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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참, 곱다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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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an 05. 2023

나만 몰랐던 유별난 김치

다들 알면서 쉬쉬한 거쥬?

곱게 물든 봉숭아빛 손톱이 부러웠나 봅니다. 공기 반 물 반 햇살 한 줌 갈아 후르륵 마시더니 붉디붉은 빛깔을 띄우요.  깔을 얼마나 잘 품었는지 메밀꽃밭에 핀 한송이 양귀비처럼 매혹적이지 않아요? 겉만 번지르르 하지 속은 별  일 없달까 봐 속살까지 발랄한 다홍빛으로 물들였지 뭐예요. 강렬한 색감이 봄날 립스틱처럼 도발적이라 맘이 끌리네요.


색감으로 보아선 영락없는 과일 같아. 요리에 자주 등장하니 채소인 듯도 하구요.

뭐야? 과일이야? 채소야?

툽상스러운 반응에 혼돈의 시기를 거친 후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지.

“나무식물의 열매는 과일이고, 줄기식물의 열매는 채소다”

결국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채소 을 살아가라는 판결을 받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까리 헷갈렸나봐요. 엉거주춤 과일 가게에  기도 하고 생과일 주스 메뉴판을 서성거리기도 하데요.

흠, 정체성이 의심스럽지만 당분 함량이 3%에 지나지 않으니 과채류(열매 중에서도 당분 함량이 낮은 채소) 확실하답니다. 


덩치가 방울만 한 것도 있어요. 작아도 밀리지 않을 만큼 당당한 녀석은 찢어지게 선명한 빛깔을 가졌지요. 노랑, 빨강, 주황, 검붉은, 줄무늬(타이거렐라-빨간색 바탕에 녹색, 노란색 또는 오렌지색의 불규칙한 줄무늬를 가짐-대문 사진)까지 다양한 색깔로도 기를 죽이지만 쪽득한 식감이랑 달달한 맛은 용!

어린 치와와처럼 눈망울을 뙤록이게 될 거예요.


일반적인 것보다 단맛이 강한 단마토 또는 토망고, 젤리처럼 쫀득한 젤리마토,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무장한 파프리카토마토 외에 대추, 대저, 흑, 애플, 스테비아까지 종류가 130여 가지나 된다니 감히 무시할 수 없겠죠? 민병대 정도는 되잖아요. 하, 나 또 수효 많아지니 조직인가 싶어 겁나고 괜스레 움츠러드네요.



과일인지 채소인지 알 수 없다며 앙살을 부릴 때는 언제고 어느 새 식탁 위 김치로 올라왔네요. 강천섬 산책 후 들른 '미곡반상'에서  들켰지 뭐예. 

<미곡반상>차림, 유기에 담긴 호박볶음 아래 토마토 김치


혼자는 심심하니 걀쭉하게 썬 쪽파와 가늘게 썬 양파를 동무 삼아

태양 볕에 말려야 때깔 곱고 칼칼하다는 고추가루,

알맞은 간에 기여도가 높다는 멸치액젓,

직접 담근 게 없다면 명인이 만든 시판용 매실액,

멸시당하면서도 묵묵히 주방을 지키는 설탕 약간,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다진 맵싸한 마늘,

미니 절구에서 야무지게 바스러진 깨소금까지

한데 모여 아가리가 넓은 양푼 속에서 상모꾼의 역동적인 옆돌기처럼 신명나게 놀았던 모양이에요.


초록 꼭지는 어디에 두었냐니 죄없는 머리만 긁적이네요. 흥이 폭발했어도 오랜 전통은 잊지 않았던가 봅니다. 마지막은 방짜유기에서 얌전 떠는 걸 보면요.


김치로 둔갑한 녀석은 새콤하게 숙성하여 색달랐어요. 레서피를 찾아보니 나열된 조리법들이 무궁무진 줄을 섰네요.

'뜨홧! 여태껏 나만 몰랐니? 나 또 뒷북 친 거니?'



줄 선 조리법이라고 무심코 따라했다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지?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죠. 다른 이의 방식을 내 것으로 만든다은 그래서 중요한 거래.

음식도 여행도

학식도 공부도 의견도

생활도 돌파도

나만의 방식으로 채우지 못하면 허상이 되기 십상이더군요. '에곤 실레' 포르노 수준이라는 악플이 상당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했기에 오스트리아에 걸작을 남기며 뇌섹남 된 거잖아요. 나만의 방식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휘둘리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나약하게 사라지지도 않지.

나만의 방식으로 만든 토마토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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