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104~107일 차>
104일 차 - 6월 27일
배가 오랜만에 바다 위를 제대로 달렸다.
마닐라에서 오물 처리 목적으로
수차례 마닐라 연안을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정확한 목적지를 두고 제대로 항해를 하는 것은
69일 만이다.
주변에 그 어떤 배도 떠있지 않은 바다를 보는 것도 69일 만이다.
그렇게 우리 여왕 엘리자베스는
7월 1일 싱가포르를 향해 바다 위를 달렸다.
105일 차 - 6월 28일
106일 차 - 6월 29일
107일 차 - 6월 30일
싱가포르에 가까이 오니 뭐라도 보일까 하는 마음에
오픈덱을 걷고 있는데 캡틴을 만났다.
How are you, Sumin? 하더니
저 멀리 보이는 컨테이너선이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이라는 것이다.
당시 있었던 덱 10 오픈덱에서
핸드폰으로 줌을 해봤지만 희미하게만 보였다.
혹시나 해서 덱 5 크루 오픈덱으로 달려갔지만
최대 10배 줌을 해봐도 희미하게만 보였다.
육안으로 보는 것이 더 잘 보이긴 했다.
크기는 꽤나 컸고
선체에는 세 글자가 크게 있는데
정확하게 읽기에는 너무 희미했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컨테이너를 쳐다보고 있자니
얼마 전 우연히 읽은 기사들이 떠올랐다.
알헤시라스호!! 이거였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제1호로
거제 조선소에서 명명식을 한 배였던 것이다.
63 빌딩보다는 당연히 크고
우리 배 보다 106미터 길고
롯데타워보다는 155미터 짧은 길이다.
이 배에는 총 70억 개의 초코파이를 싫을 수 있고
전 세계 인구가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대단하게 큰 놈을 만났던 것이다.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싶었다.
그래도 캡틴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크루에게는 말도 안거는 권위적인 캡틴이었더라면
주사위가 바다 위에 있는 것 같네 하고
그냥 지나갔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오픈덱 산책길에 나름 좋은 구경(?)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