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내가 수영하는 영상을 촬영해 봤더니
"여보, 올해 운세가 좋아. 새로운 일을 하게 되고 하던 일도 잘 된데."
"아 그래? 수영이 더 잘 되겠네. 본업이 수영이 자나."
지난 일요일 처음으로 KBS1 라디오의 한 뉴스 프로그램 여행 코너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며 남편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참 나, 내 본업은 여행작가다. 여행작가도 작가이기에 어쩌면 글로 노동자라고 말하는 게 적절하겠다. 한 단어로 짧게 말하면 프리랜서다. 언제 일이 들어올지 혹은 끊길지 모르는 프리랜서. 하루살이처럼 일하는 프리랜서인 나는 섭외, 제안, 고정, 청탁, 계약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여기서 청탁은 원고 청탁이다.
다행히 올해 새로운 사보의 원고 청탁을 받고, 강의 제안도 받고, 라디오 게스트에도 섭외되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 출연이 처음은 아니지만 직접 대본을 쓰려니 쉽지 않아 며칠을 낑낑댔다. 대본이 오케이가 난 후에도 그대로 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걱정할 시간에 연습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연습은 안 하고 걱정만 했다.
라디오 출연 당일에는 잠시 후 번지점프를 할 사람처럼 긴장된 상태로 대기를 했다. 온에어가 켜진 스튜디오에 들어가서는 정신을 차려야지 생각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끝나 있었다. 휴.
그날 밤, 내가 출연한 라디오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기까지 용기가 꽤나 필요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내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잘 해내려면 내가 뭘 못하고 뭘 잘하는지 내 눈으로 봐야 하는데 보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보고 나니 목소리 톤과 말하는 속도, 마이크와 거리 등 개선해야 될 점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떻게 수영하는지 모르니 때로는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자세를 교정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문제는 수영장에서 영상 촬영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 운이 좋게도 지난해 말, 내가 다니는 수영장 새벽수영반에서 초중상급 강사님들이 열정적으로 회원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주었다.
영상 촬영은 접배평자(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촬영 전에는 모든 영법을 촬영해 주겠다는 게 고마웠지만 두렵기도 했다. 매일같이 영상으로 촬영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못하는지 몰랐으니까. 이게 나라고? 진짜? 아이폰 성능이 문제인가? 이제 정말 나야 나?
예를 들어 자유형의 경우 나는 그럭저럭 팔을 꺾으며 앞으로 잘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영상 속 나는 팔다리 박자도 맞이 않을뿐더러 상체가 과하게 흔들리는 데다 고개까지 과하게 들어 비틀비틀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배영도 몹시 과하긴 마찬가지. 내가 접영 하는 모습도 영상으로 보니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안 나아가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물에 푹 담그지 않고 팔 리커버리를 하지 않을뿐더러 글라이딩 시간도 너무 짧았다. 도대체 그동안 새벽잠 줄여가며 수영한 결과가 고작 이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며칠간 내가 수영하는 영상을 찍고 그 영상을 다시 들여다보다 보니 이런 생각은 들었다. 접영 고개를 먼저 물속에 넣고 팔 리커버리를 할까. 그런 다음엔 최대한 가슴을 누르며 글라이딩을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니 영상을 다시 찍고 싶어져 수영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저, 접영 하는 영상 한 번만 더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결과, 평소 칭찬에 인색한 수영 선생님에게 접영이 나아졌다는 칭찬을 들었다. "며칠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접영만 나아졌다는 게 아쉽지만, 애초에 수영 영상을 촬영할 때의 강사님의 의도가 '얼마나 못하는지 봐야 늘지.'라는 게 공감이 갔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도 수영도 얼마나 못하는지 알아야 는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니까 더욱 다시 영상을 촬영해서 내가 얼마나 자유형과 배영을 못하는지 보고 싶다. 여전히 안되는 부분이 많겠디만, 연말에 촬영한 영상보다 조금은 나아졌길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에는 다시 한번 내가 라디오 게스트로 나간 영상을 면밀히 보고 다음회 대본을 써야겠다. 그나저나 수영보다는 대본 쓰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