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예술 대학 출신이라 그런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는 그 어떤 곳보다 조지아 오키프 작품이 많다. 배부른 소리 같지만 어쨌든 집 앞에 이 미술관이 있는 덕분에 난 심심하거나, 공짜 커피가 마시고 싶거나, 혹은 길을 가로질러 집에 빨리 가고 싶을 때 이 미술관을 이용하는데, 조지아 오키프 작품을 딱히 오래 들여다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으로도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그러다 오늘 우연히 그녀의 ‘페루-마추픽추’란 작품을 보게 됐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랑은 딱히 관련이 없는 미국식 산수화라 기억이 안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미술관에서 잠시 빌려온 것인지, 어쨌든 오늘 이 작품은 나한테 새롭게 다가왔다. 60년 전에 이 곳에 올랐던 조지아 오키프는 마추픽추를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었구나.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마추픽추에 대한 그녀만의 후기다. 60년이 지나 같은 곳을 다녀온 나한테 들려주는.
요즘 난 블로그에 페루 여행기를 시리즈로 올리고 있는데 사실 자의반 타의반이다. 물론 그 타의는 내 남편. “네이버 치면 포스팅 수 천 개 뜨는 마추픽추에 대해서 써서 뭐해”라고 글쓰기를 마다하는 나한테 자꾸 더 쓰라고 귀찮게 한다. 어쨌든 하루에도 여러 번 카톡으로 글 독촉하는 남편 덕분에 내가 페루에서 지냈던 날 수 보다 더 많은 글을 썼다.
내가 조지아 오키프는 아니지만 혹시 아는가. 윤서가 30년쯤 뒤에 다시 마추픽추를 올라갔다 와서 우연히 내 블로그(그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에서 서른일곱 살 엄마의 마추픽추 감상기를 읽을 수 있다면, 그렇게 그때의 윤서와 지금의 내가 연결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