내게 '아니 남편 한국사람이잖아 뭐 하는 거야' 라며 놀리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더 이상 나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라며 도움 포기 선언을 한 적도 있다. (이때에 나도 '정말 나는 한국어도, 영어도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좌절감에 빠졌었다... 맞춤법 검사 기능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쓴다...)
다만 이제는 한국어를 조금씩 섞어서 쓰고 있다. 단어나 짧은 표현 등을 한국말로 섞어서 하면서 조금씩 아내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내의 학구열에 비해 내 한국어 지식이 워낙 부족해서 오히려 내가 더 조심스럽다.
열심히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대해 공부하는 아내를 보며 나도 아내의 나라와 언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러시아어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이미 반 포기 상태이다.
가장 배우기 쉬운 것은 어떤 언어든 막론하고, 비속어 일 것이다. 나 역시도 이미 러시아어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비속어는 통달했다. 가끔 아내가 보는 러시아 드라마 등 대사를 듣다가도 비속어는 바로 알아듣는다. 그리고 이후 알파벳을 배워 단어를 읽는 방법을 배웠다. 그다음으로, 온라인으로 러시아어 과외를 해보기도 하였는데, 결국 너무 어려워서 현재는 중단한 상태이다.
단어에 남성과 여성이 나뉜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리고 남성에게 말하느냐, 여성에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단어의 엔딩이 달라진다. 심지어 달라지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무엇이든지 the로 통일해 버리는 영어가 이렇게 쉬운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단어 키보드 (Keyboard)는 여성이다. 그래서 클라비아투라 (Klaviatura)로 발음이 되는데 단어의 끝이 a로 끝나거나 발음이 되면 대부분 여성형 단어이다. 하지만 테이블 (Table) 은 스톨 (Stol)이라고 발음하는데 이는 남성형 단어이다. 즉, 키보드 = 여성형 단어 / 테이블 = 남성형 단어인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예쁜 키보드'는 키보드가 여성형 단어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예쁜'을 '크라시바야'라고 한다. 하지만 '예쁜 테이블'에서 '테이블'은 남자이기 때문에 예쁜 이라는 단어는 '카라시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러시아어는 Article (관사)가 없다.
결국 나는 비속어를 쓰게 되는 상황에만 러시아어를 쓰고 있다. 모국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러시아어로 비속어를 쓸 때면 죄책감이 모국어나 영어로 비속어를 쓰는 것보다 덜하다. 체감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 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항상 노력하는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며 이번 글을 계기로 다시 아내의 나라와 언어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Ura!
Note
러시아 여성과의 결혼생활 시리즈
결혼생활 속에서 겪은 많은 에피소드 들을 글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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