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개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Apr 03. 2020

정도전의 ‘화(和)’의 통치철학

―서구 계몽주의와 조선 성리학을 중심으로

김 단 아 | 서강대 철학과 3학년

* 이 글은 <개벽신문> 제92호 (2020년 2/3월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정도전의 저서 <삼봉집>,  <경제문감>, <조선경국전>에는 화(和)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특히<조선경국전>의 "예전" '공거' 편에는 화가 육덕(六德)-지(知), 인(仁), 성(聖), 의(義), 충(忠), 화(和)- 중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화에 대한 그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공자와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정도전의 화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화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논어>에서의 화(和)


<논어>에서 ‘화(和)’는 총 5번 등장하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언급한 구절은 없다. 그러나 동(同)이나 예(禮)와 연관지어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화의 첫 번째 의미는, 동(同)과 구분되는, 절(節)이 존재하는 인간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화하지만 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동하지만 화하지는 않는다.”1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화는 동과 대비되는 성질을 이르며, 그 주재자는 군자이다. 그렇다면 화와 동은 어떠한 기준으로 구별되는가? 그것은 바로 예이다.


유자가 말했다: “예의 운용은 화가 귀중하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다고 여겨서, 작고 큰 일들을 모두 이것에 말미암았다. 그러나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화를 이루는 것이 좋은 줄 알고 화를 이루되 예로써 절(節)하지 않는다면 역시 제대로 행해질 수 없다.”2


유자에 따르면 올바른 화는 예를 갖추었다. 예의 기능은 절(節)이며, 절이란 직역하면 마디 지음, 구분 지음이다. 동등한 지위의 개체들이 한데 아우러진 상황을 이르는 혼합(synthesis)과 달리, 유학에서의 화는 차등적 지위의 개체들 간의 구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어우러지는 것을 중시하고, 오히려 그 구분의 흐려짐을 경계한다. 즉, 화를 하더라도 예로써 끝까지 마디지우지(節) 않는다면 그것은 화가 아니라 동일 뿐이다. 이를 확장하면 화는 예가 준수되는, 군주가 지향해야 하는 국가 상태를 이른다고 볼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제후나 대부는 (인구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정치가) 균등하게 하지 못함을 걱정하며,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함을 걱정한다고 했다. 대체로 균등하면 가난이 없고, 화하면 인구가 적을 리 없으며, 편안하면 나라가 기울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하는데도 멀리 있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문덕(文德)을 닦아서 그들을 오게 하고, 이미 왔으면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3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공자)께서 나라를 맡아 다스리실 경우에는, 말 그대로 백성들을 세워주면 곧 서고, 그들을 이끌어 주면 곧 그길로 가며, 그들을 안정시켜 주면 곧 따라 오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면 곧 화(和)하게 됩니다.”4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화는 성인인 공자의 도(道)를 따라가고 실천함으로써 실현된다. 즉, 성인의 도를 함께 인식하고 실천함으로서 사람들은 비로소 화한다. 성인의 도는 곧 사회 규범인 예로 표현된다. 따라서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화는 예를 통해 국가 전체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2. 정도전의 화(和) 인식

삼봉 정도전

공자가 화를 인간세계 속의 관계에 한정시켜 이야기 하였다면, 정도전은 물(物)들 간의 관계, 음과 양의 관계로 확장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적당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말류(末流)의 폐단은 필시 잔인한 포악과 참담한 재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니, 백성이 그 피해를 입게 될 뿐 아니라, 마침내는 반드시 원한이 하늘에 미쳐서 음양의 화기(和氣)를 상우고 수재와 한재 등을 초래할 것이매, 나라가 따라서 위태롭게 될 것이다.5


장씨(章氏)는 이렇게 말하였다. “총재(冢宰) 한 관직에 60명이 소속되어 있다. 처음부터 하늘과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천관(天官) ’이라 함은 어째서인가? 옛날의 대신이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하고, 임금의 마음을 돌려 옮겨 천하의 만사를 다스려 바로하는 것은 모두 천지의 운용을 밝히고 음양을 화하는 것이니, 다 때를 따라서 만물을 생육하고 오신(五辰)을 어루만져 모든 공적을 넓히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의 사이를 화동(和同)시켜 간격이 없게 하는 것은 비록 성인의 능사(能事)이나, 대신이 실제로 이를 보좌하는 것이어서 총재 위에 ‘천관’이라는 말을 더한 것이다. 그렇듯 대신을 높이는 것은 비록 지극하지만 대신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한층 깊은 것이다.”6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정도전은 음과 양의 화, 하늘과 사람의 화를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화, 즉 형이하적인 화만 언급한 공자와는 달리,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까지 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도전은, 공자와 마찬가지로, 화를 예가 준수되는 인간관계로도 인식한다. 특히 <경제문감>에서는 “존비(尊卑)의 신분 질서를 준수하는 상태”를 화라고 하는 "원앙전"을 언급하고 있다.


한문제(漢文帝)가 상림(上林)에 행차했을 때 신부인(愼夫人)이 황후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신부인을 물리치면서 말하기를 “존비(尊卑)의 차등이 있으면 상하가 화(和)한다고 하는데, 이미 황후를 세웠으면 신부인은 첩이 되는데 첩이 어떻게 황후와 자리를 나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후에 화란을 일으키는 실마리가 됩니다.”라고 간하자, 문제는 기뻐하고, 신부인도 깨우쳐 고맙다고 금(金) 50근을 내렸다.("원앙전")



통치자는 법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서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화하게 해 주어야만 민생이 편안해지는 것이다.7


또한 정도전은 화를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적인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신이 일찍이 <맹자>를 읽어 보건대 "공손추하(公孫丑下)"에서 “지형의 유리함이 사람들이 화한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습니다.8


종합하자면, 정도전은 화를 형이상의 관계, 즉 만물과 만물 간의 관계, 음양의 관계 속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덕으로서 인식한다. 또한 이를 본받아 형이하의 관계, 즉 인문 세계 속에서도 화를 추구해야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형이하의 세계는 형이상의 세계와 합일, 즉 화하고 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화(和)의 통치론

단양 도담 삼봉을 바라보는 곳에 세워진 삼봉 정도전 동상 

공자와 달리 정도전은 화의 구체적인 주체를 제시하면서 그의 독자적인 통치론을 전개한다. 정도전에 따르면 화의 주체는 재상이다. 그런데 재상이 주재하는 화는 형이하의 화가 아니라 형이상의 세계에 속하는 음양의 화이다.


(재상은)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한다.9


재상은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이다. 이윤(伊尹)이 탕(湯)을 보필함에 아형(阿衡)이라 하였고, 주공(周公)이 주(周)나라를 보필함에 태재(大宰)라 하였은즉, 형(衡)이라 함은 만물의 경중을 저울질하여 평평한[平]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요, 재(宰)라 함은 백약(百藥)의 많고 적음을 조제하여 화(和)에 맞게 하는 것이니, 오로지 그 화평(和平)일 따름이다.10


재상이 음양(陰陽)을 섭리(燮理)하기는 다만 마음 하나를 바르게 하는 것일 따름이니, 마음이라 함은 기(氣)의 가장 정수(精粹)한 것으로서 물(物)에 감동하는 것이 가장 빠르므로, 마음이 바르면 기가 순해지고 기가 순해지면 음양이 화(和)한다. 이른바 섭(燮)이라 함도 또한 화한다는 뜻이요, 사물의 끝에 구애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헛되이 무위(無爲)를 일삼아서 스스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11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재상이 형이상의 세계 속의 화를 추구하는 방법은, 다시 말해 음양의 화를 추구하는 방법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재상의 마음 수양을 통한 기의 순화에 의해 음양은 감응하여 비로소 화한다. 그리고 이 감응된 음양을 본받아 형이하의 세계 속의 사람들은 화를 추구한다.


인문세계에서 음양의 화를 가장 잘 본받아 화해야 하는 인물은 임금과 재상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양자 간의 무조건적인 화를 경계한다. 앞서 보았듯이 공자에 따르면, 무조건적인 화는 화가 아니라 동(同)이다. 즉, 정도전은 재상이 지향해야 할바-군주를 바른 길로 이끄는 책무-를 잊고 군주와 동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임금은 재상을 논함으로써 직분을 삼고, 재상은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을 직분으로 삼으니, 이 두 사람이 각각 그 직분을 다해야만 체통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존엄해져, 천하의 다스림이 반드시 한곳에서 나오게 되어 여러 갈래에서 나오는 폐단이 없어진다. 진실로 임금이 재상을 논함에 제 뜻에 맞추는 것만을 구하고 자기를 바루어 주는 것을 구하지 않으며, 그 사랑스러운 것만을 취하고 그 두려워할 만한 것은 취하지 않으면, 임금은 그 직분을 잃은 것이다. 의당 임금을 바르게 해야 할 자가 옳은 것을 드려 그른 것을 바꿈을 일로 삼지 않고 임금의 뜻대로 좇아 화하고 순종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으며, 세상을 경륜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일로 마음을 삼지 않고 몸이나 용납되어 은총을 굳히는 일만으로 술수를 삼는다면, 재상은 그 직분을 잃은 것이다.12


이처럼 임금과 재상은 양자 간의 적절한 화를 통해 다시 천하의 화를 함께 도모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임금이 주재하는 예악이다. 그런데 예악은 형이상의 화가 선재한 후에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즉, 인문세계에 대한 임금의 화는 재상이 주재한 형이상의 세계의 화가 선재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주상 전하는 위로는 하늘에 호응하고 아래로는 인민에 순응하여 왕위에 오른 뒤에 옛것을 상고하여 나라를 경륜하니, 모든 사물이 질서가 잡혀서 화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이제야말로 예악(禮樂)이 일어날 시기인 것이다.13


정월 초길(初吉)에 바야흐로 화(和)하면, 다스릴 바를 나라의 도읍과 시골에 포고하고, 이에 다스리는 법을 상위(象魏)에 걸어[縣], 만민으로 하여금 다스리는 법을 보게 하고, 열흘[挾日] 만에 거두어들인다.14


우리 임금 법칙을 제정하여 남기시니/ 질서가 바로잡혀 화하고 즐겁구려/ 예악을 제정해라, 신의 소견으로는/ 공 이루고 다스려져 무극과 짝하리라.15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정도전의 통치론은 음양의 화를 주재하는 재상과, 예악을 통해 인문세계의 화를 주재하는 임금간의 화를 통해 천하의 화를 도모하는 ‘화(和)의 통치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맺으며


공자의 화는 동과는 달리 절(節)이 존재하는, 형이하의 관계 속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덕을 뜻한다. 즉, 예가 적절히 준수된 인간관계가 화이다. 공자는 이를 확장하여 예를 준수하는 이상적인 사회상을 화라고도 한다. 한편 정도전은 형이하의 세계에 한정된 공자의 화 개념을, 형이상의 세계까지 확장시킨다. 즉, 화는 음양이라는 형이상의 세계 속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덕으로, 형이상의 세계의 화를 본받아서 인문세계 또한 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도전에 따르면, 형이상의 화를 주재하는 인물은 재상이다. 재상은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음양을 화하며, 임금은 음양의 화에 기반해서 예악을 통해 인문세계의 화를 주재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형이상의 세계 속의 화를 주재하는 재상과, 형이하의 세계 속의 화를 주재하는 임금 간의 협치를 ‘화(和)의 통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주석>

1.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논어> "자로")

2.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논어> "학이")

3.  孔子曰: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 故遠人不服, 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논어> "계씨")

4.  子貢曰: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논어> "자장")

5.  苟不得人. 末流之弊. 必至於殘忍之暴. 慘刻之禍. 非徒民受其害. 終必怨歸於上. 傷陰陽之和. 召水旱之災. (<조선경국전> "헌전·총서")

6.  章氏曰: “冢宰一官. 其屬六十爾. 未始有一事關乎天者. 而謂之天官何也. 古之大臣. 論道經邦. 轉移人主之心術. 而釐正天下之萬事者. 皆寅亮燮理也. 皆對時育物. 撫五辰而煕庶績也. 和同天人之際. 使之無間然者. 雖聖人之能事. 而大臣實輔佐之. 加天官於冢宰之上. 其尊大臣也雖至. 其所以責大臣也益深矣.”  (<경제문감> "재상")

7.  爲人上者. 執法以治之. 使爭者平鬪者和, 而後民生安焉. (<조선경국전> "부전")

8.  臣嘗讀孟子曰: “地利不如人和.” (<조선경국전> "공전·성곽")

9.  上則調和陰陽, 下則撫安黎庶. (<경제문감> "재상의 직")

10.  宰相所以和平天下. 伊尹之相湯曰阿衡. 周公之相周曰大宰. 衡者, 所以權萬物之輕重而歸於平; 宰者, 所以制百藥之多寡而適於和. 惟其和平而已. (<경제문감> "상업")

11.  宰相燮理陰陽, 只是正一箇心而已. 心者, 氣之最精的. 其感於物最速, 故心正則氣順. 氣順則陰陽和. 所謂變者, 亦和之意也. 非是拘拘於事爲之末, 亦非是徒事於無爲而聽其自理也. (<경제문감> "상업")

12.  人主以論相爲職. 宰相以正君爲職. 二者各得其職. 然後體統正. 朝廷尊. 天下之政. 必出於一而無多門之弊. 苟當論相. 求其適己. 而不求其正己. 取其可愛. 而不取其可畏. 則人主失其職矣. 當正君者. 不以獻可替否爲事. 而以趨和承意爲能. 不以經世宰物爲心. 而以容身固寵爲術. 則宰相失其職矣. 二者交失其職. 是以. 體統不正. 綱紀不立. 而左右近習. 皆得以竊弄威權. 賣官鬻獄. 使政體日亂. 國勢日卑. 雖有非常之禍伏於冥冥之中. 上恬下嬉. 亦莫知以爲慮者也. (<경제문감> "상업")

13.  恭惟主上殿下. 上以應乎天. 下以順乎人. 作其卽位. 稽古經邦. 庶事萬類. 以序以和. 禮樂之興. 惟其時矣. (<조선경국전> "예전·총서")

14.  正月初吉. 始和布治于邦國都鄙. 乃縣治象之法于象魏. 使萬民觀治象. 挾日而斂之. (<경제문감> "재상")

15.  我后定之垂典則/秩然以序和以懌/定禮樂臣所見/功成治定配無極. (<삼봉집> 제2권" 악장")

* 이 글의 초고는 2019년 12월에 서강대학교 철학과 ‘한국성리학’ 수업 시간에 제출한 기말레 포트이다. 이후에 2020년 2월 17일(월)에 <방정환도서관>(수운회관)에서 있었던 ‘제3회 개벽학스튜디오’에서 이 레포트를 바탕으로 발제를 하였는데, 이 때 참석했던 선생님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수정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학과 페미니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