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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경지명 Oct 02. 2023

루틴이 있는 삶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나와의 데이트로 시작하는 하루

5시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알람을 끈다. 다시 눕고 싶은 마음 굴뚝이지만 타임스탬프로 톡방에 공유할 인증샷을 찍고 '생각학교(인문고전독서토론모임) '500 클럽(5시 기상 모임)' 골카드를 작성하고 줌링크에 접속을 한다. 줌 화면은 꺼둔 상태로 화장실로 간다. 체중을 체크하고 머리를 감고 이를 닦는다. 화장실에 서서 기본 화장까지 마치고 부엌으로 가 전기포트 버튼을 누른다. 컵에 뜨거운 물 반, 차가운 4분의 1을 담아 ‘음양탕’을 제조해 마신다. 나의 건강 유지 비결 중 하나는 예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거였다. 몇 년 전 ‘음양탕’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냥 미지근한 물 대신 뜨거운 물+차가운 물을 섞어 '음양탕'을 마시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는 것은 밤새 쌓인 몸속 노폐물을 몰아내기 위한 것. '음양탕'을 마시면서 동시에 드리퍼에 커피를 내린다. 나의 모닝 루틴 중 하나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커피 타임. 조용한 새벽 시간 혼자 책상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한 모금 한 모금 커피를 마시는 시간 나에겐 힐링 타임이다. 몸도 정신도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 빈속에 커피를 바로 마시면 위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음양탕'과 아몬드 몇 알로 속을 달래고 내린 커피를 들고 방으로 향한다.


 커피를 내리면서 휴대폰으로 '모닝 텍스트(생각학교 대표님이 공유하는 칼럼)'를 읽는다. 읽으면서 와닿는 구절은 캡처를 해두기도 한다.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아 '모닝 텍스트' 소감을 쓰기 시작한다. 될 수 있으면 10분 안에 쓰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6시 전에 소감을 업로드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 새벽에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소감을 쓸 때는 문장을 다듬기보다는 '몽롱쓰기'처럼 '모닝 텍스트'를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주로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10분 정도 책을 읽고 15분 동안 전신 스트레칭과 얼굴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6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화장실로 가 머리를 대충 손질하고 (대충 손질하기 때문에 늘 머리가 부스스) 옷을 입고 6시 40분 즈음 아이를 깨우고 미리 준비해 둔 아침(주로 주먹밥, 김밥, 샌드위치, 빵 등)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급한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선다.
 
 집을 나서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까지 간다. 나의 출근 여정은 다음과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택시를 잡아 타고 지하철 입구까지 간다. 보통 택시 요금이 4,800-5,000원 정도 나온다. 지하철로 14분 달려 지하철 종점에서 내린다. 지하철 7번 출구로 나가 급행 4번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 달려 학교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10-15분 정도 걸어서 (경사 30도 정도의 언덕을 올라야 함.) 학교에 도착한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교통 지도하는 어르신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보통 6시 45분에 집을 나서 8시 5-10분 정도에 교무실에 도착한다. 3월 둘째 주까지는 적응이 안 되어 지하철 종점까지 가는 시간이, 다시 급행 버스를 타고 학교 앞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까지 가는 골목길 안에서 헤매기도 했다. 네이버 지도가 손에 들려 있었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몸이 적응을 했는지 휴대폰 들여다보고 있다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 뻔한 적도 있다. 이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진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새벽 루틴을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어서 와! 중학교는 처음이지?> 책 관련 카드 뉴스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지하철 안에서 노트를 펼쳐 놓고 10분 동안 손 글씨로 생각을 적어나가기도 한다. 독서모임 관련녹화 영상을 볼 때도 있고 고래학교나 내가 속한 여러 단톡방에 인사말, 긍정 확언 등을 남기기도 한다.
 
 예전에는 멀미가 심해 버스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학교로 가는 급행 버스 안에서는 희한하게 멀미가 안 난다. 버려지는 시간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서일까? 주변 사람들이 출퇴근 길이 힘들지 않으냐고, 왜 운전을 안 하냐고, 운전하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루틴이 좋다. 아니 익숙해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1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출근을 하면 운전하는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못할 텐데, (물론 오디오북을 들을 수도 있고 영어 방송을 들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지하철 안에서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몽롱쓰기를 하기도 하니 이 정도면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하루 보통 만 보 이상은 걸으니 체력도 다지고 환경을 보호하는데 일조하는 셈이기도 하니 일석삼조쯤 되는 것 같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출퇴근 시간이 길어 힘들다고 생각하면 무기력해지고 불만만 가득하겠지만 출퇴근 시간을 나만의 시간, 나 자신과의 데이트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니 나와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 모든 상황이 내 입맛에 딱 맞을 수는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것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해법이 아닌가 한다.
 
 하루를 충만하게 시작하면 학교 일이 몰아치는 순간에도 버럭 하지 않고 조금 더여유 있게 상황을 바라볼 확률이 높아진다. 나의 경우 5분 10분이라도 출근 전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짐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기에 될 수 있으면 새벽 루틴은 꼭 지키려고 한다.
 
 특별히 회의가 잡혀 있지 않은 날은 점심 식사 후 5분 10분이라도 꼭 산책을 한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길로 산책을 하다가 나를 향해 이리 오라 손짓하는 꽃을 만났다. 지나가는 선생님에게 꽃 이름을 물어보니 '작약'이라고 한다. 이 나이 되도록 꽃 이름 하나 모르지만 꽃 이름 좀 모르면 어떠리. 예쁜 꽃을 보고 멈춰 서서 충만함을 한 순간이라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이 들면 꽃 사진만 찍게 된다'고해서 애써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한 부장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작약 사진과 영상을 신나게 찍고 셀카도 찍었다.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니까.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니까 나의 젊음을 사진으로 박제해 둔다.
 
 잠시 멈춰 서서 나는 어떤 루틴을 가지고 있는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단단하게 하는 루틴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떠올려보고 정리해 보면 좋겠다. 아직까지 없다면 나를 충만하게 하는 루틴 하나 꼭 만들면 좋겠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일을 자주 아니 매일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빛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버스 안에서 본 풍경
교문 앞에 핀 꽃
교문 앞에 핀 꽃. 걸어서 들어가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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