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재탄생 그리고 재조명
칼의 노래는 결국 ‘칼’의 속성과 반대되는 ‘노래’가 만나 ‘울음 변주곡’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요 역사 속에서 적과 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영토 확장의 꿈을 꾸는 정복욕 강한 리더의 선택 아래 희생되어간 무수한 사람들이다.
기록으로 우리는 역사를 재조명할 수는 있으나, 개인의 인생 하루하루 으스러져간 나날의 감정은 소설을 통해 추리력과 소설적 상상력으로 가늠해 보는 것뿐이다. 그저 과거의 파도 속으로 묻혔을 수많은 조상과 적의 조상. 지금 그 파도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전히 흰 물살을 이끌고 어김없이 찾아온다.
초등학교 2학년 짝꿍의 이름이었다. 마침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읽었었고, 학교에서도 임진왜란을 배우면서 순신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놀림감이 되곤 했다.
이순신. 초등학교 시절 몇십 번을 곱씹었던 40명의 위인전기에 나오던 인물 중의 한 명으로 처음 만났다. 그 후 거북선과 충무공, 서울로 전학 오면서 이후 광화문 광장에 장군의 동상이 자리잡기까지 그는 역사 속 인물이지만 꽤나 자주 등장했던 과거의 인물이었다.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던 장군 이순신은 너무 자주 등장한 덕분인지 그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지는 못했다.
<칼의 노래> 재판이 나오며 베스트셀러를 독주하고 있을 때에도 그저 역사소설 중 하나겠거니 하며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번 이달의 모임 책으로 선정되면서 첫 장을 열어보게 되었다.
기울어가던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시작하던 선조의 우유부단함과 조정의 당론 싸움 속에서 왜적에게 틈을 자꾸 보여주었던 시대상 덕분인가. 소설의 전반적인 문체는 슬프고 어둡고 외롭다.
일자진에서 학익진鶴翼陣으로 바꾸는 전환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을 때리고 쇠나팔을 불어도 함대는 북의 박자에 따라오지 못했다. 북과 노 사이가 나의 현실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나는 늘 수영 앞바다에 떠 있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이순신 앞에 닥친 것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에서 전장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몸으로 느끼고 손으로 기억하는 시대.
그게 그 당시 장군이 맞닥뜨린 상황이 아니었을까.
이미지 출처 : 서울경제 https://m.sedaily.com/NewsViewAmp/1Z3Z1FS6FL
과거나 지금이나 좋은 정보의 힘은 대단하다. 정탐꾼, 신뢰성 있는 사람의 구전, 술자리에서 흘러나온 이야기 등은 실제 전투보다 더 중요한 전략과 전술을 짜는 데 좋은 밑밥이 되었다.
백성들을 시켜 섬의 대나무를 모조리 잘라 화살을 만들었고 통나무를 베어냈다. 적의 중심은 나의 수영을 향해 서진하고 있었다. 적은 계절풍처럼 멀리서 일제히 불어오고 있었다. 첩보를 전한 정탐은 수영에서 묵지 못하고 바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정탐에게 소가죽 신발 두 켤레와 찐 쌀 다섯 되를 주었다.
이순신은 명량 전투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히데요시는 그의 사후 군사들을 조선에서 물릴 것을 명했다.
히데요시는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했고, 그의 오사카 성에는 늘 천하포무天下布武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는 천하포무, 네 글자를 칼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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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린의 하급 지휘관들로부터, 히데요시의 칼에 새겨진 ‘천하포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칼에 새겨진 물들일 ‘염’ 자를 생각했다. 히데요시의 칼은 얻을 것이 많았고 나의 칼은 얻을 것이 없었다. 나는 히데요시의 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무력이 안개처럼 증발된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아마, 그것은 나의 가망 없는 사치였을 것이다. 가망이 없고 단념할 수도 없는 사치였다. 그 사치 속에서 히데요시는 나의 적이었다.
그가 조선 철병을 명령하고 죽었다는 것인데,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 시는 이러했다는 것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두 칼이 맞서면서 화음을 낸다. 한쪽에 칼이 없다면 화음을 내지 못한다. 한 손바닥으로 손뼉을 마주칠 수 없으면 소리도 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듯이, 나는 적의 과거를 부술 수 없었고 미래의 적을 찌를 수 없었다. 나는 현재의 적만을, 목전의 적만을 부술 수 있었다. 첩보는 더뎠다. 적의 현재는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적을 물리치고자 했으나 적이 없는 상황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던 이순신. 그는 명량 이후,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물러가던 왜군을 격파하다 적에게 화살을 맞고 삶의 중심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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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하는 일상 디톡스 ; 책톡>
책으로 디톡스와 토론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한 달 후가 기다려진다.
01 코로나 경제전쟁
02 호밀밭의 파수꾼 https://brunch.co.kr/@sunnygoes/129
0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https://brunch.co.kr/@sunnygoes/137
0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 https://brunch.co.kr/@sunnygoes/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