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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Aug 04. 2024

연착

"지금 11시인데, 우리 다음 비행기 보딩이 11시 25분 마감이고... 아무래도 우리 인천 가는 비행기 못 타지 싶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숙박할 생각을..."

"아니야, 11시 15분까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25분까지 국제선 탑승장 갈 수 있어.
할 수 있어, 엄마"


 봄, 한국 가는 길.

피닉스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국내선 탑승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그런데 탑승객 Group 1,2가 탑승을 마치고, 한참 뜸을 들인다.  잠시 뒤, 탑승구 직원이 안내방송을 한다. 비행기 중량이 한도 초과되어 15명 정도의 승객이 자발적으로 탑승을 포기해야 이륙을 할 수 다는 내용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경유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라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않은데,  큰일이다 큰일이야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좀처럼 15명의 자발적 탑승포기 인원은 채워지지 않는다.  방송이 이어진다. 탑승 포기하면 300달러의 바우처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래대합실과 기내에선 반응없다. 급기야 1000달러의 바우처를 제공하겠다는 안내가 나왔다. 보딩을 돕는 직원들 앞으로 탑승을 포기하는 승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저녁 7시 40분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8시 40분이 되어서야 탑승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승객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초과된 중량 때문에 연료를 태워서 중량을 더 줄인다며 40분 지체했다. 


연착으로 인해 연결 편을 놓치게 될 승객을 위해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숙박을 제공한다는 알람이 떴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11시 10분,  예정된 인천행 비행기는 11시 25분 탑승수속마감. 각자 연결 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내리려는 승객들이 좁은 복도에 빡빡하게 서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다음 비행기 보딩이 11시 25분 마감인데,... 아무래도 우리는 그거 못 타지 싶은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숙박할 생각을..."
"아니야, 11시 15분까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25분까지 국제선 탑승장 갈 수 있어.
할 수 있어, 엄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이거 내가 잘하는 말인데, 이번엔 내가 아니다.

낯설다. 아들.


11시 15분,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을  따라  기내를 빠져나왔다. 이제 10분 남았다. 국제선 탑승구 방향이 어딘지 살피고 있는데 앞에 섰던 아들이 외친다.

왼쪽!


하키 하던 아들이, 하키 할 때도 보지 못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나만 따라와!


기내용 캐리어 바퀴가 그를 따라 바닥에 닿을 틈도 없이 날아가고 있다. 나도 따라 날아본다. 하나 마음만 날고 있을 뿐, 숨이 턱까지 차다 못해 목구멍에서 피 맛이 올라오고 죽을 맛이다.

어미는 글렀어. 너라도 부디 제시간에 인천에 도착하거라.


앞서가던 아들이 뒤를 돌아보며 또 외친다.

빨리 와! 할 수 있어!


나를 앞질러 가는 여자는 크록스 슬리퍼를 벗어 손에 들고뛰고, 연배쯤 보이는 남자 둘이 나처럼 헉헉대며 그 뒤를 따르고, 그리고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고.


마음뿐인 승부욕과  맘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와의 사투 끝에 인천행 탑습장이 보인다. 시간을 보니 11시 22분. 

해. 냈. 다!


우리가 좌석에 도착하자, 누울 자리 만들던 우리 옆자리  승객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자리에 앉아 숨을 좀 돌린 후, 아들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10분 안에 국제선 탑승장 도착할 수 있다고 자신한 거야?"

"시간을 계산해 봤지. 지도상으로 걸어서 25분 거리라고 했으니 뛰면 많이 단축시킬 수 있고, 그러면 11시 15분까지만 대합실로 나갈 수 있으면 되겠다 싶었지.
레알마드리드가 1분 30초 남기고 3골로 지다가 3골을 넣고 챔피언 먹은 적 있어. 그때 깨달은 게, 마지막까지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늦으면 걔를 만나는 시간도 늦어지니까."


오늘 수시로 낯선 아들.


아들이 올해 한국에 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 연착하면 만남이 늦추어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단축되니,  그에겐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던 거다.


오늘 있었던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남편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의한다.

It's called 'Power of Love'.


경유시간 12분의 기록을 세우게 , Power of Love.

한국행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아들은 기어코 제시간에 그녀를 만났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던 날,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탔던 날,
처음 혼자서 등교했던 날.

잡았던 손을 놓아주면, 한뼘씩 성장했던 시간들에 또 한 챕터를 보탠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나간다.


부럽나?
부럽죠.
저거 니도 다 해봤잖아.
그러니까, 부러워요. 저거 뭔지 아니까.


흑백으로, 혹은 칼라로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설렘을 가지고 3대가 길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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