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6시에 시작해서 일요일 오후 6시까지. 마침 카페에 있었던 터라 샌드위치와 아이스커피가 마지막 식사였다.
이번 단식은 오토파지Autophagy(자가포식autophagy)에 대한 호기심, 며칠 간 아무런 영양소를 공급하지 않는 형태의 단식이 정말 가능한 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정치인들의 단식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가능하다고?
'저게 가능하다고? 어디 뒤에서 뭐 먹고 있는 거 아니야?'
정치인들이 여의도나 광화문에서 오랜 기간 단식하는 모습을 보며 내심 이렇게 생각했던 터. 하지만 (짧지만) 실제로 해본 결과 단식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며, 오히려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느끼고 알게된 점들.
-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24시간 이상 밥을 먹지 않은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막연히 엄청난 굶주림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지만(두려움에 가까웠다) 실제로는 아니었다. 오토파지, 즉 자가포식(세포 내에서 불필요해진 구성물질을 분해해 세포의 영양분을 삼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삼시세끼'가 어쩌면 부정적 의미의 이데올로기(현실을 왜곡하는 허위 의식)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오토파지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단식 중 오토파지에 대해 더 찾아봤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는 이 오토파지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하지만 오토파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의 세계에 있다. 막연한 추측만 있을 뿐이다. 적어도 60시간 정도는 굶어야 오토파지가 활발히 일어난다고 한다.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
- 간헐적 단식은 선녀(?)였다. 18/6 단식, 즉 18시간을 공복상태로 유지하고 나머지 6시간 동안 2끼 정도를 챙겨먹는 간헐적 단식과 비교했을 때 완전단식은 몸의 스트레스가 훨씬 큰 느낌이었다.(물론 이 스트레스가 오토파지를 일으키는 요인이긴 하다) 보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 이를테면 글을 쓰거나 개발을 하거나 디자인을 하는 일 등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집중력이 평소보다 헐거워진 느낌 탓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 '먹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배가 그다지 고프진 않았음에도 줄곧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본능, 혹은 무의식이 자꾸 그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하면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허기 여부와 별개로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 더 길게도 가능하다. 찾아보니 미용 목적으로 이른바 '물단식'만 하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1주일, 길게는 2주일까지 물만 먹는 단식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절대 죽지 않는다.(물론 소금 정도는 챙겨먹어야 할 테다) 일정 수준이 되면 아예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사라진다고 한다. 나 역시 하루 정도?는 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60시간이나 72시간 단식에 도전해봐야겠다.
푸짐-
- 보식을 해야 한다. 단식이 끝나자마자 집에서 겉절이 김치를 담가 삼겹살에 맥주를 곁들여 푸짐하게 먹었는데 바로 탈이 나버렸다. 밤새 시달리는 바람에 눈밑이 퀭해졌다. '엥, 아무렇지도 않네?'하는 안일함이 화근이었다. 보식으로는 사골곰탕에 소금을 약간 쳐서 먹는 게 좋다고 한다.
- 살이 빠지지 않는다. 몸무게가 1kg정도 줄었으니 큰 변화는 없었던 셈이다.(평소에도 이 정도는 왔다갔다 한다) 이틀 정도는 간에 쌓인 글리코겐으로 에너지원 충당이 가능하다고 한다. 뱃살은 확실히 줄어든 느낌이다.
의외로 내 체질이 단식과 잘 맞는 듯 하다. 18/6 단식은 별 일 없으면 꾸준히, 48시간 이상 단식은 한 달에 1번씩 해볼 생각이다. 과거 근거 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정치인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