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Jung Oct 13. 2024

책임과 오해

혼자였다면 아찔했을...

이번 주는 외부 활동이 많아 다른 곳에 가서 교육도 받아야 했는데 사흘 내내 오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커버해 줬다. 이렇게 자꾸 교실 비우는 게 싫지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하는 월급쟁이니 뭐라 할 수 있겠냐만 서도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아이들에게 일이 생기면 정말 피가 바짝 마르는 느낌이 든다. 


초임교사 ECT ECT 초임교사 2년차들과 인덕션함께 한 인덕션 모임



이번 수요일엔 헤드오피스에 트레이닝이 있어 1시에 나갔는데 3시 40분쯤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우리 반 아이 엄마가 커버 TA인 루이즈가 자기 애 크리스마스 카드 잘 못했다고 뭐라고 하면서 아이 앞에서 카드를 찢었다고 여기에 대해 확인해 달라는 항의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을 보고 놀라 심장이 뛰는데 밖에 있으니 갈 수도 없고 5시에 끝나는 거라 계속 어쩌지 발만 동동 구르다 학교에 있는 2학년 부장선생님인 리지에게 어쩌면 좋냐고 문자를 보냈다. 리지가 루이즈랑 얘기하고 나에게 어떻게 됐는지 설명하는 이메일 보내줬고 나는 여기에 맞춰 부모님께 답장을 보냈다. 루이즈와도 중간에 통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들었다. 



루이즈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 크리스마스 카드 만드는데 이 아이가 잘 그리다가 나중에 검은색 펜으로 다 칠해버려서 무슨 그림을 그린 건지 몰라보게 해 놔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일 다시 내가 학교에 오면 그리라고 하고 아이가 그린 그림은 가지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속이 상해서 엄마에게 울면서 루이즈가 mean 하게 막말하고 자기 앞에서 그림을 찢었다고 해서 엄마가 화가 나서 이메일을 보냈다. 양쪽의 말이 완전히 다르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다행히? 루이즈가 있을 때 다른 보조교사 한 명이 우리 반 SEN 아이들 도와주려고 잠깐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그 보조교사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림 찢은 일은 없었다고 했고 거기에 맞춰 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더 이야기하고 싶으면 내일 오후에 수업 끝나고 만나자고 답장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 그다음 날 아침 게이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인사해 주는 로타여서 인사하고 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와서는 미안하다고, 딸이랑 얘기해 봤는데 앞에서 찢은 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쿨하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갔다. 


아이들이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 중 하나 



만약에 교실에 루이스 혼자 있었다면 카드 찢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런 일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일어난다. 작년에 리셉션 아이가 학교 어른 중 하나가 자기 만졌다고 해서 엄마가 확인도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나중에 경찰도 오고 이것, 저것 얘기하다 보니 아이가 선생님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해주니 화가 나서 부모님께 누가 만졌다고 했다는 거였다. 물론 부모의 경우, 자기 자녀가 하는 말을 100% 믿어주고 그 편에 서서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아이들 중에는 가끔 이야기하다 자기감정에 북 받쳐서 일어났던 일보다 더 과장해서 말하기도 하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루이스에게 아이 엄마가 오해했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갔다고 얘기했더니 정말 억울하고 화난다고 했는데 부모님과 싸울 수도 없으니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도를 닦아야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지금도 어른 혼자 아이와 함께 있어서는 안 되고 혹시 혼자 있게 되는 경우라면 교실 문을 열어 놓아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수업하는 경우, 우리 학교는 오후에는 TA가 없기 때문에 교사 혼자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서 아이들 중 누군가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그 일에 대해 사실을 밝힐 때까지 당사자들은 참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우스갯소리로 이러다 교실마다 CCTV 다 설치해 놔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 주는 목요일부터 리지가 아파서 안 나왔다. 감기로 이번 주 내내 아파하긴 했지만 이틀 연속 빠지니 우리 수업들이 거의 올 스톱이 됐다. 리지 성격상 자기가 다 검토하고 해야 해서 리지가 확인을 못하니 라이팅 수업도 그냥 그 전날에 했던 것들 계속 더 쓰기 했고 오후에 하는 수업들도 수업 슬라이드가 없어서 못해서 강제로 여유로운 오후 수업을 하게 됐다. 리지가 있든 없든 난 여전히 할 일이 많아서 늦게 집에 가긴 했지만 회의를 안 해서 참 좋았다. 주말엔 보통 교사들끼리 연락 안하는데 교장인 쌤이 리지가 아파서 다음 주에도 못 올 것 같다는 문자가 와서 우리끼리 수업 분담해서 레슨 만들고 있다. 주말인데...


수업 후 내가 하는 컴퓨터 클럽 - 이번 텀은 Canva 배우는데 이번 주는 AI로 이미지 만들기 연습했다.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선수, 게임, 캐릭터 만들었다



이제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도 해야 하는데 아직 스크립트가 준비가 안 돼서 준비되는 대로 역할도 나누고 연습을 시작할 것 같다. 이번 텀은 8주 텀이라 길지만 그래도 이주만 더 있으면 하프텀 방학이다. 언제나 손꼽아 기다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