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오라클과의 만남

"우리가 이해를 하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관심을 가지고 나서야 도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도우려고 했을 때 비로소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제인 구달 -

사자는 다람쥐를 등에 얹고 일주일을 달린 끝에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산악지대인 다마라랜드(Damaraland)에 도달했다. 사자와 다람쥐는 해 질 녘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이곳의 바위산들을 올려다보면서, 왜 이곳이 “신의 산”이라 불리는지 그리고 왜 흰 기린 1)의 예언을 들으러 가는 여정을 많은 동물들이 “순례”라고 표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막상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흰 기린을 찾아야 할지 막막해지려던 순간, 사자와 다람쥐는 그들을 마중 나와 있는 흰 기린을 발견했다. 듣던 대로 과연 기린은 순백색의 몸과 머리가 구름에 닿을 정도의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어서들 와요. 새로운 후계자와 그의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공부하는 것을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오신 거죠?” 기린이 사자와 다람쥐를 맞이하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사자가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과거의 사자들도 때가 되었을 때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하러 왔었지요.”

“설마...”

"맞아요. 아버지도 처음에는 동물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에 관해 관심이 있었어요. 심지어는 본인도 공부를 하셨답니다.”

“아버지는 혹시 어떤 공부를 하셨어요? 공부를 잘하셨어요?” 사자는 아버지가 제어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때, 그도 공부를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은 했었다.

“인간의 역사를 배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과학은 손도 못 댔어요. 그리고 발바닥이 커서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를 싫어했는데 결국 동물들이 공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결론 내리셨죠.” 기린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아니 왜 본인이 못한다고 다른 동물들까지... 그런데 흰 기린님, 제가 마침 신기한 앱을 하나 찾았어요.”

사자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람의 글을 동물의 음성으로 번역해 들려주는 그 앱을 기린에게 보여주었다.

"흠... 이건 말로만 듣던 자연어 처리 기술이군요.”

인간의 세계에 훤한 기린이 그 기술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여러 개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 동물들이 인간들의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자가 기린에게 말했다.

새로운 기계를 가지고 동물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참신하면서도 당돌한 사자의 아이디어에 놀랐는지 기린은 눈썹을 들어 올려 보였다.

“놀라운 생각인데요? 사자의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질문이 하나 있어요. 도대체 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나요?”

"나는 동물들이 공부를 하도록 도와서 인간들이 만든 것보다 더 멋진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요?"

기린이 묻자 사자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갔다.

“누구는 우리 동물들이 머리가 나쁘다고 하지만, 저는 우리가 공부해서 멋진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 안 해요."

"왜죠?"

"우리는 종이 다양하니까 인간보다 훨씬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그들이 해결 못하는 문제들도 풀어낼 수도 있을 거예요."

사자의 대답을 들은 기린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놀라는 듯하다가, 사자를 살피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서는 사자를 향해 다시 물었다.

"다람쥐와 친한지는 얼마나 되었죠? 둘이 크게 싸운 적은 없나요?"

"어렸을 때부터요. 같이 말다툼은 해봤어도 크게 싸운 적은 없죠. 제가 성질이 좋아서."

이제껏 조용히 사자뒤에 있던 다람쥐가 나서서 대답하자 기린은 한참을 다람쥐와 사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기린은 잠시 고민하더니 사자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한 듯 말했다.

“동물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생각.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특히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예전처럼 동물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처음부터 가르칠 필요도 없구요. 먼저, 동물들을 공부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천재 공학자 거북이를 소개해 줄게요.” 2)

“정말이요? 오랫동안 그런 동물을 만나고 싶었어요. 혹시 동물 세계에 공부를 한 동물이 거북이 말고 더 있을까요?” 사자가 기린에게 물었다.

"거북이 외에도 인간의 언어를 알고, 그들의 지식을 공부한 동물들이 더 있답니다. 너구리, 카피바라, 고양이, 파랑새, 여우, 그리고 거북이 이렇게 여섯 마리를 모아 올 수 있으면 저도 동물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같이 도울게요.”

"흰 기린이 직접 돕는다구요?”

"네.”

젊은 사자는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포옹을 해주기 위해 두 팔을 벌리며 기린에게 다가갔다. 이에 흰 기린은 긴 앞발을 내밀어 사자를 멀찌감치 밀어내더니 대신 사자의 머리에 앞발을 가져다 대었다.

---

(주석)

1) 흰 기린은 루시즘(Leucism)이라는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흰색의 털을 가지고 있다. 흰 기린은 워낙 희소해서 수년 전 케냐에서 한 마리가 남은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밀렵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 생존 여부는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 참고로, 루시즘을 보이는 동물은 알비노 동물과는 달리 눈동자가 검은색이며 번식도 가능하다.  

2) 추후에 설명되겠지만 인간사에 관심이 많은 기린은 현재 AI기술의 꽃인 자연어 처리 기술의 존재를 알고 있다. 기린은 이를 활용해 ‘동물전용 GPT’ (동물용 Chat-GPT로 인간의 언어를 동물의 언어로 변환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