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5
그 친구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건 벌써 7~8년 전 일이다. 내가 두 번째 직장에 다닐 때 만났으니까 못 보고 지낸 지 10년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2년 남짓 한 팀에서 일했고 나이는 두 살 아래였는데 워낙에 붙임성 좋고 밝은 성품이라 술도 자주 마시며 꽤 가까운 사이였다. 동갑내기 동료와 사내연애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배우자도 잘 아는 편이었다. 결혼식에도 참석했고 그렇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그날 내가 들은 비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몇 개월 전까지 통화도 했던 친구였기에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는 2003년 두 번째 직장에서 모시던 팀장님과 지금까지 자주 연락하고 만나며 지낸다. 그분은 나보다 여덟 살 위 선배지만 그저 큰형처럼 편하게 속 얘기를 하는 분이다. 그런데 그 선배가 부서장으로 있는 부서에서 그 친구가 팀장을 맡고 있어 종종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가끔 술자리에서 전화로 통화하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 선배는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하면서 그 친구 칭찬을 많이 하였다. 각별히 아끼고 챙기는 부하직원이었던 것이다.
이 씁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한 젊은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그의 가족과 동료와 회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어진 탓이다. 40대 초반의 젊은 가장이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생을 마감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추스르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기 마련인데 현실은 꽤 묘하게 현실적인 문제가 끼어들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곤 한다. 결국 죽은 이를 애도하는 감정은 실종되고 조직사회의 권력구도에서 펼쳐지는 팍팍한 삶의 민낯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야 만다.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도구화되고야 말았다. 그 웃지 못할 촌극을 잠깐 소개하려 한다.
나는 사망 소식을 듣고 이튿날 옛 직장 동료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망자의 아내는 보이지 않았고 빈소는 형제들이 지키고 있었다. 경황없이 문상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뭔가 사연이 많은 듯했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사건이고 고인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기에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간략히 요약해 보면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첫째는,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장애가 생긴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고인의 큰 아이가 몇 년 전 소파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밤에 심하게 증상이 악화되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치료는 잘 되었으나 사고 직후 조치가 미흡했던 탓에 약간의 뇌손상을 입게 되었고 그렇게 몇 년을 지켜보았지만 정상인으로 살기는 어렵다는 진단을 최근에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면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했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는, 과도한 업무량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을 이기기 어려웠다는 이야기였다. 한두해 전에도 팀장 발령을 받았지만 업무 압박에 힘들어하다가 자진해서 보직을 반납했는데 최근에 다시 팀장이 되면서 심리적으로 부담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 친구의 직속 상사는 나와 가까운 분이었는데 그 친구를 처음 팀장에 추천했었고 그를 두 번째 팀장으로 올린 것도 모두 그분이었다. 따라서 조직 분위기는 묘하게 그 친구를 발탁하고 과도한 업무로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킨 나의 지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야릇한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문상을 마치고 나와 몇몇 지인들과 따로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속상해하는 고인의 상사(옛 직장선배)를 보며 다음날 새벽에 다시 장례식장을 찾아 발인에 참석하고 장지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나의 옛 직장선배가 고인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양 흘러가는 조직 내 분위기가 감지되었고 그분을 공격하려는 이들의 숨은 의도가 느껴져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마침 발인날은 토요일이었다.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장례행렬을 따라다니며 고인에 대한 애도와는 또 다른 무거운 분위기에 피로감을 느꼈다.
한 때 매일 한 부서에서 동고동락한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 가볍지 않았으나 고인의 장례를 마치고 난 후 한두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이 나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하였다. 나의 옛 직장에서는 죽은 이는 말이 없는데 산 자들끼리 마녀사냥을 하고 있었다.
고인의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있었다. 친정 형편이 좋은 편이라 일찍이 집 장만을 해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이 갑자기 세상을 뜨고 나니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건 당연했다. 나의 직장선배는 직속상관으로서 유족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 5백만 원을 고인의 아내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고인의 아내는 과거 자신의 직장이기도 했던 고인의 직장에 재취업하기를 희망했지만 회사는 자발적으로 퇴사한 경력단절 여성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전 국가적인 취업난에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이었으니 말이다. 기관장이 여느 사기업의 오너가 아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릴 재량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회사가 유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고인의 옛 직장동료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산재로 처리하여 유족들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순수한 취지였으나 그 얼토당토않은 일을 모의하면서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직장 내 과도한 업무와 괴롭힘을 견디기 어려워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직속 상사만큼 확실한 가해자는 없었다.
그렇게 고인의 친한 동료 행세를 하는 몇몇에 의해 나의 옛 직장선배는 졸지에 갑질만 일삼은 악독한 상사로 포장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순수한 마음에 유족에게 전달한 5백만 원은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한 위로금으로 둔갑하였다. 이 일로 나의 옛 직장선배는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그분과 강남의 유명하다는 역술인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결국 잠시의 해프닝으로 싱겁게 끝나버렸지만 나는 지금도 그 일을 회상하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 배가되는 것을 느낀다.
고인의 장례 후에 그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실 나의 옛 직장선배와 구원이 있던 몇몇 인간들이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몇몇 양식 있는 친구들이 그 어이없는 작당모의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결국 없던 일로 무마되었지만 오랜 직장 동료의 죽음마저도, 그것도 극단적인 선택에 의한 비극적인 죽음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앞에서 소개한 두 가지로 압축한 것은 모두 남은 자들의 추측일 뿐이다. 고인은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고인의 옛 동료이면서 우울증 치료 경험이 있던 한 분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친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그 순간에 우연히라도 누군가 주변에 있었다면 그는 그 고비를 넘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하게 살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순간 누구 한 명만 만났어도 그 친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병이라고…
고인에게는 입사초부터 한 팀에서 근무한 동갑내기 절친이 있었다. 그 친구는 꽤 오랫동안 고인이 우울증에 힘겨워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기 며칠 전에는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메일에는 특별한 이야기 없이 나 좀 살려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단다. 마지막 날에도 퇴근을 같이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퇴근하면서 책상 위에 있던 가족사진을 가방에 챙겨나갔다는 것이다.
고인의 절친은 장례 후에도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퇴근하던 그 마지막 날 자기가 술 한잔만 권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죄책감이 이 친구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거 같다. 그렇게 고인은 많은 이들에 의해 꽤 오랫동안 안타까움으로 소환되었다. 그런데 고인의 장례 후 한 달 동안은 엉뚱한 이들에 의해 치졸한 목적으로 소비되었다. 나는 고인을 우롱한 그 인간들을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이 다른 의도로 고인을 이용하였건 어설픈 인간미를 드러내고자 유난을 떨었건 그들 모두는 고인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나는 그 인간들의 면면을 평생 기억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을 위로하고 싶다. 그의 외로움과 절망감을 감히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했으리란 것을 알기에 그의 슬픈 넋을 쓰다듬고 이제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너의 푸근한 충청도 사투리가 아직도 귀에 선한 데 넌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었구나. 다시 태어난다면 부디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수를 다하여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