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저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왜 꼰대질을 하면 안 되는지 생각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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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선 꼰대질이 전제하고 있는 것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모든 앎은 마침내 언젠가는 암흑에 부딪치게 마련이고, 모든 설명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니 인간에 대한 앎, 인간에 대한 설명도 겸손한 태도로 어느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다. (문학 속의 철학, 박이문, 일조각)
2. 이 세상 모든 것에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갖게 하고, 삶을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 인생을 안다고 자만하지 마라.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겸손함, 이 한 가지 미덕으로도 삶은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갤리온)
3. 겸손은 마냥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시작하려는’ 의지, 바로 그것이었다. 거창한 말과 행동이 없어도, 이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은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해진다.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곁에 둘 만한 사람이다’, ‘큰일을 같이 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사람을 남기는 관계의 비밀, 김대식, 북클라우드)
4. 조언할 때도 겸손해야 한다. 나만 알고 친구는 모르는 비책이나 진리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서로 깨닫고 있는 친구 사이야말로 오래갈 수 있다. (에스콰이어 16년 9월호)
5.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당신의 부모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고 아내도 모르고 자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불완전 속에 완전한 것을 찾는 게 인생의 목표지만, 완전한 것은 없다. 특히 후배들에게 인생에 대해 설명하지 마라. ... 만약 말투의 뉘앙스가 이상하면 그것만큼 꼰대도 없다. (에스콰이어 16년 1월호)
꼰대질은 1) 내가 상대방보다 많이 알고 있고, 2) 따라서 나는 상대방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일종의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3) 나의 조언을 따르면 상대방도 잘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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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꼰대질은 '나는 너보다 훨씬 많이 아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전달하므로 꼰대질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와 다른 의견을 들을 수가 없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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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은 일론 머스크가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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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는 자기 주변 사람들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려고 할 때조차 나와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교정적 피드백 순환 (구조) (corrective feedback loop)을 만드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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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인식, 지식, 앎은 있을 수 없고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지속적으로 삶의 전략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귀를 열고 상대방의 피드백을 듣고자 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꼰대질은 그것과 정반대 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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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피드백을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잘 분별하는 눈도 동시에 키워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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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실제로 제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피치 못하게 꼰대질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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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하지 않은 조언을 들었던 제 경험을 비추어 보면, (그것이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해주는 조언이건, 조언의 형식을 빙자한 돌려까기이건)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