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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16. 2019

개구리 총각, 사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가요

개굴개굴 내 아버지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바보였을까.

외롭다는 말을 했던가.

고독하다는 말을 했던가.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그냥 미안하다.

아버지는 죄인이다.

그냥 죄인인 거야.

언제쯤 그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텅 빈 가슴으로,

소슬바람만 스쳐가도

휑하니 구멍이 뚫리는

그렇게 작은 가슴으로

육십 년을 넘게 살아왔구나.     

아버지는 누구인가.

2008. 11.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이 시를 읽고 우리 모녀 삼인방은 우스갯소리를 하며 한쪽 구석에서 이렇게 키득거렸다. 잘 나가던 직장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아버지는 회사에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두 말 없이 맨발이 되셨다. 어머니는 솜방망이를 지어다가 당신의 가슴을 두들기셔야만 했다.



사람들은 웬만하면 더 오래 버티려고, 더 오래 들러붙으려고 회사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곤 했다. 자존심이 없어서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자존심'이 지닌 정의가 무엇인지 물었다. 아버지가 그때 대답을 했었던가? 그것은 내가 어릴 때라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그 대신 방문을 닫으셨다. 그리고 한번 방에 들어가면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온종일 책을 읽고 또 읽으셨다. 타들어가는 속이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팎으로 제각기 피어올랐다. 제 살 길을 책장 넘기는 손가락에서 찾으시려는 아버지도 속이 타셨을 것이고, 당신 살 길을 비어 가는 주머니 사정에서 찾으려던 어머니도 속이 어지간히 타셨으리라. 부부는 속이 바짝 타는 하루하루를 마른 물 삼키듯 벌컥벌컥 집어삼켰다.    





이쯤에서 아버지 글 속에 등장했던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뒤적여 보자. 



죄인은 누구인가



‘죄인은 대체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첫 번째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찾다 보니 한참 오래 전의 아버지를 만난다. 지금의 내 나이 즈음, 노총각이었던 아버지는 때 아닌 결혼을 다. 아버지는 어쩌면 ‘결혼 안 하고 살았어야 할 팔자’였는데 ‘결혼하는 팔자’로 노선을 변경한 탓에 괜히 동승자(엄마)까지 애쓰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나를 포함한 딸내미 둘이 세상에 나왔다. 사실 마흔이 다 되도록 아버지는 결혼에 큰 관심이 없었던 위인이었단다. 어린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해코지할 의도 없이 ‘디스(상대방을 공격하는 힙합의 하위문화 중 하나)’하곤 하였는데, 가령 우리의 ‘아비 흠집 내기’ 패턴은 이런 식이었다.      


저 건너 조그만 호수 위에 아하 이히~♪
개구리 노총각이 살았는데 아하 이히~~♪
사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가~~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나도 몰라~~
몰라~몰라~ 몰라~~♪
얼굴이 못 생겼나 돈이 없나 ~
어디가 어째서 왜 그런지 나도 몰라
몰라 (앗싸)~ 몰라 (앗싸) 몰라  ~~♪

  


노총각 개구리의 슬픈 사연이 동요라는 포장지로 보기 좋게 덮인 채 아무렇지 않게 회자되고 있었다. 유치원생이던 우리는 노총각 개구리의 내밀한 사정 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그저 노총각이었던 아버지 앞에서 서로 자기가 먼저 노래를 부르겠다고 난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그렇게 ‘웃프게(웃기고도 슬프게)’ 웃으셨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 노총각 개구리가 다 늦게 장가들기에 성공했고, 우리는 그 개구리의 토끼 같은 자식들이 되었다. 대놓고 아버지를 ‘디스’하는데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박자를 잘 못 맞추는 아버지의 박수 소리가 우리의 노랫소리와 묘하게 어울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자, 아무튼 다시 정리해 보자. 노총각 개구리의 첫 번째 죄는 무엇인가. 바로 ‘결혼 안 할 팔자인데 결혼을 한 죄', 그것이 바로 ‘노총각 개구리’의 첫 번째 죄목이다.  

 


출처: pixabay




사실 노총각 개구리는 그 시대에 산 사람치고 가방끈이 짧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총각 개구리는 그 가방 끈을 단단히 엮어내지도 술술 잘 풀어내지도 못했다. 그는 잠시 교편을 잡다가 글을 쓴답시고 방황을 하였다. 사람들은 논마지기를 팔아 교육시킨 막내아들이 서울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멀쩡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개구리 친척들이 우리 노총각 개구리에게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다.



그래서 노총각 개구리는 선을 보았고, 색시 하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 색시는 곧 새색시가 되었고, 노총각 개구리도 이내 새신랑이 되었다. 노총각 개구리는 총각 시절을 정리하며, 총각 때 써 둔 길디긴 장편소설과 자신의 과거, 그리고 자신의 모자란 꿈들을 어두운 창고 속에 잠시 묶어 두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와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고 넥타이를 맸다. 제법 커다란 회사에 취직도 하였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 그러나 노총각 개구리 허파에는 자꾸 잔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종류의 바람인지 그도 잘 알지 못했다. 그냥 헛헛할 뿐이었다. 개구리 신사는 그렇게 계속 계속 견디면서 매일 아침 새벽 출근길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흐른 후 개구리 신사도 한계에 다다랐다. ‘회사 다닐 성격’이 따로 있겠냐만은 우리의 노총각 개구리는 자기 안에 있는 ‘회사 다닐 성격’을 버리고 위태위태했던 회사를 나왔다.


거기서 본의 아니게 노총각 개구리의 두 번째 ‘죄목’이 밝혀진다. 그 죄목은 다름 아닌 ‘자존심을 지킨 죄.' 어쩌면 이 죄목 밑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부제를 달아 줘도 좋겠다. 하지만 죄인을 몰아세워선 안 된다. 그자의 속사정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사극 드라마 속에서 한참 추국 현장이 이어진다. 진짜 죄를 지은 건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죄인은 무조건 죽을죄를 지었다고 외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확신한다. 죄를 단죄하려는 자와 죽을죄를 지었다며 죗값온전히 치르려는 자. 그때, 일흔이 넘고 여든이 다 되어 가는 우리의 노총각 개구리가 리모컨을 들고 그 장면을 오래고 바라다본다.



과연 이 노총각 개구리 인생에서 누가 추국의 대상이고 누가 추국의 주체일까. 노총각 개구리는 정말 처음부터 죄인이었던 것일까.


출처: pixabay



텅 빈 가슴으로, 소슬바람만 스쳐가도,
휑하니 구멍이 뚫리는 그렇게 작은 가슴으로, 육십 년을 넘게 살아왔구나.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비의 ‘휑하니 뚫린 가슴’에 대고 첫째 딸은 설상가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중이다. 맏딸이면서도 종종 백수가 되어 부모의 품으로 자꾸만 되돌아온다. 그것도 자식이라고, 그리고 미운 놈일수록 떡 하나 더 주어야 한다며 아비 된 노총각 개구리는 첫째 딸에게 일용할 떡을 먹인다. 게다가 제 앞가림을 곧잘 했던 둘째 딸도 드디어 노총각 개구리에게 벌을 내린다. 바로 쌍둥이 육아를 통해 노년의 시간을 앗아가고, 그나마 남은 체력까지 야금야금 빼앗는다.



노총각 개구리는 자식 나은 죄를 톡톡히 치러내기 위해 새 신부였던(그러나 이제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해야만 하는) 아내와 오늘도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그 어린이집에서는 오후 3시 30분쯤, 이 노총각 개구리가 뿌린 씨앗들이 우다다다 달려 나온다. ‘할무니, 하부지’라는 함성을 내지르며 씨앗들이 달려와 내 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야.”


할아버지가 된 노총각 개구리는 할머니가 된 부인에게 말한다. 지금도 이 노부부는 시도 때도 없이 ‘행복에 겨운 육아’에 시달린다.      



 

이제 마침내 네 죄를 사하노라.




이 노부부는 육십, 칠십이 넘어서야 드디어 생(生)으로부터 죄의 사면을 받는다. 아니 애초부터 사면받을 죄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구리 노총각은 자신이 분명 죄가 있다고 말한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죄가 하나 있다면 ‘태어난 게 내 죄요’라고 말하는 노총각 개구리. 하지만 어느 누구도 ‘태어난 것 자체’로 죄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삶에도 함부로 죄를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


출처: pixabay


노총각 개구리가 열심히 개굴개굴 울어댄다.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 딸내미 개구리가 개굴개굴 함께 운다. 아니, ‘운다’ 대신 함께 ‘웃는다.’ 태어난 게 잘못이지, 자조하는 노총각 개구리에게 꼭 이 말을 전하려고 옆에 바싹 붙어 ‘개굴개굴’ 웃어댄다.   

  


"아버지, 어머니. 태어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죄 지으러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죄를 짓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딸내미 개구리는 오늘도 행복하다. 몇 대를 이어 온 개굴개굴 소리 덕분에 자신이 태어났다. 그리고 모두가 ‘태어남’이라는 죄를 지었기에 여기 내가 태어났음을 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살아간다.     



출처: pixabay



딸내미 개구리가 목청 높여 개굴개굴 감사히 세상을 살아낸다. 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간다고 아버지 주제곡을 부르던 어린 딸내미는 이제 개구리 노처녀가 되어 주제곡을 이어받는다. 사십이 다 되도록 시집을 못 가.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나도 몰라. 노총각 아버지의 주제곡. 이제 그 노래의 주인공은 내가 된다.



어쩌면 개구리 노총각의 죄가
딸내미 개구리에게 전승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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