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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Oct 15. 2017

화장실

프라이빗한 공간과 아주 사적인 대화들. 

나는 누구인가 매거진 글입니다.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예전 글 1) 순살치킨 2) 아메리카노 3) 닌텐도 스위치 4) 여행 5) 술 


이 글은 본디 171013에 쓰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전날 술을 마셨고, 171012에 써야 할 글도 마무리짓지 못했고, 업무에 치이고, 다른 일정에 참가하느라 도무지 글을 쓸 짬을 못 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시간이 온전히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여유롭진 않았다는 변명으로 이 문단을 마쳐볼까 한다.


그래, 다 변명이다. 글을 쓰려면 어떻게든 쓸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고 때문에 171013에는 뻔질나게 화장실을 들락거린 기억이 난다.


나는 장이 선천적으로 안 좋은 사람이다. 장에 관련된 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본 경험도 있다. 때문에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의 화장실을 반복하여 들락거리는 것은 필연적이며, 때문에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불편할 뿐. 응,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오늘은 내 소화기 기관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나에 관해서 이야길 해볼까 한다. 가끔 화장실에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듣게 된다. 높은 확률로 여성의 이야기였다. 일단 이 이유에 대해서 감히 짐작하자면 여성의 경우 배뇨와 배변에 관계없이 화장실이라는 큰 공간 안에서 다시 나뉜 공간이 있기 때문에 민망할 수 있는 상황의 연출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단 생각도 들고, 화장을 고친다는 등 여러 행위가 있다는 점, 또한 소위 'girls talk'이 자유롭게 이뤄지기에는 밖의 공간이 굉장히 여자 사람들에게 위험한 공간이라는 점 등이 여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남자들도 포함되는 영역에 '목욕탕' 이 있다. 서로의 성기를 포함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민망함' 은 비슷할 수 있지만 탐에 들어갔을 경우 그런 부분이 상쇄될 뿐만 아니라, 배변/배뇨 활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목욕 활동에 대한 시선이 다르다는 점이 이 차이를 만들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거기에 더해서 오다 에이치로 선생이 걸작 <원피스>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권위란 옷에서 나온다. 옷을 벗은 곳에서는 권위 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 오오, 그럴듯하다. 어쨌든 목욕탕에서 물리적으로 칼이나 총 같은 흉기를 숨길 수는 없으니,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딱히 그러한 공간적인 차이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화장실과 같이 격리된 공간이어서 3자가 들을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해서 내 속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진 않는다. 술집의 경우에는 알코올에 힘을 빌려서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과연 내 속마음인지, 알코올에 혼재된 겉마음과 속마음의 리믹스인지는 알 수 없으니까, 어떤 측면에서 나는 터넣고 누군가에게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하지만 터놓는다는 말이야 쉽지, 어디까지가 터놓는 것인가? 게다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걸? 내가 나를 객관화하여 본다고 하여도, 그것 역시도 주관의 안에서 객관화된 자신일 뿐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라면 차라리 내가 여기 브런치나 페이스북에 쓰는 글이 더욱더 개인적이며 터놓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까. 있겠지. 회사와 집, 술집 다 내 행동은 변하니까. 하지만 그 어떤 공간도 나에게 '터놓을' 자유를 주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은 대화도 사실은 터놓은 대화는 아니지 않을까. 공간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과 나외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방이 중요할 뿐, 공간은 그저 부차적인 요소일 것 같다. 그럼 나는 정말로 터놓을 친구가 없는 것인가? 


꼭 그렇게 표현을 해야겠다면 그렇겠지만, 내가 뭐 친구들을 경시한다거나, 그들을 믿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 상술한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모르겠고, 무엇을 터놓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난 활짝 열어 젓끼긴 했는데, 그게 뭔지 나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171013에 쓰여야 했을 자기분석.

17101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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