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에 첫발을 디딘 지 한 달째! 발발 떨기만 하던 ‘잡채’는 이제 산책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씩씩하게 현관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달릴 줄도 알고,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오른쪽으로 돌아 아파트 밖으로 나갈 줄도 안다.
한 달 만에 2배 이상 불어난 몸집 마냥 밖에서 아주 의젓하고 적극적인 강아지가 되어 가고 있다. 처음에는 영역표시한답시고 뒷다리 한쪽을 들어 올리는 시늉조차 어설퍼 보였는데, 요즘은 제법 수컷의 향기를 내뿜으며 아파트 전 영역을 누비고 다닌다.
‘잡채’는 특히 풀과 꽃을 좋아한다. 그곳에 다른 강아지의 향취가 묻어 있어 그러는가 싶었는데, 확실히 풀들에게 관심이 많다. 아직 어린 강아지라 아무 강아지를 만나도 먼저 들이대고, 그래서 ‘잡채’ 덩치에 놀란 형님, 누나들이 짖어대기 시작해 깜놀하기 일쑤이지만 사람, 아이, 들풀 가리지 않고 마구 다가가 반겨버린다. 아직은 세상 두려울 것 없는 견생 5개월 ‘잡채’이기에…….
'잡채'의 하루는 우리의 일주일!
좀 더 행복한 ‘잡채’의 견생을 응원하기 위해 반려견 관련 책을 짬짬이 읽고 있다. 간혹 밑줄 그으며 기억하고 싶을 만큼 다가오는 문구들이 꽤 있는데 강아지 산책에 관한 다음 글도 그렇다.
“ 강아지에게 하루는 인간의 며칠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하루 산책을 거른다는 것은 우리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며칠간 집에 갇혀 있는 거와 같다는 것이다. 그때의 답답함과 고통을 상상해 본다면 강아지에게 매일매일의 산책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것이다. 이 말을 떠올리면 출장으로 좀 늦더라도, 몸이 피곤해 거르고 싶다가도, 날씨가 춥거나 가랑비가 내리더라도 ‘잡채’를 보며 ‘산~책~’을 외치게 된다. 영특한 ‘잡채’는 말귀를 알아듣고 현관으로 춤을 추며 달려온다. 나도 ‘잡채’도 가장 행복한 저녁 시간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산책 가고 싶어요.
산책 출발!
‘잡채’와 가장 잘 어울리는 빨간 색깔의 ‘adidog’ 옷을 입고, 가슴 줄을 착용하고, 자동 리드 줄을 장착한 후 현관문을 나선다. ‘잡채’의 산책길 코스는이미 정해져 있다. 40여분 이상의 산책을 통해 ‘잡채’가 어디서 머무는지, 어디서 뛰는지, 어디를 지나치는지 뻔히 알게 되었다. ‘잡채’가 머무는 곳에 나도 따라 머물며 ‘잡채’가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단풍과 '잡채'
“ 가자, 잡채!”
“ 뛰어!”
“ 이리로, 이리로!”
말귀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는다. 낮은 키의 꽃나무에 꽂혀 한참 머물더니 요즘엔 단풍잎 더미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늘 그렇듯 냄새 맡고, 코를 들이밀고, 핥기도 하며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자리를 뜬다.
종종 사람인 줄...
강아지 똥과 가슴(목) 줄 그리고 친구들
요즘에는 종종 대변도 본다. 준비된 비닐과 휴지로 ‘잡채’의 대변을 처리하며 불과 몇 달 전의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강아지 예쁜 줄만 알았지, 강아지 똥을 치우지 않은 사람들의 행태에 얼마나 분노했던가?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 똥을 치우면 뭐하나, 은근슬쩍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투기하는 몰염치에 또 얼마나 눈꼬리를 치올렸던가?
내가 강아지 똥을 치우는 견주가 될 줄은 몰랐었다. 산책 초반에 강아지 똥을 수거하면 냄새나는 배변봉투를 들고 다니는 몇십 분이 꽤 수고스러웠다. 비닐만으로 수거했더니 집에 와 변기통에 버릴 때 영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고약한 ‘잡채’의 똥냄새를 잡기 위해 이래저래 시행착오 중인데, 아직도 산책길에 보게 되는 수거하지 않은 다른 강아지 똥들을 보면 싸잡아 욕먹을까 함께 창피해진다.
자동으로 당겨지는 리드 줄을 사용하고 있지만, 종종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어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일단 바투 당겨 잡고 “미안해”, “ 아줌마가 줄 꽉 잡고 있어.”, “겁내지 마!”를 외치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와락 달려드는 고삐 풀린 강아지들 때문에 놀라거나 불쾌했던 ‘잡채’ 키우기 전 나의 마음을 생각하며 조심하는 중이다.
‘잡채’는 산책하며 ‘치키’, ‘송송이’, ‘연두’ 등 여러 형들과 누나들을 만났다. 대부분 ‘잡채’ 덩치에 놀라 뒤로 물러서지만, 곧 ‘잡채’의 어림을 기 막히게 알아채고 막 짖어댄다. 아직 세상의 쓴 맛을 모르는 어린 ‘잡채’는 그러든 말든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며 그저 좋아라 한다.
아무리 불러도 모른 척!
산책 끝!
‘잡채’는 충분한 산책을 즐겨야만 곱게 귀가한다. 여유로울 때는 ‘잡채’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반 바퀴 정도 다시 돌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강제 소환할 수밖에 없다. 앞발을 쭉 펴고, 뒷발에 힘을 단단히 준 채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고개를 돌릴 때는 별 수 없다. 심지어 바닥에 배를 쫙 펴고 앉아 모르쇠로 고집을 피울 때는 영락없이 배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려 강제 엘리베이터 탑승을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발발 떨며 산책을 어려워하던 때를 떠올리면 그저 귀엽고 기특할 뿐이다.
들어오기 싫다 누워 버리면...
결국 번쩍 들려 강제 소환!
순둥이 '잡채'
11층에 엘리베이터가 서면 오른쪽으로 돌아 우리 집을 정확히 찾아간다. 현관문이 열리고 집안으로 들어가도 거실로 내달음치지 않는다. 가만히 현관에서 기다린다. 가슴 줄을 벗기고, 옷을 벗기고 나서도 나를 쳐다보며 기다린다. 나는 ‘잡채’를 안아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해 주고 발을 씻긴다. 버둥거리지 않고 얼굴과 발을 나에게 온전히 맡기고 기다리는 ‘잡채’가 여간 예쁘고 기특한 것이 아니다. 발의 물기까지 모두 닦고 나서야 거실로 뛰어간다.
풀향을 좋아하는 '잡채'
행복한 '잡채'와 나!
세수를 하고 난 다음의 물기 머금은 ‘잡채’ 얼굴은 정말 매력적이다. ‘잡채’의 순박미가 돋보이는 이때 나는 오랫동안 ‘잡채’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잡채’와의 애정행각을 일삼는다.
산책 후의 ‘잡채’는 가장 행복하다. 신선하고 향기로운 세상과의 만남이 가져다준 행복일 것이다. ‘잡채’는 한 동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표현을 역동적으로 드러낸 후 이내 곯아떨어져 잔다. 나도 따라 솔솔 잠이 라도 올라치면 세상 편해지는 마음이 곧 행복이라 여긴다. 당분간 '잡채'와 '산책'은 나를 힐링하는 중요 단어가 될 것이다. 오늘도 고마운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