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지 못할 로컬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라
물가 상승이 가파르고 경기가 어렵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여행업계는 오랜만의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해요. 3년 넘게 강제 봉인되었던 여행 수요가 엔데믹을 기점으로 확 풀린 거죠.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의외로 국내 로컬 여행자들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해외여행지 못지않게 풍성하고 잊지 못할 추억을 제공하는 로컬이 많아졌다는 방증이겠죠?
소위 '핫플레이스'로 언급되는 곳 중에 해외나 서울이 아닌 다양한 지방 로컬이 자주 등장하는 요즘.
오늘은 '로컬을 브랜드로 만드는 로컬 브랜드 법칙' 일곱 번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절대 잊지 못할 로컬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라
첫 번째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릴 사례는 바로 예산시장입니다. '맛있쥬?' 슈가보이 백종원이 그의 고향이기도 한 충남 예산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진행한 로컬 프로젝트입니다.
예산시장은 1981년 개장하여 한때 번영을 누리다가 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상권 침체 현상을 겪었습니다. 시장 내 점포 수 역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요. 이렇게 하루에 20-30명 남짓한 방문객으로 겨우 명맥만 잇던 상황에서 2018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예산군이 합작해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는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매우 성공적입니다. 시장 리뉴얼 이후 평일 방문객이 5,000명, 주말 방문객은 10,000명에 달한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예산시장을 리뉴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미 두 차례 시도를 했음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이번 '예산시장 프로젝트'는 어떤 점이 달랐던 걸까요?
장옥 마당에서 먹는 따끈한 국수의 맛
조명까지 세세하게.. 야시장에 온 듯한 경험을 제공하다
예산시장은 '특별한 장옥 마당'을 가진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기존 재래시장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예산시장은 상설로 열리는 만큼 날씨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내로 조성되어 있던 게 장점이었죠. 그럼에도 시설 현대화를 하면서 절대 놓치지 않은 게 있습니다. 바로 "야외에서 먹는 맛의 경험"이에요.
포장마차에서 먹는 뜨끈한 어묵과 가락국수 좋아하시죠? 실내 포차도 있지만 한 겨울 야외 포장마차에서 사장님이 건네주는 가락국수 한 그릇만큼 맛있는 게 없어요. 컵라면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 등산 가서 전망 보며 후루룩 먹는 게 백만 배는 더 감동이잖아요.
예산시장도 바로 이 지점을 공략했어요. "실내지만, 야외처럼." 시장 입구로 들어가면, 825㎡(약 250평)에 달하는 넓은 광장이 보입니다. 여기에는 노포 감성이 물씬 나는 수십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어요. 방문객들은 시장 안 가게에서 사 온 통닭구이, 빈대떡, 만두 등을 이 공간에서 즐깁니다. 맛있는 음식 그리고 그 맛을 최대치로 살려주는 공간. 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요.
시장 안에 들어가면 여러 갈래의 골목길이 펼쳐집니다. 이쪽 골목에는 달콤한 전통 꽈배기의 향기가 유혹해 오고, 반대쪽 골목에선 매콤한 닭볶음이 후각을 자극합니다. 어느 길로 가볼지 설레는 고민을 하게 되죠.
방문객이 후각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건, 조명 덕분입니다. 골목길은 아늑할 정도로 적절히 어둡습니다. 마치 동남아의 어느 로컬 야시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요. 밤에 식욕이 부풀어 오르듯 어두운 조명 덕분에 지갑은 덩달아 열립니다.
골목길을 따라 쭉 늘어선 가게들 앞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건 사장님의 '퍼뽀먼스'도 한몫합니다. 통닭구이 집의 경우 일부러 밖에서 잘 보이도록 통유리를 설치하고, 닭구이가 일렬종대로 가지런히 구워지는 그릴을 창쪽으로 두었어요. 사장님이 닭을 구우며 짧은 불쇼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군침이 돌며 '한 마리 주세요!' 외치게 될 테니까요.
실내에서의 특별한 마당 경험과 야시장을 연상케 하는 조명과 인테리어. 그리고 여기에 사장님의 퍼포먼스가 화룡점정으로 더해지면 "절대 잊지 못할 로컬 브랜드 경험"이 완성됩니다. 이 모든 요소가 방문객에게 '예산시장'이라는 하나의 총체적 브랜드 경험으로 와닿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도 이 글을 읽다 보니 이번 주말에 예산시장에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로컬에서 브랜드를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이라면 꼭 기억해 주세요.
인테리어, 조명, 서비스.. 그 무엇이든 좋아요.
고객에게 기왕이면 더 맛있고 풍성한 경험을 선사해 주세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도록요.
두 번째 사례는 요즘 많은 분들이 찾고 계신 인천 개항로입니다. 개항로는 도로의 이름인데요, 구한말 개항장 인근이었던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해요. 이름처럼 이 지역의 역사는 깊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동인구도 많고 번화한 상권이었는데 하얗게 저물고 말았죠. 그런데 2017년 개항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창길 대표는 그 해 팀원들과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낙후되어 멈춰버린 도시에 신선한 공기로 활기의 호흡을 불어넣습니다. 2023년 현재, 개항로는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방문객들로 붐빕니다. 약 7년 만에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걸까요?
노포와 적극적으로 협업
옛것에 대한 존중 위에 트렌디 한 스푼
개항로는 '개항로 프로젝트'에서 직접 만들어 낸 14~15개의 가게와 이 가게를 중심으로 새롭게 터를 잡은 약 40여 개의 가게들이 모여 단단하고 매력적인 상권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개항면'을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개항면은 '개항로 프로젝트'에서 2019년 오픈한 국숫집입니다. 앤티크 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메뉴, 보장된 맛. 그런데 이곳이 다른 어떤 국숫집과도 다른 차별화 요소를 가지게 된 비결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개항로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온 노포 '광신제면소'와 협업해 특별한 면을 공수한다는 것입니다. 광신제면소는 1969년부터 개항로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곳이자 쫄면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항면은 이곳 제면소와 수차례 시도 끝에 특유의 탱글한 면을 뽑는 데 성공했고, 어쩌면 이러한 '노포와의 협업 스토리' 덕분에 개항로에 방문하면 꼭 들러보아야 하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항로 맥주'를 들어보셨나요? 인천에 가야만 비로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맥주입니다. 요즘같이 유통망이 촘촘하게 연결된 시대에 특정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파는 콘셉트로도 어느 정도 신선함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개항로 맥주가 특별해진 이유는 한정 판매 때문만은 아닙니다. 개항로 맥주는 옛것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MZ 세대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를 폭넓게 아우르는 매개체입니다.
MZ 세대 사이에서 레트로가 유행이 된 지 꽤 됐죠. 개항로 맥주는 포스터부터 레트로 감성이 진하게 묻어 나옵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포스터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가 '찐'이라는 겁니다. 맥주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개항로' 글씨는 50년 넘게 목간판을 만들어 온 전원공예사 전종원 대표가 썼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고 있는 포스터 속 모델은 극장의 영화 간판을 오래 그렸던 최명선 어르신입니다. 이분들과 개항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흥망성쇠를 겪었다는 것이에요. 전종원 대표는 목간판을 한 때 300개도 만들어 낼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누구도 목간판 작업을 의뢰하지 않게 됐습니다. 인천 내에만 무려 19개의 극장이 영업을 하던 시절, 최명선 어르신은 젊었습니다. 그는 지금 노인이 되었고, 대부분의 극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개항로 맥주를 마시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맥주의 시원하고 톡 쏘는 맛 이전에 개항로와 인천을 맛보게 됩니다. 맥주 한 잔으로 인천의 역사가 눈앞까지 가깝게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들은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청년과 어르신이 소통하는 장이 부드럽게 열리는 것이지요.
여기에 더해 개항로 맥주를 생산하는 인천 수제 맥주 양조장인 '인천맥주'는 양조장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합니다. 신선한 수제 생맥주를 바로 내려 마실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맥주 러버'들을 위해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셔볼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합니다. 왠지 모르게 힙한 굿즈도 매력적입니다. 병맥주를 사 가는 고객 앞에서 직원은 크라프트지에 직접 병을 돌돌 말아 정성껏 포장하는 볼거리도 제공합니다.
'개항면'과 '개항로 맥주'처럼 2023년의 개항로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가게와 브랜드들이 수십여 개 존재합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선 '핫플'로도 불릴 정도로 출세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뚝딱 한 번에 완성된 것은 없습니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이끈 이창길 대표는 후에 이렇게 소회를 표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우리가 카피가 되면 끝날 텐데.' 였어요. 내가 한걸 성수동 사람들이 똑같이 따라 하면 어떡하지? 큰 회사가 따라 하면 어떡하지? 가 제일 어려웠어요. 너무 빠르게 잘 되고 빠르게 카피할 수 있는 게 무서움이었죠. 카피가 안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고, 방법은 자원과 시간과 철학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우리 동네에는 40~60개 노포가 존재함을 알게 됐고, 노포랑 콜라보레이션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카피에 대한 걱정을 줄여나갔습니다."
요즘 '로컬'에 대한 관심이 정말 뜨겁습니다. 정부 주도 사업도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죠.
앞서 살펴본 '예산시장'과 '개항로 프로젝트'같은 소위 성공한 로컬 브랜딩 사례들의 공통점을 요약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1. 지역에 대한 높은 이해를 가진 사람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끕니다
2. 옛것과 새것의 조화로운 균형을 추구합니다
3. 콘텐츠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공통점의 종착지는 바로 로컬 방문객에게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해 준다'라는 것이겠지요.
오늘 이렇게 로컬을 브랜드로 만드는 로컬 브랜드 법칙, 일곱 번째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로컬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면, 이 문장만큼은 꼭 기억해 주세요.
카피 불가능한 경험이 자본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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