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125
1. 알랭 드 보통은 책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고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여행을 통해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느껴보지 못했을 것들을 꽤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인에게는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특히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한국 여권 파워는 세계적으로도 짱짱맨이라는 것', '외국 음식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맛이 변형된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일본에서는 자국의 세계적 전자 제품 기업, 자동차 기업이 있기 때문에 한국산 전자제품, 자동차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마치 한국 사람이 중국 제품을 잘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등등이었습니다.
2. 문유석 전 판사는 '뭔가 해답을 얻기를 기대하며', '뭔가 영적이고 세속을 초월한 경험'을 기대하며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귀를 찢는 경적소리만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미친듯이 끼어드는 자동차와 릭샤들을 피해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철퍼덕 소똥, 모락모락 개똥, 종알종알 염소똥, 급기야 사람 똥까지 버젓이 널려 있었다. 이 모든 냄새와 지린내를 맡으며 깨달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영적인 공간은커녕 온갖 감각과 욕망의 끝, 쥐스킨트의 <향수>의 세계였던 것이다."(쾌락독서, 문학동네)를 느끼고 왔다고 합니다. (인도로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개인 경험에 비춰봐도 여행에서 가치관이 바뀔만한 '어떤 대단한 것'을 느꼈던 적은 없었습니다.
1+2.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유명한 뉴욕대학교 켄 베인 전 교수는 '노벨상, 에미상 수상자들과 같은 세계적 리더'들을 30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책 <최고의 공부(와이즈베리)>에 담았습니다.(네이버 책 소개 인용)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에게 "잠깐의 해외여행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대신 "다른 문화를 가진 낯선 곳에서 다른 언어, 다른 식습관, 다른 인사법, 다른 시설 이용법에 적응하며 수많은 기대 실패를 겪은 새로운 모델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다."고 해요. 이를 제 나름의 언어로 풀어 써본다면, '세계적 리더'란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여러 경험을 통해 충분히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는 '본인이 틀릴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끊임없이 상대방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태도 즉,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태도'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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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여행에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상황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힌트는 박찬욱 감독이 JTBC <방구석 1열>에서 <친절한 금자씨> 화면이 서서히 흑백이 되게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흑백이 된 화면을 보며, '잠깐, 이 영화가 원래 흑백 영화였나?'하는 생각을 들게 함으로써 내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보기를 유도했다고 해요. 즉, 반드시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내 주변의 것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동안 거리를 나의 관심의 틀에 맞추어놓고 살아왔다. … 어떻게든 빨리 지하철까지 가고자 하는 집요한 요구만 남았다. …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없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자 서서히 여행의 보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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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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