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선생님의 첫 편지를 읽고 나니 앞으로 더욱 풍부해질 우리의 이야기들이 더 기대됩니다.
지선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있자니, 마치 제가 안개와 습기 가득한 산속 절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푹 젖은 고무신의 감촉으로 기억하는 지선 선생님의 하심(下心)의 깨달음 또한 어떤 마음이었을지 제게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저희는 각각의 이름이 붙은 사건과 관련해서 원고, 피고, 피고인, 피해자 각각의 위치에 있는 당사자들을 만납니다. 사건의 종류로 분류된 각 당사자분들을 만나게 될 때 사건의 안경을 어느 정도 걸친 채로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죠.
원고의 입장에서, 피고의 입장에서 혹은 피고인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 당사자들을 두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체로 사건의 특성에 따라 혹은 당사자가 처해 있는 입장에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보니, 사건의 종류의 틀에 맞추어서 상담을 하거나 업무를 처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그 틀이나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깨질 때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라면 절대 명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때에도 어떤 원동력을 가진 분인지 궁금할 정도로 명랑한 목소리로 “변호사님~~~” 힘차게 부르며 전화하셔서는 오히려 저에게 더 힘을 주시는 분들도 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못이 좀 더 있거나 불리한 입장에 있어 보이는 당사자가 오히려 더 억울하다며 양보하지 않으시고 되려 심하게 더 분노하시는 모습도 있고, 분명히 피해자의 입장인데도 오히려 넓은 아량으로 피고인의 사정을 더 딱하게 여겨서 용서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의외의 모습들이 보일 때마다, 저는 속으로 적잖이 놀라게 되고, 가끔은 그분들을 통해서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서 또 저의 경험담이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기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제각각의 다양한 생각들과, 제각각의 시선들이 있잖아요.그 수많은 시선들이 제각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또 얼마나 각자 다를까요.
저는 업무상으로 계약과 협상, 분쟁, 소송 등등 수많은 사안들과 사건들을 경험하며 서로 어긋나 있거나 대립되는 시선들을 많이 다루게 되는데, 시선의 각도가 약간만 달라져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일과 일상을 통해 느끼는 것에 더해서, 요가를 할 때도 또한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아사나를 하다 보면 목이 머리의 무게를 가누지 못하고 고개가 자연스레 아래로 떨궈지거나,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거나 하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시선의 방향을 살짝살짝 바로잡아 주시거든요.
“고개를 조금만 들어주세요.”
“바닥의 먼 지점을 바라보세요.”
“턱을 아래로 당기고 천장을 바라봐 주세요.”
그 지시사항을 따라 시선의 방향을 고치다 보면, 확실히 자세가 완전히 다르게 정렬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선이 올바르게 되면, 비뚤어졌던 고개가 올바르게 정렬이 되고, 고개가 정렬이 되면 가슴과 등이 제대로 정렬이 되고, 가슴과 등에 맞춰서 두 다리와 팔이 정렬이 되고...
시선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몸 전체가 바로잡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요가에 호흡, 자세뿐 아니라 시선 또한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나 중요한 ‘시선’부터 시작해 저의 ‘몸 전체’의 정렬을 바르게 잡아주고자 섬세하게 노력해 주고 계시는 저의 요가 인연도 지선선생님과 나현 님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아주 살짝 얘기를 하고 제안을 드려보았는데, 감사하게도 정말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같이 하고 싶다.”라고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