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번역가
한때 저녁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출근 전에 7시 수영을 하겠다고 5시에 기상하다니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다. 요새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등의 농담 섞인 속담의 변주들로 아침형 인간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속속 나오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기상해서 수영장 물로 입수해, 수영장 창문을 통해 점점 밝아지는 사위를 구경하는 정취는 가히 아름답다. 물론 수영을 하다 보면 숨이 가빠서 그런 햇살을 구경할 틈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 다운용 배영을 한 바퀴 돌고 오면서, 레인 끝에 서서 선생님의 입에서 떨어질 다음 주문을 기다리며 잠시 숨을 고르면서, 그렇게 언뜻 바라본 창문에 비치는 어슴푸레한 여명은 일찍 일어난 새의 피곤함을 단연 상쇄할 만하다.
항상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수영장 샤워실에서 줄을 서서 샤워를 하며, 이 모든 사람들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다들 수영장에 모였나 싶기도 하지만—혹자는 새벽 수영인의 눈에는 은은한 광기가 돌고 있다고 한다—문득 나도 그 은은한 광기가 도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혹시 내 눈에도 지금 은은하게 광기가 돌고 있지는 않은가 싶어진다. 수영 강사 선배님들께서는 저녁 수영은 새벽 수영과는 달라서, 금요일에 치맥 할 시간을 빼서, 게임 할 시간을 빼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더랬다. 하나 새벽 수영의 분위기는 그런 저녁 수영의 분위기와는 또 달라서, 알람이 울리자마자 따스한 이불의 온기를 박차고 일어나 새벽에 수영장으로 향해 오늘도 할 것을 해치우는 일상의 강단과 박력이 느껴진다. 가자, 해내자, 오늘을 살아내자. 그리고 새벽 수영을 마치고 수영장 문을 나서면, 살짝 젖은 머리끝에 감기는 상쾌한 아침 공기에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된다.
이 공기, 이것을 들이마시고 있으면 저절로 "아삭하다(crisp)"는 단어가 떠오른다. 크리스프—하고 아삭한 소리가 세 개나 있는 이 단어는 허용 범위가 넓어서, 감자칩이 바삭하다고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하고, 잘 빨아서 쨍쨍한 햇살에 말린 깨끗한 리넨 침대보가 버석거리는 느낌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하며, 이렇게 공기가 예리하리만치 차갑고 살얼음 낀 계곡물처럼 맑다고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공기의 맛이 깨질 듯이 산뜻하게 차갑고 아삭하다.
이렇게 아삭하게 몸을 한 차례 움직이고 아삭한 공기를 마시고 나서 의자에 앉으면, 하루 종일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타자를 치느라 목과 어깨와 허리가 뻐근해지는 느낌이 확연히 덜어진다. 새벽의 여명, 공기, 출렁이는 파란 물, 그 속에서 아삭한 루틴. 아삭한 하루의 시작. 아삭버석바삭한 아침 사과처럼 그렇게 달큼하고 예리하고 상쾌하고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