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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칙 시리즈
1. 귀찮은 건 하는 거
4. 검색-사색-검색
7. 변수에 집중하자
나는 한때 ‘속물’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그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별명이 아니라, 나만의 철학적 프레임인 ‘바보-개새끼론’에 대한 자조적 선언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신념과 현실적 이익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를 "바보와 개새끼의 프레임"이라 불렀다.
바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
개새끼: 신념을 포기하더라도 현실적 이익을 택하는 사람
이 두 선택을 놓고 보면, 마치 어느 한쪽은 절대선이고, 다른 한쪽은 절대악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어떤 선택이든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던 중, 드라마 뉴스룸에서 더 큰 바보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이 이론은 원래 경제학 용어로, 자산을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구매해도 “더 큰 바보”에게는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한 투자 전략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이를 삶의 태도에 대한 은유로 풀어낸다. 드라마 속 경제학자 슬론 사비스가 말하길,
“더 큰 바보는 실제로 경제 용어입니다. 그것은 속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큰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평생을 보냅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전체가 더 큰 바보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대사는, 이른바 ‘무모하다’고 여겨지는 선택이 오히려 더 큰 가치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바보-개새끼론에서 보면, 여기서 말하는 “더 큰 바보”는 바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담하게 손해를 감수하는 쪽이다. 그런 점에서 ‘바보’라는 선택이 항상 어리석거나 잘못된 것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바보와 개새끼라는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흔히 “바보는 선(善)”이고 “개새끼는 악(惡)”이라고 단순화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각각의 선택에도 나름의 정당성이 존재한다.
바보: 누군가에게는 ‘원칙 지향’의 훌륭한 태도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모함’으로 보이거나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는 결정일 수도 있다.
개새끼: 누군가에게는 ‘현실 감각’으로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위선’ 혹은 ‘변절’로 비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를 마주하는 태도가 아닐까?
과거의 나는 바보와 개새끼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애쓰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진정한 어른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에서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다.
바보를 택한다면: 혹시라도 손해가 생긴다 해도, 그것이 내가 지키고자 한 신념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개새끼를 택한다면: 그로 인해 얻는 이익뿐 아니라, 감수해야 할 비난이나 후회도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결정의 대가를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첫걸음이다.
결국, 바보-개새끼론과 더 큰 바보 이론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선택에 “옳고 그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얻고 잃음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 역시 여전히 바보가 될 수도 있고, 개새끼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선택을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가 나를 결정짓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은 딜레마의 연속이지만, 비겁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후회는 한결 적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 앞에 서 있으며,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진심으로 답해볼 수 있다면, 이미 어른이 되는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