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Proejct (283/365)
삶의 원칙 시리즈
1. 귀찮은 건 하는 거
4. 검색-사색-검색
7. 상수와 변수
8. 선택과 책임
9. 위임하기
10. 개구리 먹기
우리는 종종 관계를 승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누가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 같고, 먼저 손 내밀면 약해 보일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 "우리는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가?"
회사 안에서는 갈등이 자주 생긴다. 프로젝트 우선순위를 두고 팀장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작은 실수를 두고 서로 책임을 미루다가 분위기가 얼어붙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클라이언트 미팅 준비 과정에서 서로 다른 접근법을 고집하다 언성이 높아졌다. 둘 다 프로젝트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지만, 어느새 '누가 옳은가'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미팅은 끝났지만, 그 후 일주일간 우리는 필요한 대화만 주고받았다. 업무 효율은 떨어졌고, 팀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자존심 게임'에 빠진다. "내가 먼저 사과하면 괜히 약해 보이지 않을까?", "상대가 잘못했는데 왜 내가?" 같은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은 더 단단하게 굳고, 협업은 더 어려워진다.
결국 관계를 깨뜨리는 건 큰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작은 앙금이 쌓이고 굳어지는 순간들이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오해는 진실처럼 굳어진다.
교착 상태에 빠진 관계를 풀려면 누군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숙함이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감옥 생활 후에도 백인 정권과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가 말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먼저 손 내미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상할까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이 진짜 용기다.
자존심을 꺾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림을 선택하는 것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존재(사회적 동물)"라 불렀다. 우리의 존재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관계를 지키려는 첫걸음은,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의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관계의 핵심은 '복구 시도(repair attempts)'에 있다.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갈등 후 얼마나 빨리 관계를 복구하려 노력하는지가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빠른 사과와 초기 화해 제스처가 장기적인 관계의 질을 크게 높인다. 미루면 미룰수록 오해는 뿌리 깊어지고, 상대의 기억 속에서는 '상처'만 남는다.
사과는 와인과 달리 오래 묵을수록 가치가 커지지 않는다. 오히려 김빠진 탄산음료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력을 잃는다.
잘못을 깨달은 순간과 사과하는 순간 사이의 간격이 짧을수록, 진심이 잘 전달된다. 왜일까? 감정에는 반감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도, 화해하고 싶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 자리를 자기 합리화와 방어 기제가 채운다.
진정한 사과는 세 가지 요소를 담아야 한다:
구체적인 인정 - "내가 어제 회의에서 네 의견을 무시한 것"
감정의 공감 - "네가 얼마나 좌절했을지 이해해"
변화의 약속 - "앞으로는 먼저 네 의견을 끝까지 들을게"
중요한 것은 형식적 표현이 아니라 감정이 아직 생생할 때 전하는 것이다. "진짜 미안해하자"는 메모처럼, 내 마음이 아직 움직이고 있을 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게임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다. 체스, 포커, 심지어 업무 평가까지도 그렇다. 하지만 관계는 완전히 다른 규칙으로 움직인다.
법정에서는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 그러나 회사라는 일터, 혹은 가족과의 관계는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판결이 아니라 이해와 연결이다.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무한 게임(Infinite Game)'의 개념이 여기 적용된다. 유한 게임은 승부를 가리기 위해 하지만, 무한 게임은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 한다. 관계가 바로 그런 무한 게임이다.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행복한 부부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은 갈등의 69%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상대를 위한 선물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해방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비유가 있다. 원망을 품는 것은 상대를 해치려고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 또 다른 비유로는, 뜨거운 석탄을 쥔 손과 같다. 내려놓는 순간, 가장 먼저 편해지는 것은 바로 나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의 프레드 러스킨(Fred Luskin) 박사의 용서 연구에 따르면,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23% 감소했다
우울증 증상이 현저히 개선되었다
심혈관 건강이 향상되었다
화해는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묶여있던 에너지를 현재와 미래를 위해 쓸 수 있게 된다.
물론 늘 내가 먼저 사과할 필요는 없다.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고, 일방적인 희생은 건강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다.
이 글을 쓰며 나 자신에게 되뇌고 싶은 원칙은 이것이다.
관계를 승부로 보지 말 것. 이기는 순간, 사실은 둘 다 진다.
자존심보다 더 큰 가치를 선택할 것. 자존심은 잠시, 관계는 오래간다.
먼저 손 내미는 용기는 상대를 위한 것이자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 것.
완벽한 사과를 기다리다 타이밍을 놓치지 말 것. 서툴러도 진심이면 된다.
화해 후에는 과거를 반복해서 꺼내지 말 것. 용서했다면 정말로 놓아주기.
관계는 마라톤이다. 100미터 달리기처럼 누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함께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먼저 손 내미는 용기는 바로 그 '같은 방향'을 다시 찾아가는 첫걸음이다.
누가 이겼는지가 아니라, 함께 얼마나 멀리 왔는지가 중요하다. 그 긴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먼저 손 내미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