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개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Sep 01. 2019

개벽사상은 생명공학 발전의
브레이크가 될 것인가?

[편집자주] 이 글은 <개벽신문> 제87호(2019.8)에 게재되었습니다.



최 다 울 | 개벽청년 ·일본 동아시아 실학연구회 회원


개벽사상과 생명공학


개벽사상은 생명공학 발전에 어떻게 관계되어 갈 것인가? 개벽학은 생명공학 발전의 브레이크가 될 것인가? 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벽사상은 ‘생명’을 어떻게 보는지를 논할 필요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어디까지를 ‘생명’으로 보는지, 생명의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논해야 한다. 생명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생명공학 연구와 발전 양상은 민감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부터인가?


생명의 시작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연구가 가능한지 여부와 조건이 좌우되는 대표적인 예로 수정란 연구를 들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s)나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기술연구가 해당된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정란이 되는 순간으로 여기냐, 수정란 착상 시점으로 여기느냐, 원시선(primitive streak, 수정 후 대략 14일) 발생 이후로 여기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서 수정란의 인격권을 언제부터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수정란 연구이용 가능여부·조건이 크게 바뀐다. 한국의 생명윤리법에서는 ‘배아(胚芽)’를 ‘인간의 수정란 및 수정된 때부터 발생학적(發生學的)으로 모든 기관(器官)이 형성되기 전까지의 분열된 세포군(細胞群)’1이라고 넓게 정의하며, 수정되는 시점부터 배아도 생명으로서 존중한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단계의 배아를 인간 생명과 동등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체내배아(수정란)의 경우 형법에서 착상(수정 후 대략 8일)되는 시점부터 ‘태아’로 간주하며 낙태죄로부터 보호되는데2, 착상 이전의 체내배아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착상 전 배아는 사후피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해석에 따라서는 적출하여 실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체외배아의 경우에는 원시선이 발생하기 이전의 잔여배아에 한하여 난임 치료법 및 피임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또는 난치병 등의 조건하에 대통령령으로 연구와 실험에 활용을 할 수 있다.3 체세포복제배아의 경우에는 희귀 난치병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생성·연구할 수 있는데, (원시선 발생 이전 등의) 연구 시기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다. 즉 조건과 연구 계획서에 문제가 없다면 체세포복제배아는 어느 시점이든 연구와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대상이 어떤 배아(체내, 체외, 복제)인지에 따라 인격권 부여의 시기가 각각 다르며, 부여의 시기에 따라 실험, 연구의 가능여하·조건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법률상만으로도 배아에게 인격권이 주어지는 시기가 ①수정되는 시점 ②착상되는 시점4 ③원시선이 발생하는 시점5의 3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생명이라도 종류와 시기에 따라 권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배아는 인간생명의 맹아?


지난 2018년 11월 26일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 허젠쿠이(賀建奎) 교수는 홍콩 대학에서 세계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아기 탄생에 대한 발표를 했다. 에이즈(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정보를 편집하여 쌍둥이 여아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국제적 비난여론이 거셌는데6, 같은 해 11월 30일에 일본의학회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 내용의 일부는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일본-인용자 주)에서 인간 수정배(수정란)는 ‘인간존엄’이라는 사회 기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특히 존중되어야 할 존재이며, 이러한 의미로 ‘인간생명의 맹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번 행위는 태어난 쌍둥이 여아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을 짓밟은 행위이며,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이며, 국제적인 윤리규범을 통해 보더라도 상식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입니다.7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의학계의 공동성명에서 ‘수정란’을 ‘인간생명의 맹아’로 여긴다는 것이며, 이를 공동성명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률상으로 일본에서도 불임치료나 희귀병 치료 등 특정 조건하에서 배아 연구는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란’을 ‘인간생명의 맹아’라고 강조한 것은 유전자편집이나 줄기·만능세포 연구를 위한 ‘인간배아연구’규제 완화를 내심 바라는 일본 연구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의학회는 이번 성명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종종 ‘수정란’을 ‘인간생명의 맹아’로 여기는 주장을 해 오기도 했다.


명확한 종교·윤리적 기반의 부재


이와 반대로 일본의 신영역(新領域)법학자 타츠이 사토코(辰井 聡子) 교수는 이러한 ‘인간생명의 맹아’ 이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였다(위에서 인용한 2018년 11월의 일본의학회 성명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배아 인간생명맹아론 자체에 대한 반론). 


서양 각 나라에서의 기독교처럼 명확한 종교적·윤리적 기반을 갖지 않은 우리나라(일본-편집자 주)에서 윤리적 가치를 내걸은 규정을 효과적으로 기능하게끔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간 수정란 연구규제는 실체를 갖지 않는 윤리적 가치를 내걸고 있으며, 그로 인해 투명성이 현저하게 부족해져 있다. …(중략)… “생명의 맹아로서의 인간 수정란의 존중”이라는 이념은 클론기술규제법 제정 당시 종합과학기술회의에서 내린 결론인데, 이것이 꼭 우리나라(일본)의 역사와 전통에 충분히 뿌리내린 가치관이라고는 할 수 없다.8


타츠이 교수는 위와 같이 ‘배아 생명의 맹아’론 이념에 대한 윤리적 기반을 문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연구상의 문제, 규제의 허점 등을 5가지 제시하고 있다. 그 5가지를 요약하자면 ①연구 자율성의 침해 ②예측 불가능에 의한 연구환경 저하 ③민주적 가치판단 침해 ④행정권의 권한과잉 ⑤과학적·의학적 근거 부실 이다. 특히 ②에 관해서는 언제 어디서 갑자기 규제가 걸릴지 예측할 수 없는 이념과 가이드라인 때문에, 연구자들 입장에서도 연구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맹아’론 이념은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도 납득을 얻지 못

하고 있다.


물론 타츠이 교수가 일본의 ‘종교적·윤리적 기반의 부재’를 빌미로 인간 배아연구 규제 완화론을 옹호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명확한 종교적·윤리적 기반을 갖춘 규제가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생명공학에 명확한 종교적·윤리적 기반이 있는가? 한국 연구자들은 현재의 규제에 납득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상을 통해 생명을 정의하고 있는가? 내 생각에는 한국에도 명확한 사상적 기반은 없다. 전부 수입산이다. 만약 개벽학이 향후 100년을 이끌어갈 사상이 되려고 한다면, 이를 지탱할 생명사상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개벽학자, 벽청 여러분과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러분은 생명을 어떻게 보는가? 언제 어디부터 생명의 시작인가? 애초에 그런 구분이 있는가? 없다면 어떤 연구규제를 만들어야 하는가?


인체유래물(human sample)은 생명의 연장인가?


문제는 인간배아뿐만이 아니다. ‘인체유래물’에 관한 문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인체유래물이란 인체로부터 채취한 조직, 세포, 혈액, 체액, 염색체, DNA 등을 뜻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의료 민법학자인 요네무라 시게토(米村 滋人) 교수의 연구「인격권의 양도성과 신탁―인체유래물·저작자인격권의 양도성을 계기로―」9가 참고가 됐다. 요네무라 교수에 의하면 최근 저작권의 양도 필요성(부모의 명예나 작품의 인격권을 유족이 물려 받는 등) 증가로 인해 인격권의 양도성도 함께 인정되어 가는 반면, 인체유래물의 신탁·양도에 관해서는 아직 명확한 규제도 없어 논의가 시급하다고 한다. 


인체유래물의 신탁·양도에 관한 문제를 쉽게 말하자면, 인체로부터 채취해 떨어져 나간 인체유래물을 물건(物)으로 보느냐 생명의 연장선(生命)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소유권의 대상이 되는지 인격권의 대상이 되는지 법적 판단이 갈린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한 번 양도된 인체유래물은 양도 받은 사람의 소유물이 되기 때문에, 본래의 사용목적과 다른 목적의 연구를 하게 되더라도 기증자(양도자)에게 재차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반면 후자의 경우라면 사용목적이 바뀔 때마다(정보추출, 배양, 가공, 타 연구기관에 양도 등 하나라도 추가되어도) 기증자에게 시시각각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서양에 비해 일본에서 인체유래물 연구가 부진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윤리위원회 심사와 동의 절차의 복잡성’10이다.


현행의 일본 장기이식법에서는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장기이식을 위해 기증된 장기가 혹여 부적합하여 이식에 쓰이지 않는 경우에도 그것을 연구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즉시 소각하도록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11 가뜩이나 연구목적의 장기·조직 기증이 적은 일본에서의 인체유래물 연구는 해외 바이오뱅크로부터 인체조직을 고액으로 수입해서 겨우 연구하는 상황이다.12


한편 인체유래물을 개인의 소유물로 볼 수 없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유전자 정보에는 기증자 본인뿐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 형제 등 혈족의 정보도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기증자의 한 명의 동의만으로 인체유래물을 신탁해도 되는지도 의문이 발생한다. 그러나 앞에서 봤듯이 더 이상의 절차의 복잡화는 연구의 발전을 더욱 저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체유래물은 물건으로 봐야 하는가, 생명으로 봐야 하는가? 여러분의 피, 살, 장기, 조직, 머리카락은 인격권을 갖는가? 소유권의 대상인가? 기증된 다음은 연구자의 몫이 되는 것인가? 내 장기나 조직이 어떤 연구로 이용되는지 그 정보를 보고를 받고 싶은가? 개벽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떨까? 개벽학은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앞서 봐왔듯이 어디까지를 생명으로 보느냐에 따라 개벽학은 생명공학의 브레이크가 될 수도, 엑셀러레이터가 될 수도 있다.


명확한 생명관 확립의 중요성


그러나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냐 엑셀러레이터냐가 아니다. 타츠이 교수도, 요네무라 교수도 의학회 연구자들도 모두 브레이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과거에 실제로 비인도적인 실험들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모든 논문에서 나치의 생체실험에 관한 언급이 있었고, 그러한 비극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법규가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논의되고 있다. 그들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브레이크’자체가 아니라 ‘애매모호한 브레이크’다. ‘근거가 부족한 브레이크’, ‘언제 제동이 걸릴지 모르는 브레이크’다. 애매모호한 사상은 애매모호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애매모호한 가이드라인은 연구현장을 혼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개벽학은 생명공학의 브레이크가 되느냐 엑셀러레이터가 되느냐가 아니라, 브레이크가 되려면 근거 있고 명확한 브레이크가, 추진력이 되려면 납득할 만하고 타당한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애매모호함이다. 개벽학이 다른 백년을 이끄는(아우르는?) 사상이 된다고 한다면, 생명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개벽학은 하나의 고정된 결론을 경계해야 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유전자 연구 자체, 인체유래물이나 배아 연구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개벽학은 앞으로 해당 분야들과 어떻게 조화하고 조율해 나갈 것인가? 일본의 장기이식법처럼 무조건 금지시켜 해외 바이오뱅크에서 고액으로 인체유래물을 수입하게 할 것인가? 비효율적인 연구를 계속해야 할까? 개벽학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자.


개벽사상의 생명공경이란?


개벽사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분명 배아도 세포도 피도 머리카락도 모두 한울님이며, 한울님이 있고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 공경(敬)의 대상이자 모셔야(侍) 할 대상이다. 그런데 과연 배아를 모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세포를 공경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공경하는 것인가?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경한 행위인가?


그것을 따지기 위해서는 먼저 해월 최시형 선생님의 삼경(三敬)사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삼경사상이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세 가지 공경을 일컫는 사상인데, 자신의 마음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 심지어는 사물까지도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모두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월 선생님은 물건까지 공경함에 이르러야 도덕의 극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13


다만 주의할 것은 삼경사상은 天·人·物을 평등(= equal)으로 여기는 사상이 아니다. 한울, 사람, 물건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게 다뤄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 여자 어르신 어린이 모두 소중히 여기며 모셔야 하지만, 그 모두를 동일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울도 사람도 물건도 모두 공경의 대상이지만, 거기에는 각각에 알맞은 살림과 모심의 방법이 있다(그렇다고 모심의 방법이 하나하나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한울이 어떤 ‘이성(理性)’이나 ‘덕성(徳性)’처럼 각각에게 딱딱 분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개벽사상은 만물에 계시면서 만물이 모시는 모두가 한울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천 경인 경물이라 하여도 고기를 먹고 채소를 먹고 곡식을 먹는다. 돼지도 상추도 쌀도 공경과 모심의 대상이지만, 그것을 먹는 것이 불경한 행위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배아는? 인체유래물은? 세포, 피, 머리카락은? 인간뿐만 아니라 실험용 쥐는 어떤가? 공경과 모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실험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불경한 행위인 것일까? 그 실험들의 성과로 많은 사람의 불치병이 고쳐지고, 불임치료법이 발전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여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살림과 모심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돼지고기와 상추쌈과 쌀밥을 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듯이 말이다. 만약 이게 불경한 행위라고 한다면, 먹는다는 행위 자체도 불경한 행위, 살림이 아닌 죽임의 행위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개벽사상에서 ‘먹는다’는 것


공경하고 모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떨 때 공경하지 못하다고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동학에 있어 ‘먹는다(食)’는 행위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동학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상당히 특별하게 언급되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해월신사법설(海月神師法說)』의「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그 내용을 한 번 훑어보자.


내 恒常 말할 때에 物物天이요 事事天이라 하였나니, 萬若 이 理致를 是認한다면 物物이 다 以天食天 아님이 없을지니, 以天食天은 어찌 생각하면 理에 相合치 않음과 같으나, 그러나 이것은 人心의 偏見으로 보는 말이요, 萬一 한울 全體로 본다 하면 한울이 한울 全體를 키우기 爲하여 同質이 된 자는 相互扶助로써 서로 氣化를 이루게 하고, 異質이 된 者는 以天食天으로써 서로 氣化를 通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한울은 一面에서 同質的氣化로 種屬을 養케 하고 一面에서 異質的 氣化로써 種屬과 種屬의 連帶的 成長發展을 圖謀하는 것이니, 總히 말하면 以天食天은 곧 한울의 氣化作用으로 볼 수 있는 데, 大神師께서 侍字를 解義할 때에 內有神靈이라 함은 한울을 이름이요, 外有氣化라 함은 以天食天을 말한 것이니 至妙한 天地의 妙法이 도무지 氣化에 있느니라. 14


「이천식천」은 직역하면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다’는 뜻인데, 이는 경물(敬物)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물(物)에는 곡식이나 동물의 고기, 채소 등의 음식도 포함이 되는데, 그래서 음식도 공경과 모심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공경과 모심의 대상을 먹는다는 것이 얼핏 이치에 어긋나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생명을 개체 단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울 전체로 봤을 때, 먹는다는 것을 바깥의 기운(外有氣化)과 몸 안의 기운(內有神靈)의 살림이자 소통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한울 전체를 키운다는 이천식천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음식을 먹는 것이야말로 음식에 대한 모심이자 공경의 자세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공경과 모심이 아니라 한울의 이치에 어긋나는 식(食)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각자위심(各自爲心)」의 식(食)일 것이다. 동학에 한울의 이치에 어긋나는 마음가짐으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각자위심"이기 때문이다. 요는 각자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멀리하자는 것인데, 해월 선생님은 그것을 '사물(物)'이라는 대상, '먹는다(食)'는 행위에도 적용한 것이다. 단지 자기욕망이나 생존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과 공경함을 가지고 한울님 전체를 살린다는 마음으로 먹는 것, 그 마음가짐이 '먹는다(食)'는행위를 공경과 살림의 "이천식천"의 식(食)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먹는다'는 행위는 한울 전체와 소통하는 신성한 의식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이렇게 볼 때, 개벽사상은「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가지고 문제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울 살림의 마음가짐을 갖고 임하는지, 각자위심의 마음가짐을 갖고 임하는지, 즉 ‘마음가짐’과 ‘자세’다. 그렇다면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지 않을까?


‘먹는다(食)’는 행위는 제아무리 다른 생명(物)을 잡아먹는 행위라 할지라도, ‘공경’과 ‘살림’의 마음가짐이냐 ‘각자위심’의 마음가짐이냐 하는 마음가짐의 문제가 있을 뿐 행위 자체가 문제시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개벽사상에 있어 ‘먹는다’와 마찬가지로, 앞서 우리가 봐 왔던 생명공학의 ‘배아세포연구’, ‘인체유래물 연구’, ‘유전자편집기술’의 경우에도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공경’과 ‘살림’의 마음가짐이냐, ‘각자위심’의 마음가짐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개벽사상은 하나의 생명윤리 기준으로 ‘살림’과 ‘각자위심’의 유무가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 표와 동일하게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인체유래물의 연구나 유전자편집기술을 ‘먹는다’와 같이 ‘외유기화(外有氣化)’와의 소통이라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학연구의 대전제는 공공의 이익과 삶의 질 향상(QOL)에 있다. 그 연구는 분명 어떤 이를 살리며, 새로운 생명 탄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크게 봤을 때 이것도 한울 전체를 키우는 기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각자위심의 인체유래물연구나 유전자편집의 경우는 보나마나 아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자기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거나 나만 오래살기 위한 생명공학연구는 개벽사상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공경과 살림의 연구는 어떨까? 불임치료, 난치병치료, QOL향상을 위한 연구는? 개벽사상적으로 볼 때, 마음가짐과 자세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먹는다(食)’의 경우와 달리 문제는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논의가 필요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 허젠쿠이(賀建奎) 교수의 에이즈 면역 유전자 편집아기의 케이스는 어떤가? 이는 각자위심일까? 살림의 자세일까? 만약 살림의 마음가짐이었다 할지라도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술 위험성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유전자 편집 대상이 되는 아기의 인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즉 유전자, 배아, 인체유래물 연구에 대한 공경과 살림의 방법은 ‘각자위심’을 경계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각각에 알맞은 공경과 살림의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개벽사상은 하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다. 무엇이 공경의 유전자 연구이고, 무엇이 살림의 인체유래물 연구인가? 배아세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 반복하지만 개벽학은 ‘생명’에 대한 입장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개벽사상의 생명관 연구를 비롯하여 해외 사례와의 비교연구, 각 분야와의 면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개벽학이 생명공학연구를 살리는 (정신개벽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개벽학은 앞으로 할 일이 참 많다. 개벽학의 생명관에 대한 많은 의견을 들어 보고 싶다.


<주석>

1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조(목적) <개정 2015.12.29>인용.

2  김순태, 이창호 공저,『형법각론』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2006년, 46p 참고.

3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9조(잔여배아 연구) 참고.

4  착상되는 시점부터 인격권을 부여하자는 입장은 수정란의 75%가 아기로 자라나지 못하고 죽는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생명으로서 자라날 상태가 되지 않았으니 착상 전 수정란은 인간과 동등한 인격

체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원시선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인격권을 부여하자는 입장의 근거는 신경체계가 생기기 전이라는 것이다. 신경체계가 생기기 전의 배아는 고통도 죽음의 의식도 느낄 일이 없다. 그러므로 잔여배아를 통한 연구/실험을 통해 난치병이나 희귀병, 난임 치료 등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는 이러한 입장의 연구자가 꽤 많이 보여진다.

6  2019년 3월 18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유전자편집기술에 관한 자문위원회를 결성, 인간 유전자편집에 대한 규제와 기준을 앞으로 제시하게 될 전망이다.

 https://www.mk.co.kr/news/it/view/2019/03/170963/

7  일본의학회「게놈편집기술을 이용한 인간 수정배 아동 탄생에 관한 보도에 대해 (11월30일)」2018년11월30일, https://www.med.or.jp/nichiionline/article/008290.html 인용. 번역은 필자에 의한 것.

8  요네무라 시게토(米村滋人『)생명과학과 법의 근미래』信山社, 2018년3월30일. 제2장 타츠이 사토코(辰井聡子)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이상적인 규제 형태―의학연구규제의 근미래상―> 40~42p 인용, 참조. 번역은 필자에 의한 것.

9  미즈노 노리코 편저, <<토호쿠대학 법정실무총서2 신탁의 이론과 현대적전개>>(2014) 제3장 요네무라 시게토, <인격권의 양도성과 신탁―인체유래물·저작자인격권의 양도성을 계기로―> 참고.

10 심사와 동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가 복잡하고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짧아도 1개월 길면 1년이라는 기간을 지난 후에야 연구에 착수 할 수 있다면 연구가 부진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11 일본「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제9조 참고.

12 인슐린 분비에 관한 당뇨병 치료 연구에서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췌도(랑게르한스섬) 연구에서 동물이 아닌 인체유래물 연구로는 일본 국내에서 4개밖에 논문이 없는데, 그 전부가 모두 해외로부터 췌도를 수입해 와서

하는 해외공동연구다. 문제는 동양인과 서양인으로는 이 췌도의 인슐린분비량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라 국내 인체유래물 연구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일본 당뇨병학회 세이노 스스무[清野進]교수의 발표 참고) 같은 동양인인 한국도 이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13 『해월신사법설(海月神師法說)』「21.삼경(三敬)」참고.

14 『 해월신사법설(海月神師法說)「』24.이천식천」인용. 천도교 홈페이지 경전 게시글:

http://www.chondogyo.or.kr/niabbs4/bbs.php?bbstable=haewol&no=24&page=1


<참고문헌>

이필렬, <<인간 생명의 시작은 언제인가?>> 2002년 7월 1일, 창비.

http://www.changbi.com/archives/1214?cat=294 2019년 6월 26일 참조.

유지홍, <<생명공학적 인공배아와 인체유래물의 민법상 지위>>, 2013, 경북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매거진의 이전글 100년의 매듭, 새로운 101년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