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파선언>을 읽고(9)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제1기 마지막 수업 시간(2019.6)에 '개벽파 선언'(원고)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개벽신문> 제88호(2019.9/10)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작년 가을에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킥과 슛의 차이도 모르는 저는 다이렉트, 씨져스, 사이드 스텝, 리프팅, 트래핑, 등등 난해한 단어들의 홍수 속에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친절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붙잡고 물어봐도 아직 배울 때가 아니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어깨너머, 아니 허벅지 너머로 익혀야 했습니다.
축구를 시작한 지 1개월 차, 축구보다도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2개월 차, 아직 신입이니 못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3개월 차, 매일 혼나기만 하는 축구장에 나가기 싫어졌습니다.
4개월 차, 이쯤 되면 잘해야 하는데 전혀 늘지 않는 실력에 조급해졌습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저는 여전히 축구 입문자의 실력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아직도 킥과 슛의 차이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축구하는 여자는 말했지요. 여자축구 6개월만 하면 이 판 못 뜬다고.
저는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은 못되었지만 '축구를 하는 사람'은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나 많은 아침을 일어나기 싫어했던가요. 축구가는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아침이 아니라 개벽학당 가는 수요일 아침에 말입니다. 딱 세 번만 와보고 재미없으면 튀어야지, 마음먹었던 개벽학당에 넉 달이나 눌러 앉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일단 저에게요. 노는 게 제일 좋은 자타공인 파티걸 하야티가 파티를 마다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듣고 앉아있다니요.
제가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었던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저를 쫓아내지 않고 거둬주신 로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세상의 모든 강의에서 졸던 제가 새별의 강의에서만큼은 저 하늘 앞에 맹세코 딱 세 번 밖에 안 졸았습니다. 저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게 해주신 새별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개벽학당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인 벽청들에게,
그리고 월요일 새벽마다 고군분투했던 뉴스레터 동지들에게.
서당개가 된지 어언 사개월 차입니다. 제가 운동장에서 버티는 동안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 했지만 그냥 축구를 하는 사람은 되었던 것처럼,
실력이 전혀 나아진 바 없어 보이더라도 저는 저도 모르게 개벽하는 사람이 되어있겠지요.
꾸벅꾸벅 졸고 글을 못 써서 가기 싫더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조급하더라도
일단은 그냥, 일단은 계속, 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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