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아니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시골의 작은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는 늘 같은 반이었다. 1학년 1반, 2학년 1반, 3학년 1반, 4학년 1반, 5학년 1반.
시골 학교라 학년마다 한 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년이 바뀔 때마다 누구와 같은 반이 될지 설레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늘 같은 반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다. 에이는 달리기를 잘하는 애, 비는 수다스러운 애, 씨는 장난을 많이 치는 애, 디는 공부 잘하는 애.
나는 글짓기 잘하는 애였다. 2학년 때 처음으로 글짓기상을 받았는데, 그 이미지가 굳혀져 무슨 대회만 있으면 아이들이 추천을 했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나는 글짓기를 잘하는 애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이전 학년 선생님께 들은 정보로 아이들 얼굴을 익히셨다. 그래 봤자 한 반에 15명 남짓이니,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셨을 것이다.
그날은, 5학년 1학기 첫날이었다. 아침부터 엄마한테 혼이 나, 울면서 학교에 갔던 날이었다. 나는 무슨 말만 하면 잘 우는 애였다. 물론 그 무슨 말이라는 것은 여린 내게는 무척이나 가슴 아픈 말이었다. 엄마는 보통의 엄마였다. 그러나 나는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다. 여느 집 아이들 같으면 엄마한테 혼이 날 때 같이 말대꾸를 하거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넘어갈 일인데, 나는 가슴에 새기며 아파하는 아이였다. 그것은 나의 의도가 전혀 있지 않다. 그냥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조금만 서운한 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는 남들에게 그런 나를 '여려서 큰일이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여린 아이를 맞춰주는 것은 보통 속 터지는 일이 아니었을 게다. 그래서 내가 울어도 '또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셨다. 그러다 어떤 날은 속이 터진다며 화를 내시기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슨 말만 하면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터지는 것은 나의 의도가 전혀 없다. 그리고 그 무슨 말이라는 것은 결코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에게 못할 말도 아니었다. 그러니 서로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보통의 부모는 다소 여린 나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게다.
어쨌든, 5학년 1학기 첫날에도 나는 뭐 때문인지 속이 상해서 울면서 학교에 갔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앉아 있는데, 새 담임선생님이 오셨고 출석부를 부르셨다.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퉁퉁 부은 눈이 창피해,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했다. 그때였다.
"너구나!"
너구나?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네가 글짓기 잘한다는 그 아이구나?"
선생님 말씀에 나는 그만 부끄러워 잔뜩 움츠렸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칭찬을 받으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까?
5학년 내내, 선생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정도로 잘 들은 애가 나였다는 것을?
너구나!
선생님은 나를 알아주셨다. 엄마한테 혼이 나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나를 다시 양지로 끌어올려주신 것이다. 퉁퉁 부은 눈을 감추려고 더욱더 움츠려 들었지만, 사실 그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12살의 부끄러움 많은 애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봐주시던 선생님의 미소가.
"하태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저를 알아주신 그 한 마디, '너구나!' 그 한 마디로 그날 저는 아이답게 살아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없으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